*업둥이
명서영

올봄
엷은 새벽 한 자락에 둘러싸여 있던 아기
누군가의 비밀이 비밀로우리 집에 봉인되었다
나는 담장을 높여 세상에 발설하지 않았고
아기와 한 지붕을 덮었다

콕콕 까르르
아기 발자국 소리에 아침이 열렸고
웃음소리에 바람이 점점 날갯짓 했다
여물어 가는 아기
마당 화분마다 흙을 파고 있다
늙은 햇살이 반짝
눈감았다가 뜨는 사이
하얀 벌레들이 앞 다퉈
아기 입속으로 들어간다

정원에 과일과 곡식들이 아기를 훔치는 날들
1루 주자가 2루를 훔친
내 불면증과 우울증을 훔친 아기
잘 익은 집안을 한입에 털어
가을걷이를 하고도
입까지 말끔히 훔쳤다
두 팔 벌린 아기 하늘 한 점 물고 날아간다
까르르 깍깍
웃음 한 잎 내 앞자락에 떨어진다.

 2021년 학산문학 발표

오랜만에 신작시를 한편 썼다. 이 시를 처음 읽은 친한 친구가 전화가 왔다. 손주에 대한 시 같은데 왜 하필 ‘업둥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저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시가 너무 쉬워서 더 비틀어 퇴고를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도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나는 시운 시가 좋으면서도 한 번에 읽히는 시는 재미가 없다. 어디 시뿐이랴, 사람관계는 물론 모든 인생사가 알 듯 모를 듯 호기심이 생길 때 맛이 날 것이다.

시는 은유와 메타포 혹은 일언다의어(一言多義語)등이 감칠맛이며 매력이라고 생각은 늘 하지만 딸린다.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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