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가야를 정벌하라

 왕은 다른 중신들보다 금관가야 왕자 출신 김무력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태후와 중신들의 시선이 김무력에게 쏠렸다. 그는 말은 어눌한 편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소신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인사였다. 그의 형제들과 인척들은 이미 신라 상류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가야연맹의 반 신라 소요사태를 겪은 후에 오늘과 같은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결론은 그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소신이 비록 가야 출신이기는 하오나 가야연맹이나 주변 소국들이 다시 백제에 호응하기 전에 대왕께서 결단을 내리셔야 할 때라고 사료됩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적기인 듯 합니다. 통촉하소서.”

“신, 벌부지(伐夫智) 감히 대왕께 아뢰옵니다.”

“오, 일길간 말해보시오,”

일길간(一吉干)은 17관등 중에서 일곱 번째에 해당하는 중간급 벼슬이었다. 벌부지는 월광과 같은 사탁부(沙喙部)에 거주하는 강경파 인사로 늘 가야연맹의 합병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던 인사였다.

“이미 소신에 앞서서 이사부 장군과 거칠부 장군 그리고 김무력 장군께서 말씀하셨다시피 우리 신라가 천년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야연맹과 그 주변 소국들을 평정해야 합니다. 이는 삼척동자도 아는 지극히 평범한 상식입니다. 통촉하소서.”

지소태후와 군 수뇌부 인사들은 벌부지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에게 무한한 신뢰와 지지를 보냈다. 지소태후는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눈여겨보며, 곁에 있는 중신들에게 그들의 성향을 물었다.

“신, 절부지(折夫智) 감히 대왕께 아뢰옵니다.”

“그래요. *일척간(一尺干)께서 오랜만에 의견을 주시는구려. 어서 말씀해 보시오.”

왕은 평소 별로 말이 없는 절부지가 어떤 말을 할지 자못 궁금했다.

“손빈(孫臏)이 쓴 병서를 보면 군사 작전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범용병지법,치거천사,혁거천승,대갑십만,천리궤양,즉내외지비(凡用兵之法,馳車千駟,革車千乘,帶甲十萬,千里饋糧,則內外之費). 뜻은 전쟁에 투입하는 병사 십만 명에게는 수레 1천사, 수송용 수레 1천 승, 갑옷 10만개, 천리를 가는데 필요한 식량 등 많은 경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교칠지재,거갑지봉,일비천금,연후십만지사거의(膠漆之材,車甲之奉, 日費千金,然後十萬之師擧矣)라 하였습니다. 군사 십만 명을 일으킬 때, 아교나 옻칠 등 무기를 수리하는데 필요한 재료와 수레, 갑옷을 수선하는데 경비가 하루에 평균 일천 금이 소요된다는 뜻입니다. 이 두 마디를 분석해보면 전쟁에 있어서는 번갯불처럼 속전속결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날랜 용병이 백만 명이 있어도 전투를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끌면 패하게 됩니다. 우리 신라군은 그 어느 때보다 사기가 충천해 있습니다. 소신은 지금이 가야를 정벌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라가 장차 삼한 일통(一統)을 위해서는 우리 후미에 붙어있는 가야연맹과 소국들을 꼭 정리해야 승산이 있사옵니다.”

절부지의 청산유수 같은 말이 끝나자 지소태후와 거칠부, 이사부 등 군 수뇌부 인사들과 강경론에 동조하는 중신들은 손뼉을 치면서 절부지의 의견을 지지하였다. 왕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소태후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지면서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절부지를 대견해 하며,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 일척간 - 신라의 17관등 중의 두 번째로 이척찬(伊尺飡) 혹은 이간(伊干), 일척간(一尺干), 이찬(夷粲)이라고도 하며, 장관급이다.

 회의 중간에 한 번 휴회(休會)를 한 다음 다시 이어졌다. 휴회 중에 왕은 군 수뇌부와 지소태후를 별도 밀실로 들게 하여 회의석상에서 나온 여러 의견을 취사 선택하여 최종적인 결론을 조율하였다. 속개된 회의에서 여러 의견이 나오긴 했으나, 이전 의견들의 중언(重言)이었다. 삼맥종 왕이 결론을 공포하였다.

“먼저 아라가야를 정벌하시오. 전투의 승패에 따라 즉시 후속 조치를 내리겠습니다.”

‘아, 이렇게 가야연맹이 무너지는구나. 오백 년 역사의 가야제국들이 사라지게 되면 나의 인생도 의미가 없다. 반파국만은 버텨내야 한다. 우리 반파국은 아라가야나 기타 연맹국 또는 주변 소국들과 사정이 다르다. 우리 반파국에는 강력한 철갑부대(鐵甲部隊)가 버티고 있다. 사상누각처럼 힘없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어깨가 축 처진 채로 회의장을 나오는 월광을 보고 김무력이 다가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월광, 마음 단단히 먹게. 이미 대세는 굳은 것 같네. 반파국에 계신 양화왕비님을 모셔올 생각이나 하시게. 일이 년 내로 모든 일이 정리될 걸세. 쓰러져가는 나라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말게. 이제 자네도 신라 왕실 인사가 되었으니 신라에 단단히 뿌리를 내리도록 하게.”

월광은 김무력의 말에 대답 대신 씁쓸한 미소로 반응했다. 월광은 월화궁주 처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도 신라왕의 지어미라는 것도 잊을 만큼 조국 반파국의 생존을 위하여 불철주야 뛰고 있었다. 월광은 그녀가 오늘 회의 내용을 알게 되면 큰 충격과 함께 돌출행동을 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녀에게는 두 명의 자녀가 있기 때문에 천방지축으로 행동할 경우 두 자녀에게 악영향이 갈 수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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