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 고구려 중천태왕의 새로운 사랑

 “어미가 애용하던 묘약 하나를 소개하마. 그 묘약은 네가 고구려에 갈 때 어미가 다량으로 만들어 너에게 줄 것이야. 말벌집인 노봉방(露蜂房)을 채취해서 하룻밤 눌러 놓은 후 명주로 만든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장대에 걸어 백일 동안 그늘에 말린다. 합방하기 전에 그것을 소량을 항아리 속에 넣고 볶는다. 검은색 재가 하얀색 재로 변할 때까지 볶고는 그것 반 푼(分)을 따뜻한 술과 함께 복용하고 또 반 푼(分)은 손바닥에 놓고 타액으로 짓이겨 양물(陽物)에 발라주면 사내가 효험을 볼 수 있단다.”

“모후, 참으로 흥미가 있습니다.”

그미의 설명에 석정 공주의 눈망울이 샛별처럼 빛났다. 모녀는 밤마다 함께하면서 각종 규방 비서(祕書)를 보며 남녀의 다양한 체위와 음양의 조화에 관하여 연구하거나 목각인형으로 실전에 가까운 연습을 하였다. 그미의 구체적이고 흥미진진한 설명과 실험은 석정을 어느새 황제(黃帝)에게 소녀경(素女經)을 가리키던 채녀(采女)의 수준에 버금갈 만큼 경지에 오르게 했다.

“소녀경에서 말한 팔익 중에서 칠익(七益)이 무엇이더냐?”

그미가 어느 날 석정 공주에게 물었다.

“그것은 익액(益液)이라 하며 음양의 접점에서 일흔두 번 헤아려서 시행하고 마치면 즉시 중지하옵나이다. 이를 시행하오면 사람의 뼈에 골수가 가득 차 뼈가 단단해지옵나이다. 활짝 핀 꽃이나 꿀을 따는 벌에게 모두 이득이 되지요.”

“그만하면 너도 어느 정도는 경지에 이른듯하구나.”

무서리가 내린 늦가을 그미는 석정 공주와 고구려로 향했다. 첨해이사금이 국경까지 가서 고구려로 가는 그미와 공주를 전송했다. 계림국의 태후가 공주와 함께 고구려로 가는 일은 처음 있는 대사건이기도 했다. 이미 한 달 전에 첨해이사금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그미와 석정 공주의 방문과 목적을 알렸다. 모녀의 고구려 방문은 단순히 친선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첨해이사금은 여동생 석정 공주의 예물로 금은보화와 계림국의 특산물을 수십여 대의 우마차에 실어 보냈다. 고구려 국경으로 향하는 그미의 일행이 십여 리에 걸쳐 이어졌다.

고구려의 정치체제는 5부 연맹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왕족인 계루부가 가장 정치적 영향력이 크고 다음으로는 전통적으로 왕비를 배출해온 연나부(椽那部)였다. 왕비 연씨(椽氏)와 관나부인의 암투가 심하여 날이 갈수록 가관이었다. 관나부인은 얼굴이 아름답고 머리카락의 길이가 아홉 자나 되었으며, 이미 선왕인 동천 태왕에게 승은(承恩)을 입었던 전력이 있었다. 그때 연왕비도 관나부인과 함께 동천 태왕을 모시며 의자매를 맺게 되었는데, 동천 태왕이 붕어하자 두 사람 모두 연불 태왕의 후비가 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소비(小妃)들을 거두어 자신의 후비(后妃)로 삼은 것이다. 고구려의 형사취수제(兄死娶嫂制)가 그러한 일을 가능하게 했다. 연왕후가 낳은 아들 약로(藥盧)가 고구려의 태자가 되자 연왕후는 왕비가 되었다. 그녀는 관나부인을 우습게 알고 하대하면서 두 사람은 원수 관계가 되고 말았다. 이에 질투심이 극에 달한 관나부인이 태왕에게 연왕비가 한때 붕어한 동천태왕을 모신 일을 일러바쳤다. 이에 태왕은 연왕비를 천박하게 여겨 점차 멀리했다.

관나부인과 태왕 사이에도 아들 공(貢)이 있었다. 그녀는 태왕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연왕비를 끊임없이 질투하고 시기하였다. 그녀는 궁중에 무녀(巫女)를 불러들여 연왕비를 저주하게 했다. 태왕이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차츰 관나부인도 멀리하고 새로 들어온 후궁 연감(淵甘)에게 관심을 보였다.

어느 날 태왕이 연왕비의 처소에 들자 왕비는 관나부인이 예전에 동천태왕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실을 고해바쳤다. 그리고 그녀는 위나라 황제가 장발의 여인을 좋아하니 관나부인을 그에게 시집보내라고 태왕에게 간청했다.

태왕이 연감과 기구(箕丘)로 사냥 간 틈을 타 연왕비와 관나부인은 육탄전을 벌이며 궁성을 소란스럽게 했다. 태왕이 돌아오자 관나부인은 태왕을 찾아가 울면서 연왕비가 자신을 쇠가죽 부대에 넣어 죽이려고 했다며 하소연했다. 태왕은 연왕비와 관나부인이 싸우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관나부인의 하소연은 결국 거짓으로 밝혀졌고 이에 대노(大怒)한 태왕은 관나부인을 처벌하였다.

“관나를 쇠가죽 부대에 넣어 서하(西河)에 던져버려라.”

관나부인은 나이 겨우 21살인데 스스로 투기로 인하여 명을 재촉하고 말았다. 고구려 왕실에 여인들로 인하여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휘몰아치고 나서 안정을 찾을 때쯤이었다. 계림국의 태후와 석정 공주가 온다는 보고를 받은 태왕은 기대에 차 있었다. 열 여인 마다하지 않는 그의 타고난 성정(性情)은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태왕은 신하들을 국경까지 보내 그미와 석정 공주를 영접하게 했다.

“태왕 폐하의 성은이 하해와 같나이다. 소신은 계림국의 태후 김옥모라 하옵고, 이 아이는 소신의 딸 석정이옵니다.”

그미와 석정 공주가 고구려 왕궁에 들어 태왕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고구려는 대국이고 계림국은 보잘것없는 소국이라 생각하여 그미는 스스로 태왕의 신하라 자청했다. 대소신료들은 고구려가 건국된 이후로 처음 있는 신기한 일이라며 절색(絶色)의 모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여인이 계림국의 옥모 태후라고? 아, 한 마리 고고한 황새로다. 이제까지 짐과 인연을 맺은 관나부인이나 연감 등은 한낱 참새나 뱁새에 불과하다. 하늘은 왜 이제야 나에게 황새를 보낸 것일까? 피부는 백옥보다 더 희고 매끈하며, 웃을 때면 생기있게 보이는 단순호치(丹脣皓齒)는 음양의 조화를 이미 터득하고 남음이 있어 보인다. 반달처럼 생긴 짙은 아미(蛾眉)와 상아로 깎아 놓은 듯한 얼굴은 수많은 사내 가슴에 불을 지펴놓았을 것이다.

어쩐지 며칠 전부터 꿈속에 한 미인이 나타나 잠을 설치게 하더니만, 그 가인이 바로 옥모 태후였구나. 그 옆에 서 있는 아이는 짐에게 시집올 계림국 공주일 테고. 그런데 어찌 된 것이 어미는 월궁 항아(姮娥) 뺨치는 미모인데, 저 아이는 아직도 젓 냄새가 덜 가신 듯 하다. 이삼 년쯤 지나야 원숙한 여인 티가 좀 나겠어.’

태왕은 한동안 정신이 나간 듯 넋을 잃고 모녀를 바라보았다. 중신들이 헛기침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태왕은 눈을 한번 비비고 나서 모녀를 반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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