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 을불, 소금장수가 되다

“나도 그곳을 찾아가는 중이라오.”

“그거 잘되었구려. 우리 길동무나 합시다. 우리는 수실촌에서 왔습니다. 나는 추돌이라 하고 이쪽은 동무 재생이라 하오.”

추돌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사내도 흔쾌히 손을 내밀고 악수에 응해 주었다. 추돌이 사내를 자세히 보니 남을 속이거나 야바위를 칠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추돌은 궁에서 도망친 후에 사람을 잘 믿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사방에 삽시루 왕이 자신을 찾는 방을 붙여 놓은 관계로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다.

“나는 동촌에 사는 재모(再牟)라 하오.”

“이름도 참 좋구려. 그런데, 그곳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합니까?”

“잰걸음으로 하루는 족히 걸릴 거요. 날이 저물었으니 저 주막에서 하룻밤 묵고 갑시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 수양버들이 늘어섰는데 그사이에 주막이 한 채 보였다. 세 사람은 마치 십년지기라도 된 듯 다정하게 주막으로 향했다. 주막에는 여러 패가 평상과 마당에 멍석을 깔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행색을 보니 모두가 먼 거리를 옮겨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들 같았다.

소금은 나라에서 귀히 여기는 물품이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먹는 음식, 마시는 물 그리고 반찬에 소금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소금과 쌀값이 거의 비슷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소금을 대량으로 거래하는 거상(巨商)은 떼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전쟁이 나면 소금의 값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그 때문에 나라에서는 소금을 군수 물품으로 취급할 정도였다. 예전부터 압록수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요서 지방은 질 좋은 소금으로 유명하였다. 세 사람은 이른 새벽에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봉놋방 하나에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같이 잠을 자야 했다. 추돌과 재생, 재모는 돈이 든 봇짐을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 새벽닭이 울자 세 사람은 별을 보며, 길을 재촉하였다.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또 하루를 걸어야 했다. 세 사람 모두 발바닥이 퉁퉁 부르트고 다리가 아팠다. 해가 서천을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재모, 저기가 압록수 염전(鹽廛)인가 보오.”

“오오, 그런 것 같소. 나의 인생을 새롭게 쓸 염전이 맞소.”

재모는 한 마장쯤 떨어진 염전을 바라보며, 신이 난 듯 했다. 염전은 압록수 하류에 있는 소금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큰 시장이었다. 파시(罷市)할 때인데도 불구하고 포구에는 배와 마차 그리고 인파로 붐볐다. 세 사람 모두 염전이 열리는 이곳은 처음이었다.

소금 장사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여러 상단(商團)이 조직되어 있어서 서로 경쟁이 치열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상단은 박작상단(泊灼商團)과 오골상단(烏骨商團)이었다.

박작상단은 고구려 계통 상인들이 주로 소속이 되어 있었고, 단주(團主)는 어림(漁林)이라는 자로 수하를 200여 명이나 거느리고 있으며, 상선 50여 척을 소유한 거상(巨商)이었다. 소문에는 그가 고구려 조정 중신들과 연줄이 닿아 있어 그들이 어림의 뒤를 봐준다고도 하였다.

오골상단은 한나라 상인들의 활동 무대인데 단주는 제갈소(諸葛召)라고 하는 자로 애꾸였다. 그의 수하는 150여 명 정도이고 상선 30여 척을 소유하고 있는데 수적으로 박작상단에 밀리고 있었다. 추돌 일행은 박작상단에 가입하여 활동하기로 하고 어림을 만났다.

“너희들이 내 휘하가 된다면 나의 그늘 아래서 편하게 장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상단은 돈보다 명예와 의리를 중시한다. 내 한동안 너희들을 유심히 살펴볼 것이야.”

“단주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8척 장신의 거한(巨漢) 어림 단주는 세 명 중에 유독 추돌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추돌은 박작상단의 배를 빌려 소금을 싣고 압록수를 거슬러 국내성까지 소금을 팔러 다녔다. 그들은 소금뿐만 아니라 생활용품도 취급하였다. 압록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길은 꽤 험난하였다.

여름에는 갑자기 불어난 물로 소금이 녹거나 뱃길을 이용할 수 없어 쉬는 날이 태반이었고, 겨울에는 여러 날 강이 얼어 수로 이용이 어려울 때도 많았다.

압록수를 오르내리며, 일 년 정도 장사를 하면서 추돌 일행은 단골들도 꽤 확보하였다. 추돌은 재모와도 마음이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러나 추돌은 재모에게 자신이 을불 태자라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로 하였다. 재모도 추돌이 비범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장 수입이 좋은 시기는 진달래가 피고 장마가 시작될 때까지와 장마가 끝나고 첫눈이 내릴 무렵까지였다. 돈 관리는 오달진 재모가 맡았고 소금의 출하는 재생이 맡았으며, 추돌은 소금 판매 활로 개척에 전념하였다. 물량이 많아지면서 추돌은 인부 5명을 고용하였다. 추돌이 대장 역할을 하고 재모가 부대장을 맡았다.

“추돌 대장, 우리 저 주막에서 국밥을 먹으며, 목 좀 축이자. 오늘은 운이 좋아서 소금을 빨리 팔 수 있었어.”

“좋아, 나도 목이 칼칼하던 참이었다고.”

추돌 일행이 탄 배가 박작성에서 가까운 주막 앞에 정박하였다. 아직 해가 많이 남아 있었다. 박작성은 압록수 입구에서 백여리 떨어진 강 북안의 험준한 지대에 있는 고구려군의 전략 요충지로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가 주변의 성이라 이곳에는 고구려와 진나라의 상인들이 모여드는 시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많은 상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었다. 소금, 쌀, 비단, 인삼, 호피(虎皮), 각궁 등 다양한 물건들이 거래되어 고구려에서도 그 시장의 규모가 꽤 컸다.

“대장, 흉측한 소식 들었소?”

재모가 탁주 한 사발을 비우고 추돌에게 물었다.

“무슨 소식인데?”

“모용부(慕容部)의 추장 모용외(慕容廆)란 놈이 또 국경을 넘었다는군. 그자는 삼 년 전에도 쳐들어왔다가 북부소형(北部小兄)인 고노자(高奴子) 장군에게 박살 난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놈이 또 졸개들을 몰고 쳐들어 왔는데 이번에는 고국원(故國原)에 있는 서천왕릉을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네. 그놈들이 갈수록 못된 짓만 골라서 한다네.”

‘뭐라, 그놈들이 할아버님 능(陵)을…….’

“그게 사실인가? 그 오랑캐 놈들이 정말로 선대왕의 묘소를 파헤쳤단 말이야? 이거 큰일이네. 큰일이야.” 추돌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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