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부 – 탐관오리를 만나다

“이 자들이 내 신발을 훔쳐 갔다오. 어서, 관아에 알려주시오.”

노파는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마을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였다. 마을 젊은 남자들은 금장 추돌과 재모에게 달려들어 몽둥이찜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관아에서 소식을 듣고 병졸 네 사람이 달려왔다.

“젊은 놈들이 할 짓이 없어 나이 드신 분 물건을 훔쳐?”

“저희는 소금 장수로 방값을 주고 하룻밤 잤을 뿐입니다. 훔친 게 없습니다.”

재모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였지만, 병졸들은 듣지 않았다.

“이놈들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짐을 뒤져봐라.”

병졸 한 명이 조랑말에 실린 짐을 뒤지자 정말로 노파의 가죽신 한 켤레가 나왔다. 노파는 가죽신을 보자 땅바닥을 치며 울었다.

“아이고, 늙어서 혼자 사는 것도 원통해 죽겠는데, 이제는 젊은 놈들에게 도둑질까지 당하다니. 이놈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 것이여.”

노파는 서럽게 울면서 눈물까지 흘리자 마을 사람들이 혀를 차며 노파를 가엽게 여겼다.

“이놈들을 당장 끌고 가자.”

“이보시오. 저 노파가 우리를 골탕 먹이려고 간계를 부린 거요. 우리말을 믿어 주시오.”

추돌과 재모가 계속 변명을 하였지만, 병졸들은 두 사람과 조랑말을 관아인 압록재(鴨綠宰)로 끌고 갔다. 압록재는 압록수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을들을 다스리면서 각종 죄에 연루된 죄인들을 치죄하는 관아였다. 재(宰)는 미관말직이지만 백성들에게는 염라대왕 못지않게 무서운 존재로 통했다.

‘이거 예상치도 못했던 일에 연루되어 자칫 내 신분이 들통 나는 날에는 지금까지 고생한 고생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관아에 끌려가면 관리들이 우리를 조사할 텐데. 재모가 나에 대하여 말을 잘해줄 테지.’

추돌은 잡혀가면서도 머릿속에 별의별 잡념이 떠올랐다. 추돌은 재모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갯짓을 하면서 이번 고비를 잘 넘기자고 다짐을 하였다.

압록재에 잡혀 온 추돌과 재모는 재(宰) 앞에 강제로 무릎 꿇려졌다. 재는 이 고장에서 수십 년째 재로 있으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토색질을 일삼는 음종한 자였다. 노파는 이미 재와 잘 아는 듯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재가 두 사람과 조랑말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너희들은 남의 물건을 훔치고 도망가려 하였다. 왜 저 할멈의 가죽신을 훔치고 도망가려 했는지 이실직고하렷다.”

추돌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설명하였지만 재는 믿지 않았다. 재모가 다시 처음부터 자초지종을 말하였으나 재는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아닙니다. 저 녀석들이 거짓말하는 겁니다.”

노파가 끼어들었다.

“여봐라. 저놈들 볼기를 치고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압수하여 노인에게 드려라.”

“당신은 압록재로서 양측의 말을 들어보고 정당하게 판결해야지, 어째서 저 간교한 할망구 말만 듣는단 말이오.”

추돌이 재를 향해 소리치자 재(宰)는 펄펄 뛰면서 금방이라도 추돌과 재모를 잡아먹을 듯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이놈아, 이 지역에서 내가 곧 법이고, 왕이다.”

“대장, 포기합시다. 말이 안 통합니다.”

재모는 추돌에게 항의하지 말고 재의 판결에 따르자고 하였다. 그에게 대들어야 매만 더 맞고 자칫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자신들만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돈은 다시 벌면 되는 거였다. 추돌은 억울했지만, 자신들의 말을 믿어 줄 사람이 없었고, 잘못하다가 신분이 탄로 나면 곧장 체포되어 삽시루 왕에게 보내질 수도 있었다. 추돌은 억울하지만, 재모의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구경 온 마을 사람들은 추돌과 재모가 매를 맞는 모습을 보면서 고소해 하였다.

“역시 압록재께서는 백성들을 자식처럼 살펴주시는 분이셔.”

“저 두 놈이 다시는 우리 사수촌에 들어오지 못하게 다리를 분질러 놔야 해. 저놈들이 언제 다시 와서 해코지할지 몰라.”

추돌과 재모는 매를 맞고 가지고 있던 소금과 물건들을 몽땅 빼앗기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촌구석에 사는 노파에게 당할 줄 상상도 못 했었다.

두 사람은 조랑말을 타고 가면서 서로의 얼굴을 한번 보고 껄껄 웃고 말았다. 추돌은 볼기를 맞고 물건을 몽땅 압수당했지만, 신분이 탄로 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대장, 나중에 그 할망구를 찾아가 단단히 혼을 냅시다. 내 생각에는 그 할망구가 압록재와 짜고 한 짓이 틀림없는 듯하오. 아마 우리에게 빼앗은 소금과 물건들 반은 그 압록재 놈 손에 들어갔을 거요.”

재모가 엉덩이를 주무르면서 투덜거렸다. 재모는 어느덧 추돌을 대장으로 받들면서 존대를 하고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런 노파는 살아 있으면 백성들에게 손해요. 그리고 그 압록재라고 하는 놈이 더 악랄하오. 신발만 돌려주면 되었지 우리 소금과 물건을 몽땅 빼앗다니, 그자는 오리(傲吏)가 분명하오.”

두 사람은 압록수 주변에 설치된 박작상단 중간 거래소에서 다시 소금을 받아서 장사를 계속하였다. 이번에는 졸본 지역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압록수 중간 지점에서 육로로 조랑말을 몰았다.

추돌이 졸본으로 가는 이유는 그곳 백성들에게서 삽시루 왕의 평판을 들어 보고 많은 인재와 인연을 맺고자 하는 뜻이 있었다. 졸본은 고구려가 건국되었을 때 초기 도읍지였다. 고구려가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도읍지를 옮긴 지도 30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고구려의 주요 군사시설들이 집중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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