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선인장
명서영

(이파리 하나 떨어진다)
목마른 비를 기다리는 여자의 집은 사막이다
그녀는 천년을 갈증으로 건넌다 
사랑에 가시가 돋고삶이 알레르기를 일으킨다

(여자가 기다린 것은 오아시스다)
오랜만에 남자가 노름빚을 들고
황사처럼 들어서면촉촉이 젖고 싶은 여자
미움이 마렵다

(텅 빈 거실 사막에 볕이 뜨겁다)
이파리를 떨치며
노란 눈물을 피우는 여자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다’ 중얼거린다
질기고 질긴  토종인 것이다

 그녀의 깊고 복잡한 뿌리의 발원지가 여기에 있다 
남자가 횡 바람으로 떠나고
긁어도 똥구멍까지 긁어도 가려운삶이 쩍쩍 금가며 아토피를 토한다

(가시는 남을 찌르기 전에 자신을 먼저 찌르고 나오는 까닭이다)

천년 초, 20c 겨울 노지에서도 얼어 죽지 않으며 한국에서 자란다. 아토피, 변비등 약제로도 쓰인다. 는 주註가 달린 시다.

표면상으로는 손바닥 선인장을 여성으로 의인화하고 있지만 이 시에서도 여성의 끈질긴 삶과 그 삶의 과정에 자리한 아픈 의식이 '손바닥 선인장'과 동일의미로 통합하는 시적 상상력이 개입한다. 삶에서 꿈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방황하고 고뇌하며 아파하면서도 끈질긴 생명의 뿌리를 지켜내는 삶의 의지를 이 시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아토피, 변비 등의 약재로도 쓰이는 손바닥 선인장이 역으로  사랑에 목마른 갈증을 안고 천 년을 끈질기게 살아온 식물이란 것은 아이러니다.

 ‘사랑에 가시가 돋고’ ‘삶에 알레르기’를 일으키고, ‘쩍쩍 금가며 아토피를 토하는’ 고단한 역정으로 그려지는 손바닥 선인장의 생애 이면에는 화자 자신의 가시 돋친 고단한 삶과 그 역경이 자리한다.  손바닥 선인장의 끈질긴 생명력과 화자의 의지적 삶이 동일선상에서 읽혀지는 시다.

현대시의 상당부분은 존재의 욕망과 결핍의 자의식에서 시의 발화점을 찾고 있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결핍의 자의식을 낳고 결핍의 자의식이 시적 대상에 투사되면서 비극적인 시의 지평을 연다. 그 비극의 정서가 명서영의 시에서도 명멸하고 있다.

끊임없이 자연적인 소재에 투영하는 시인의 의식은 세계에 대하여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거의 비명에 가까운 아픈 상처를 드러낸다. 그가 그리고 있는 세계는 어둡고 칙칙하며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수많은 자연물들이 시의 제목으로 등장하지만 명서영의 시에서는 그것이 정관적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항상 시인의 아픈 자의식이 덧칠되어 있고, 시적 대상과 화자의 결핍의식이 결합되어 시의 공간을 형성한다.  글: 최휘웅 (시인, 평론가, 전고등학교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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