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부 – 위기일발에서 벗어나다

 박작성주 사중해의 의견이 기발하여 여러 성주가 무척 관심을 나타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을불이 큰기침을 한 번 하고 입을 열었다.

“옥저, 동예, 양맥, 숙신은 믿을 바가 못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부모·형제도 팔아먹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최체부나 점제부는 지금 무주공산입니다. 그들과는 접촉을 시도해볼 만합니다. 그들이 강력한 기마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상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것입니다.”

“태자님, 대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힘이 달리면 대패하게 됩니다. 그 두 부족을 만나보고 군사적 지원 여부를 타진해 보시지요. 그 두 부족이 우리에게 군사적 지원만 해준다면 일이 아주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개모성주 명림모달의 의견에 여러 명이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최체부와 점제부의 힘을 잠시 빌린다? 그러나 그자들은 오래 믿을 바가 못 된다. 그들에게서 병력만 지원받을 수 있다면 좋은 방책이 될 수도 있음이야,’

“개모성주께서 구체적인 접근 방안을 모색해보시지요. 또한, 각 성주님은 친분이 있는 조정 중신들과 적극적으로 접선하여 국내성 안과 밖에서 동시에 연합 작전을 펼 방안도 모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국상인 창조리와 나의 외조부이신 을보님을 끌어들여야 일이 수월하게 풀릴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나의 생모이신 을후(乙后)와 안국군 달고 조부님의 부인이신 음씨(陰氏) 부인께 나의 존재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해사갈 성주님께서 맡아서 추진해 주시지요. 모든 일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을 때 거사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삽시루에 대한 백성들의 불평과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때에 맞지 않는 서리와 우박으로 농작물이 시들고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는데도 불구하고 삽시루는 서천에 신궁을 짓는 공역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반옥령(班玉岺)을 파헤쳐 거기서 생산되는 청옥을 신궁 작업장으로 옮기느라 옥판을 짊어진 백성들의 행렬이 끝없이 뻗었고 힘에 부쳐 죽은 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합니다.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도망하여 비적(匪賊)이 되어 관아를 습격하는 지경에 되었습니다.

삽시루가 스스로 명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각 성주님은 동명당의 비밀결사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비밀 유지에 신경 써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오골성에 있으면서 대사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박작성주는 박작상단의 단주(團主)로 있는 어림(漁林)을 접촉하여 적극적인 지지를 받도록 하십시오. 아니면 그자를 나에게 한번 데리고 와도 좋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각 성주는 돌아갔고 며칠 후 을불은 개모성주와 참모 그리고 호위무사 등 병력 20인을 대동하고 최체부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옛 낙랑지역에 있던 최체부(最彘部)의 군장이 다스리는 지역이었다. 군장에게 예쁜 딸이 있었는데 군장은 장차 사위에게 최체의 통치권을 물려줄 생각이었다. 을불은 최체부 내막을 알고 군장에게 많은 선물을 주고 그의 딸을 얻으려 하였다.

그의 딸은 첫눈에 을불에게 반해 혼인을 약속하였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뒤늦게 을불이 고구려 조정에서 현상금을 걸고 찾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을불을 잡아 떫은 감으로 왕에게 넘기려 하지만 그의 딸 도움으로 탈출하였다. 화가 난 을불은 동명당 소속 성주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최체부를 모두 점령해 버렸다. 을불은 최체부를 점령하여 기마대 2천을 확보하였다. 이어서 을불은 점제부(秥蟬部)까지 확보하면서 많은 지원세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을불은 점제부와 최체부의 세력을 재편하여 동명당 소속의 가까운 성에 편입하였다.

이때 변방의 모든 부(部)의 영주(領主)들이 점제부에 모여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한 맹약(盟約)을 다시 정(定)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여러 영주가 을불을 초대하였다. 을불은 가고 싶지 않았으나 다른 부에서 참가를 독촉하므로 점제부의 족장과 회맹에 가게 되었다. 고구려의 서부사자(西部使者) 역시 참가하였는데 을불이 참가한 것을 보고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여 을불을 체포하려 하였다. 회맹이 끝나고 주연이 벌어질 때 서부사자가 은밀하게 군병력을 이끌고 와서 주연장을 급습하였다. 그는 삽시루 왕의 총신이었다.

“을불을 잡아라. 저자는 고구려의 역적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을불과 점제부에서는 서부사자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하고 그만 을불이 체포되고 말았다. 주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창과 갈이 난무하였다. 서부사자는 을불을 고구려 도성으로 압송하려 하였다. 을불이 소수의 호위 무사들만 대동하고 회맹에 참가한 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다.

“을불 태자를 구하라.”

“을불 태자님을 보호하라.”

“서부사자 놈과 졸개들을 쳐 죽여라.”

을불을 오랏줄로 묶어 압송하던 서부사자 일행들이 반왕잠(班王岑)에 도착할 무렵이었다. 반왕잠은 삽시루 왕이 서천 신궁을 짓는데 필요한 옥석재를 채취하는 산마루였다. 강제 노역에 투입되었던 백성들이 서부사자 일행의 앞길을 막았다. 그때 비적 떼들이 바람처럼 달려와 사자 일행을 모두 죽이고 을불 태자를 구해냈다. 을불을 호송하는 과정에서 놓치고 말았다는 보고를 받고 삽시루 왕은 노발대발하며, 비적들을 모두 잡아들이고 을불을 찾으라고 엄명을 내렸다. 하마터면 도성에 잡혀가 삽시루 왕에게 목이 떨어질 뻔했던 을불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을불은 긴급히 동명당 성주들을 오골성으로 소집시키면서 지금까지 준비된 사항을 보고하라고 주문하였다.

“주군,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백성들이 구해주는 바람에 무사했습니다.”

이때는 6개 성의 성주뿐만 아니라 해사갈의 공작으로 창조리의 좌우 보좌역을 맡은 북부대인 조불(祖弗), 동부대인 소우(蕭友), 남부 대인 오맥남(烏陌南), 을불의 외조부인 을보(乙寶)까지 참석하였으며, 박작성주의 공작으로 박작상단 단주인 어림뿐만 아니라 오골상단의 단주인 제갈소(諸葛召)까지 참가하였다. 참석자들은 지금 국내 정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소신, 태자님을 뵙습니다.”

을보는 외손자인 을불을 보고 너무 감격스러워 소리 내어 울기도 하였다. 그는 창조리의 밀명을 받고 조우와 소우 그리고 오맥남을 대동하고 비밀리에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박작상단 단주 어림과 오골상단 단주 제갈소 태자님을 뵙습니다.”

그들은 박작성의 성주에게 포섭되어 을불을 만나기 위하여 왔다.

“잘 오시었소. 앞으로 나를 위해 힘을 써주시오.”

을보와 해사갈은 이미 삽시루를 왕위에서 끌어 내리기 위한 작전계획안을 짜놓고 있었다. 그 계획은 국상 창조리가 초안을 잡고 해사갈을 위시한 동명당에서 부분적으로 보완한 삽시루 왕 퇴위 계획이었다. 이미 고구려 모든 백성과 조정의 중신들 그리고 각 지방의 장관들이 삽시루 왕에게 등을 돌린 상태에서 당장 대군을 이끌고 국내성으로 밀고 들어가도 되지만 그것은 만백성이 원하는 방식이 아닌 듯 하여 을불은 고심하고 있었다. 을불이 고심하고 있자 을보가 외손자 을불을 설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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