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령 전설<13>꿈이 이루어 지다(상)

“도령님- .”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희미한 달빛이 물레방앗간 안을 은은하면서 가슴설레는 분위기로 만들어 놓았다. 주변 숲속에는 날짐승들도 짝을 지어 밀어를 속삭이느라 지저귀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난생처음으로 사내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한별은 지금, 이 순간이 영원히 지속하기를 속으로 간절히 기도하였다. 박달의 두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한별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물레방앗간 안에 천둥이 친다고 생각하였고, 정신이 혼란하여 차마 눈을 뜰 수 없어 질끈 감아버렸다.

한별은 싱싱한 물고기로 변해 있었다.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물살을 가르던 물고기가 그물에 걸려 뭍으로 끌려 올라왔을 때처럼 그녀는 몸부림치는 한 마리 은어였다. 어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은어는 더욱 세차게 팔딱거리며,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비늘이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서 은어의 몸부림은 더욱 거칠어졌다. 어부의 거칠고 거대한 욕망에 은어는 금방 기진맥진하여 축 늘어져 있었다. 어둑하고 좁은 물레방앗간 안에 비가 내리고 천둥이 요란하게 쳐댔다. 희열과 벅차오르는 감정에 남녀의 끈적하고 긴 몸부림이 이어졌다. 한별은 여러 번 거의 실신(失神)의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도, 도령님, 이대로, 이대로 영원히 숨이 멎어도 좋아요.”

“나도 세상의 모든 공명(功名)과 부귀영화를 버리고 그대와 이곳 벌말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답니다.”

박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또래의 유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했다. 박달은 동문수학(同門受學)하는 유생들 사이에서도 뛰어난 문재(文才)를 자랑하였다. 그만큼 스승과 동문의 기대가 컸기에 그의 부담은 날로 가중되고 있었다.

“박달 도령님-.”

남녀의 뜨겁고 달콤한 입맞춤이 오래도록 이어졌다. 달은 부끄러워 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나올 줄 몰랐고, 은하수 한가운데를 흐르던 뭇별들도 지상에서 벌어지는 향연을 모르는 척 희미한 빛을 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완전한 일심동체(一心同體)가 되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주위 만상(萬象)은 일제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물레방앗간 뒷산에서 눈치 없는 수꿩이 암꿩을 품는 소리가 길에 여운을 남기고 골짜기로 흩어졌다. 물레방앗간을 돌아 흐르던 계곡물조차도 소리를 죽이며, 두 사람의 만남을 축복하였다.

남,녀의 사랑은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길게 이어졌다. 한별은 몽중인(夢中人)과 여러 차례 맺어진 일도 이 순간 실제로 벌어지는 정사와 같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애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렬하고 환상적이었다.

첫 정사임에도 한별은 아픔을 느끼기보다는 희열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 순간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는 상태에서 달콤하고 가슴 벅찬 여운이 지속하고 있었다.

밤이슬이 촉촉이 내리고 달은 서산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졸음을 참지 못하던 별들도 하나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사내의 조용하면서도 열정적인 몸짓을 한별은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첫 정사에 대한 두려움은 기쁨으로 변하여 한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로 자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박달의 부드러운 손길이 한별의 속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터져 나오는 신음을 참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단단한 사내의 등판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한별은 이 순간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듯 모든 생각을 비우고 박달의 의지에 따라 움직였다.

박달이 한별의 귀에 대고 계속해서 ‘은애하오’라는 말을 할 때마다 한별은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도령님’이란 말로 응수하면서 반응하였다. 박달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그녀는 그 맛을 보았다. 짭조름하면서 달콤했다.

“금봉, 아니 한별 은애하오. 죽을 때까지 그대를 은애할 거요.”

“이제부터는 도령님을 저의 정인(情人)으로 대하겠습니다. 제 생명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도령님 한 분만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저를 많이 은애해 주셔야 해요. 도령님, 그리 해주실 거죠?”

한별은 무의식중에서도 박달에게 사랑을 고백하였고, 박달은 그리하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사랑의 행위 중에도 남녀의 희열 가득한 음성은 떨리면서도 차분하였다.

“그대를 내 가슴 속 깊이 담겠소. 우리는 동혈(同穴)의 벗이 되었소.”

박달이 한별을 세게 안아주자 그녀는 감격해 했다. 뜨거운 몸짓이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끊어질 듯 말 듯 이어지면서 산촌의 물레방앗간은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첫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정사(情事)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박달과 한별이 이미 꿈속에서는 정인(情人)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사실적인 상봉이 있기도 전에 월하빙인(月下氷人)은 두 사람 사이를 청실과 홍실로 이어 놓았다.

남녀 간 연정은 사랑이라 할 수 있지만, 백년가약을 맺는 일은 인연이 있어야 한다. 남녀가 아무리 인애하여도 부부의 연이 없으면 아름다운 약속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부부의 연이 있는 사이라면 만난 지 하루만이라도 가약(佳約)을 맺고 한평생 살아갈 수 있다. 한순간 타오르는 남녀의 열정과 정열의 불꽃은 혼인과 별개의 일이다.

함께 영원할 수 없음에 슬퍼할 일이 아니다. 또한, 순간이지만 함께 할 수 없음에도 결코 노여워할 일이 아니다. 새털만큼이라도 인애 받는 것에 흡족해하고, 애처롭지만 단순히 사랑이란 말을 듣는 것에 시뻐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욕망에 끝이 없다.

특히 이성 간의 정욕(情慾)은 신도 감히 막을 수 없다. 절정에 이른 박달은 뜨겁고 묵직한 신음을 토해냈고 한별은 온몸으로 그것을 받아들였다.

“한별, 은애하오. 첫눈에 그대를 은애하리라 생각했다오.”

“저 역시 첫눈에 도령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일었답니다. 고마워요. 저를 은애해 주시니.”

한별은 우두망찰 있다가 박달의 넓고 아늑한 품으로 파고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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