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구두
손순미

늙은 소의 발을 굽는다

늙은 아버지의 발을 굽는다

토막난 아버지의 발을 잡고

아버지의 삶을 다듬기 시작한다

검은 육질에서 기름이 돌기 시작한다

탕약처럼 검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온

아버지 평생의 켤레,

아버지 고통의 부위가 누릿하게 익어간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지나친 광택을 낸다

아버지 평생의 車, 아버지 구두가

모처럼 호사를 한다

반짝! 아버지의 영광은 짧았다

사람의 발을 한 짐승이, 짐승의 발을 한사람이

아버지를 짓밟았다

그렇게, 칠십 평생 찍어온 아버지의 낙관(落款)은 불발이었다

윤을 낸 구두를 선반 위에 올려둔다

평생 바닥이었던 아버지가

높은 곳에 올라가 계신다

한밤중

구두의 울음이 구성지게 들린다

아버지가 구두를 타러 오신 것일까

 

토막 난 아버지의 발을 잡고/아버지의 삶을 다듬기 시작한다//사람의 발을 한 짐승이, 짐승의 발을 한사람이/ 아버지를 짓밟았다//

시인의 깊은 내공을 실감하며 시인의 여러 시들을 찾아서 읽는다. 소는 인간과의 관계에서 오래전부터 매우 밀접하였다. 사람과 한집에서 함께 살면서 농사일을 더불어 했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을 내주었으니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크게 관여한 셈이다.

가족들을 위해서 말없이 평생을 일해 온 소를 닮은 이 땅에 아버지들이 가족에게 세상에게 짓밟히고 홀로 울지 않기를 바라는 시인의 마음을 읽는다.

송아지를 팔고 돌아와 눈물만 뚝뚝 흘리던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과 종일 일하고도 거부하지 않던 순한 어미 소를 떠올리며 짐승만도 못한 사람은 되지 말라던 선조들은 가르침도 되새기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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