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박형진(1958~)

풀여치 한 마리 길을 가는데
내 옷에 앉아 함께 간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언제 왔는지
갑자기 그 파란 날개 숨결을 느끼면서
나는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생각했다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
나는 나를 잊고 한없이 걸었다.
풀은 점점 작아져서
새가 되고 흐르는 물이 되고
다시 저 뛰노는 아이들이 되어서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박형진(1958~)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도청리 31번지 띠목(모항)에서 태어났다. 칠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도청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 중퇴로 제도권 교육을 마감했다. 열네 살부터 농사를 지었다. ‘외국인 선교사가 만든 학교도 다녀봤고, 고물장수도 해봤지만 자신은 타고난 농사꾼이라’고 하였다.

 이 시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옷에 날아와 앉은 풀여치 한 마리를 보고 모든 생명의 제자리가 어떤 것인지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대체로 길을 걷다가 옷자락에 벌레가 날아와 앉으면, 소름이 끼치고, 오싹해서 얼른 털어버릴려고 난리다.

그런데 “갑자기 그 파란 날개의 숨결을 느끼”게 되면서 불현듯 ‘풀여치는 풀잎에 산다. 그런데 이 녀석이 내게 앉았다. 그렇다면 나를 풀잎으로 보지 않았나. 이 녀석이 나를 풀잎으로 믿지 않고 자기를 해칠지 모르는 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녀석은 온전한 풀벌레가 못되고 공포에 떠는 혹은 독이 오른 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풀여치 앉은 나는 한 포기 풀잎/ 내가 풀잎이라고 생각할 때/ 그도 온전한 한 마리 풀여치”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하늘은 맑고/ 들은 햇살로 물결치는 속 바람 속”에서 나는 어느 새 풀잎이 되어 풀잎의 감각으로 세상을 본다. “모든 살아있음의 제자리”를. 그리고 “비로소 나는/ 이 세상 속에서의 나를 알았다./ 어떤 사랑이어야 하는가를/ 오늘 알았다.” ‘사랑’은 왜 미움이 함께 존재할까?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