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여염한 야화를 보다

“그런데 말이야. 고것이 우리 아버지가 얼마나 길은 잘 닦아 놨는지. 손만 대면 자지러지지 뭐야? 아마 우리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어떤 얼굴을 하실까?”

전라도 사내는 방바닥을 쳐가며 배꼽이 빠져라 웃어댔다.

“윤초시 셋째 딸도 어찌나 밝히는지,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고것이 동네 사내들에게 꼬리를 치고 다니는 것 같아. 어쩐지 처음이 아닌 것 같더라고. 젖퉁이가 빵빵하고 엉덩이 돌리는 거 하며, 옥문(玉門)이 거무튀튀한 것과 나하고 일 치룰 때 용쓰는 거 보니까 요분질에 능수능란하지 뭐야. 사내들과 한두 번 그 짓한 게 아녀. 모르긴 몰라도 수백 번은 그 짓을 한 것 같았어.”

박달은 귀를 틀어막았다.

‘아! 저 사람들과 같은 방을 쓰다가 과거 준비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데. 어쩌나 독방을 쓸 수도 없으니…….’

이인지언 난여면서하고, 상인지어는 이여형극하야 일언반구 중치천금이요, 일언상인에 통여도할이니라.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뜻하기 솜과 같고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날카롭기 가시 같아서 한마다 말은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중상함은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으니라.

박달은 두 사내의 음담패설에 맞서 부러 큰소리로 글을 읽었다. 두 사내가 술자리를 파했을 때 이미 깊은 새벽이었다. 박달은 눈이 침침하고 허리도 아파 바람을 쐴 겸 밖으로 나왔다. 주막은 봉놋방 두 군데만 호롱불이 켜져 있고 나머지 방들은 불이 꺼져 조용했다. 어떤 방에서는 사내들의 코고는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박달은 자신도 모르게 주모가 기거하는 방을 바라보았다. 불은 꺼져 있는데 방문 앞에 여인의 신은 보이지 않았다. 박달이 주막을 나서자 큰 개울이 나타났다.

개울에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는데 어른 한 사람이 겨우 건너갈 정도로 좁았다. 막 이지러지기 시작한 하현달이 중천에 떠있어서 개울에 흐르는 물이 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주막 뒤로 민가 서너 채가 있는데 지붕마다 큰 박이 두세 개씩 얹혀 있는데 달빛을 받아 뽀얗게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마치 성숙한 여인의 육감적인 둔부처럼 보였다. 박달은 그 박을 보고 금봉이의 나긋한 육신을 생각했다. 물레방앗간에서 첫 정사는 박달에게 평생 잊지 못할 일이었다.

고향에서는 여러 명의 처녀들이 유혹하여 한두 번 정도 은밀한 만남을 가져보기는 하였지만 정사(情事)를 가지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성숙한 여인의 육신을 안아 본 감격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금봉이와 가진 첫 정사를 생각하니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그러나 지금은 사고무친 낯선 한양의 깊은 밤중이었다. 박달은 화끈 달아오른 얼굴에 그만 스스로 무안하여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과거에 전념해야 할 처지에 이상한 생각을 다하다니. 그러나 금봉이가 보고 싶다. 이 밤에도 잠들지 못하고 나를 생각하고 있을 텐데. 금봉이, 사랑하오. 내 반드시 과거에 합격하여 그대를 찾아가겠소.’

박달은 중천에 떠 있는 하현달을 바라보면서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싶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박달의 순진한 행동에 중천에 떠 있던 달님이 빙그레 웃으며 박달의 노고를 격려라도 하는 것처럼 구름에서 나와 박달의 잘생긴 얼굴에 달빛을 쏟아냈다. 박달은 개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달빛이 뽀얗게 쌓인 다리 위를 걸으며 금봉을 그렸다.

“달님, 벌말에 있는 금봉이는 잘 있는 거지요? 금봉이 소식이 궁금해 죽겠어요. 그녀도 이 밤 달님을 바라보며 저를 생각하고 있는지요? 혹시 이 밤에도 금봉이 달님을 올려다보며 저의 금의환향을 위하여 치성을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금봉이가 보고 싶습니다. 달님, 금봉이 아무 탈 없이 지내도록 도와주세요. 밤낮 저를 위하여 치성을 드리느라 병이라도 날까 걱정이 되옵니다. 그녀가 무탈하도록 도와주세요. 제 심정을 그녀에게 꼭 전해 주시고요.”

박달은 다리 위에 서서 합장(合掌)한 채 달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달을 올려다보고 두 손을 비비며 허리를 구부정하게 굽혔다 폈다를 수십 번도 더 반복하였다. 서천(西天)을 향해 흐르는 달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어머나! 박달 도령님 아니세요?”

중천에 뜬 달만 바라보던 박달은 반대편에서 사람이 오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젊고 요염한 주모가 옆에 있었다. 사내들이 끈끈한 시선을 던지며 유혹하던 그 주모가 갑자기 앞에 나타난 것이다. 늦은 밤에 어디를 다녀오는지 주모가 약간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박달을 향해 다가왔다.

‘주모가 이 야심한 시간에 어딜 갔다 오는 걸까?’

“주모께서 어딜 다녀오시나 봅니다?”

박달이 달빛은 받아 더욱 요염해 보이는 주모에게 인사를 건넸다. 달빛을 받은 주모의 검은 머리에서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며 색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박도령님, 이 밤에 하늘을 올려다보시면서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셨어요? 달님을 보면서 고향에 두고 온 정인(情人)을 생각하셨나 봐요?”

“아, 아니오. 가슴이 답답하고 마음도 울적해서 바람이나 잠시 쐬려고 나왔다가 달님에게 과거를 잘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빌고 있던 중이었어요.”

박달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간신히 대답하고 얼굴을 붉혔다.

“그러셔요?”

봉놋방에는 지방에서 올라와 과거를 준비하는 젊은 사내들이 여러 명 있는데 주모는 유독 박달에게 관심이 많았다. 낮에 어쩌다 시선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주모는 박달에게 눈을 찡끗하면서 살포시 미소를 건넸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 했는데 두 번, 세 번 시선이 마주 칠 때마다 주모의 뜨거운 시선과 환한 미소는 박달에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박달은 직감으로 주모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가급적 주모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였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 꼴이었다.

“박도령님, 밤이슬도 차고 밤기운이 찬데 제방에 들어가셔서 저와 한잔 하시지 않겠어요? 이렇게 한데 계시다가 몸살이라도 나시면 안 되잖아요?”

‘한잔? 지금이 새벽인데 주모가 혼자 있는 방에서 한잔?’

박달은 한양 올 때 흥호에서 만난 고향 형님의 말을 떠올렸다.

“아, 아니오. 나는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주색(酒色)을 가까이 한단 말이오? 주모나 어서 들어가세요. 난 좀 더 바람을 쐬고 들어갈 테니......”

“아이고, 세상에 위험한 밤길을 여인네 혼자가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도령님, 보아하니 한 잔 걸치신 것도 같은데? 그리고 저는 단지 국밥 말아 파는 주모일 뿐이에요. 저를 색가주(色酒家)의 여인으로 보시지 마셔요. 그냥, 주모입니다. 국밥 말아 파는…….”

‘이 여자가 내가 탁주 한잔 마신 걸 어찌 아누? 주색이라고 한 말이 거슬렸나보군.’

“박도령님, 그러지 말고 저와 제 방에 들어 딱 한잔만 더하시자고요. 네에?” 주모는 애원하다시피 하였지만 박달은 머뭇거릴 뿐이었다.

‘아니 되오. 야심한 시각에 남녀가 유별한데 그것도 새벽에 여인이 쓰는 방에서 술을 마신단 말이오? 아니 되오.’

박달은 목구멍까지 올라 온 말은 하지 못하고 주저거렸다.

“아, 아닙니다. 이제 들어가 자야지요. 보시다시피 밤이 너무 늦었습니다. 이제 머리도 식혔으니 방에 들어가 자야지요.”

‘아니 이런 숙맥이 다 있나? 공짜로 준다고 해도 못 먹으니. 어휴, 바보가 따로 없군.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나? 보기에는 호색한처럼 생겼는데......’

“사내대장부가 겁도 많으세요. 제가 잡아먹기라도 할까봐서 그러세요?”

주모는 허리를 잡고 우스워 죽겠다고 깔깔거렸다.

“그, 그것이 아니라. 밤이 너무 늦어서…….”

“자, 이리오세요. 그동안 제 집에 계시면서 제가 혹시 불편하거나 잘못한 거라도 있을 것 같아 죄송한 마음에 술 한 잔 대접하려는 거예요. 거절하지 말고 어서 같이 가세요.”

주모는 박달에게 팔짱을 끼더니 막무가내로 주막 쪽으로 향했다.

“주, 주모, 누가 보면 어쩌려고 이러시오?”

“이 새벽에 누가 봐요? 달님 말고 볼 사람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주모는 발가스름한 얼굴로 달을 한번 쳐다보더니 방글방글 웃으며 박달을 올려다보았다. 달빛을 받아 단아하고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박달의 조각처럼 희고 빼어난 얼굴에 주모는 그만 가슴이 울렁거렸다.

‘정말로 보기 힘든 선풍도골이다. 어떻게 이런 헌헌장부가 우리 주막에 왔을꼬? 나와 무슨 인연이 닿으려고 한 걸까? 나의 한을 풀어주기 위하여 오신님이 분명할거야. 나의 깊은 한을 풀어주시기 위하여 오신…….’

주모는 부리나케 걸으면서 앞뒤를 살폈다. 다행히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 길은 어두워 지척을 분간하기 힘들 정도였다. 두 사람 말고 다행히 새벽길을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 어서 들어가세요. 어서요. 혹시 누가 보면 곤란하니까 어서 들어가세요. 미투리는 들고 방으로 들어가세요. 뒷간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아무 생각하지 마시고 어서 들어가세요. 어서요.”

주모의 강권(强勸)에 못 이겨 할 수 없이 여인이 혼자 쓰는 방에 들어오기는 하였지만 박달은 왠지 불안하였다. 주모는 남편도 자식도 없는 홀몸이었다. 박달이 기거하는 방과 다른 봉놋방 모두 불이 꺼져있었고 남정네들의 코고는 소리만 요란하였다.

주모가 얼른 호롱불에 불을 붙였다. 박달은 주모의 방에 들어서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막에서 억센 사내들을 상대로 국밥과 술을 파는 여인치고는 방이 제법 깨끗하고 소품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상한 것은 조그만 탁자 위에 책이 몇 권 놓여 있었다. 본능적으로 박달의 시선이 책으로 쏠렸다. 자세히 살펴보니 대학, 논어 맹자, 춘추, 예기, 명심보감 등 매일 같이 대하는 서책들이었다.

‘이상하다. 어떻게 뭍 사내들을 상대로 국밥을 말아 파는 여인의 방에 과거에 필요한 서책들이 있단 말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혹시 이 주막에 묵었던 어느 간서치(看書痴)가 과거에 낙방하고 밀린 밥값으로 주모에게 책을 맡겼나? 아니면 어떤 정신 나간 유생이 주모와 하룻밤 질펀하게 잠자리를 가진 뒤 대신 책을 맡겼을까? 아무튼 이상한 일이야.’

박달이 서책에 관심을 보이며 바라보고 있을 때 언제 준비했는지 주모는 금방 조촐한 술상을 가지고 들어왔다.

“박도령님, 한잔 받으세요.”

주모의 빨간 입술이 불빛에 더욱 요염하게 보였다. 입술 사이로 하얀 치아가 마치 늦가을에 잘 익은 석류가 터져 비치는 석류알 같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되긴요? 딱 오늘 하루만 드시고 편히 주무신 뒤 내일부터 열심히 공부하시면 되잖아요?”

불빛 아래 유난히 눈매가 고운 주모를 보고 박달은 국밥 냄새에 찌든 수더분한 여인이 아닌 색주가의 요염한 야화(夜花)를 연상하기도 하고 사대부가의 정숙한 현모(賢母)로 보기도 했다. 박달은 주모의 방에서 서책을 보자 주모가 단순한 여인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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