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마을 총각들의 질투

“형씨, 이번 과거에 확실하게 자신이 있는 거요?”

전라도에서 온 사내가 혀가 꼬부라진 상태에서 강원도에서 온 남자에게 물었다. 강원도에서 온 남자도 과거를 보러 한양에 왔다고는 하지만 한 번도 책을 펴놓고 읽거나 글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주위 사람들에게 마지못해 등 떠밀려 온 상태에서 남들이 과거 준비에 전념할 때 텁텁한 술잔이나 들면서 어서 과거가 끝나기만 기다렸다.

“이번에 못 붙으면 내년에, 내년에 또 못 붙으면 후년에 붙으면 되지. 그리고

사방에 널린 세월에 뭐 그리 바삐 가려고 하우? 이것도 보고 저것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가면 될 것을. 세월이 좀 먹수? 배경이 없는 무지렁이 백성들은 백날 과거 봐봐야 뻔할 뻔자 아니겠수? 지금은 뒷줄 없으면 말장 도루묵이우. 머리 아픈 이야기 하지 말고 술이나 칩시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강원도 사나이가 입을 삐쭉거리며 전라도 사내에게 말했다. 며칠 전과 다르게 하삼도(下三道)와 황해도 경기도 등 각 지역에서 올라 온 과거 준비생들로 주막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붐볐다. 박달은 과거 볼 날짜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과거 준비생들이 한양으로 몰려들자 불안과 초조가 엄습했다. 괴나리봇짐을 멘 사람들이 모두가 경쟁 상대자처럼 보였다.

‘이번 증광시에 무슨 일이 있어도 붙어야하는데. 이백여 명을 선발하는 명단에 내 이름이 반드시 들어가야 집안 체면도 서고 금봉이를 떳떳하게 만나볼 수가 있을 텐데…….’

박달은 잠시 두 눈을 감고 과거에 합격하여 금의환향하는 상상을 하며 입가에 미소를 뗬다. 조선의 교육 제도로 한양에는 국립대학인 성균관이 있고, 또 공립 고등학교의 격(格)으로 동, 서, 남, 중 네 곳에 세운 사학(四學)이 있었으며, 지방에는 또 공립중등학교인 향교가 있었는데, 그 모두에서 양반의 자손을 입학시켜 실시한 교육은 대부분 과거의 급제를 위한 준비 교육이었다.

각 지방에는 기초과목부터 시작하여 사서삼경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는데 주로 중인, 상민들의 자녀들이 공부를 하였다. 서당에서 가르치는 과목은 과거 응시를 위한 준비 교육이었다. 사람들이 과거를 통하여 입신양명을 노리는 까닭은 그 과거 급제 결과에 따라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각도 감영(監營)에서 행하는 향시(鄕試)나 중앙에서 실시하는 생진과(生進科)의 초시(初試)에만 합격하여도 세상 사람들이 ‘김초시, 이초시, 박초시’ 등으로 호칭하여 우대하였다. 중앙의 생진과에 급제하면 ‘최생원’, ‘정진사’ 등으로 불리며 본인과 가문에서 명예롭게 여겼다.

생진시에 급제하여 그 증서인 백패(白牌)만 받으면 살인죄 이외의 범죄에 체포나 감금을 면하였다. 또 대과(大科)에 급제하여 홍패(紅牌)를 받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 앞에는 소도(蘇塗)를 높이 세워 그 마을을 지나는 사람이 경의를 표하도록 하였으며, 말을 타고 가는 사람은 말에서 내려야 했다. 그야말로 과거 급제 결과는 대단한 자유인으로서 치외법권적인 특권을 누리도록 하는 지름길이었다. 과거는 3년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었는데, 그것을 대비과(大比科)라 하였다. ‘대비(大比)’란 3년이 곧 대비(大比)이니, 그 덕행과 도예를 살펴, 어진 사람, 능한 사람을 발흥(發興)토록 한다‘라 한 것에서 비롯했다.

자(子), 묘(卯), 오(午), 유(酉)가 드는 해를 식년(式年)으로 하여 시행함에 따라 식년시라 불렀다. 식년시는 소과(小科). 문과(文科), 무과(武科), 기타 등으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그밖에도 부정기적으로 증광시(增廣試), 별시(別試), 알성시(謁聖試) 등이 있었다. 식년시 외에도 국가에 큰 경사가 있거나 혹은 여러 경사들을 합(合)하여 특설하는 과거를 실시하였는데, 그러한 과거를 증광시(增廣試)라 하였다. 특별히 여러 경사를 많이 합하였을 때에는 대증광(大增廣)이라 하고 그때는 선발 인원 정수도 많았다. 어떤 때는 삼백 명이 넘는 합격자를 선발하기도 했다.

박달을 유혹하려다 창피만 당한 주모는 이전과 다르게 행동하였다. 다른 사람에게는 제때에 밥을 주면서도 박달에게는 일부러 늦게 밥을 주거나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박달은 주모의 그러한 행동을 괘씸하게 생각하였지만 별수 없이 그녀의 횡포를 감내해야 했다. 박달을 향한 주모의 노골적인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달은 과거 준비에 전념하였다. 노잣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는 터라 박달은 이번 과거에 반드시 합격해야 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박달 서방님이 이번 과거에 꼭 합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어사화를 꽂은 사모를 쓰고 소녀 앞에 나타나도록 도와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달이 금봉이에게 큰 정표를 안겨주고 떠나간 지 한 달이 훨씬 넘었다. 초저녁부터 뒤꼍에서 장독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천지신명님에게 치성을 드리는 금봉을 바라보는 봉양댁의 가슴은 답답했다. 최대호는 딸의 그러한 행동을 못 본체하면서도 밤낮으로 천지신명님에게 치성을 드리는 딸의 건강이 염려되기 시작하였다. 날이 갈수록 금봉낭자의 치성은 더욱 간절하였고 금봉낭자는 예전보다 많이 여위어 있었다.

“얘야, 날씨가 차구나. 방에 들어가 몸 좀 녹이고 와서 하려무나. 그러다 몸살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그러니?”

딸의 안타까운 모습에 최대호는 딸에게 슬며시 다가가 말은 건넸지만, 금봉이는 괜찮다는 말만 할 뿐이었다.

“네가 그렇게 밤낮으로 지성을 드리는데 천지신명님께서 모르는 체 하시겠니? 조금만하고 들어가거라. 그러다 네가 탈이라도 날까 걱정이다.”

“아버님, 전 괜찮아요.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하다 들어갈게요.”

“금봉아, 이제 작작 좀 해라.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면 네가 치성을 안 드려도 박도령이 과거에 떡하니 붙을 것이고, 박도령이 평소에 공부를 게을리 하였다면 네가 아무리 지성을 드린다고 해서 합격하겠니? 다 천우신조야. 그만하면 되었으니 이제 지성을 그만두렴. 몸이 축나면서 까지 할게 무에야?”

봉양댁은 제 몸도 돌보지 않고 비손하는 딸의 행동이 못 마땅했다. 어쩌다 발길이 닿은 사내의 입신양명을 위하여 저리 공을 들이는 딸이 한편으로는 밉기도 하면서 측은하기도 했다. 박달이 정말로 과거에 급제하면 찾아올지도 의문이 들었지만, 만약 과거에 급제하면 딸에게 그 광영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과거 급제한 박달이 산골 처녀에게는 너무나 과분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금봉은 정성을 다해 박달의 과거급제를 위하여 치성을 드리는데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 해주지 못할망정 야박하게 말하는 어머니에게 서운해 했다.

‘저 얘가 며칠 사이에 박도령에게 어떻게 마음을 빼앗겼기에 저리도 극성이란 말인가? 내 몸에서 나온 자식이지만 알 수가 없으니 원.’

봉양댁은 딸의 서운해 하는 표정을 보고는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속으로 혀를 찼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박씨 가문에 광영을 주시옵고, 소녀에게도 복을 주소서. 이렇게 빌고 비나이다.”

금봉이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님에게 치성을 드린다는 소문이 금방 산촌에 쫙 퍼졌다. 어떤 사내들은 금봉이 천지신명에게 치성을 드린다는 현장을 보기 위하여 금봉이 집 담장에 접근하여 훔쳐보기도 하였다. 여인들조차도 삼삼오오 모여 살며시 최대호의 집 담장에 접근하여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느라 극성을 떨기도 하였다.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동네 참새들 때문에 박달도령과 금봉이가 장래를 약속한 사이라는 둥 이미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둥 별의별 해괴한 소문이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다.

최대호와 봉양댁은 딸과 관련한 소문에 대하여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자 소문은 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다. 동네 여인들이 모이는 장소에는 으레 금봉이의 이야기가 주된 화재거리였다. 여인들은 핏대를 올려가며 금봉이를 비난하기도 하고 편을 들기도 했다.

“개똥이네, 소문들었수?”

“응? 뭔 소문?”

“개똥어멈은 벌말 평동사람 맞수?”

“뭔데 그러우? 소똥어멈?”

“얼마 전, 금봉이네 집에 웬 낯선 남자가 며칠간 있었잖수?”

“응, 그랬었다고 들었어.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데 그게 뭐 어찌되었다는 거유?”

“그때 금봉이와 그 사내가 매일 밤 물레방앗간을 들락거렸대요.”

“왜 허름한 물레방앗간엘 들락거렸을까?”

“젊은 남녀가 밤마다 물레방앗간을 드나들었으면 뻔할 뻔자 아니겠어?”

“뭐가 뻔하다는 거여?”

“어이쿠, 이런 맹추 같은 여편네.”

“소똥어멈, 내가 좀 알아듣게 이야기 해봐유.”

“청춘 남녀가 밤마다 물레방앗간을 찾았다는 게 무얼 의미하겠수?”

여인들은 빨래터에 앉아 배꼽을 잡고 깔깔거렸다. 두 여인의 묘한 웃음소리에 다른 여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괜히 비실비실 웃었다. 두 여인이 주고받던 이야기는 빨래터에 나온 모든 여인들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여인들은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다 말고 멍하니 하늘을 보며 물레방앗간 정사를 상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요상한 소문이 마을에 도는데 그것도 정말인가 봐.”

“그건 또 뭔소리유?”

“글쎄, 금봉이가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이등령을 오르내린대요.”

“그것참, 점점 알 수 없는 이야기네. 금봉이가 이등령을 왜 오르내려?”

“어이쿠, 이 밥통 같은 여편네. 저 험한 이등령에 올라가야 임계신 한양 쪽을 바라다 볼 거 아녀?”

“금봉이가 그 도령이 떠나는 날 산척까지 따라가서 배웅하고 왔다잖아. 두고 봐. 조만간 희한한 일이 일어날 테니.”

여인은 근거도 없는 소리를 해놓고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소똥어멈, 그건 또 뭔 소리유?”

“아니유. 내 혼자한 소리구먼.”

동네 아낙 두 명만 모이면 온통 금봉이 관련 이야기 뿐 이었다. 소문의 진원지는 바로 동네 총각들 입이었다. 박달이 벌말에 며칠 묵는 동안 박달을 질투하던 벌말 총각들은 금봉이를 헐뜯는 말들을 쏟아 냈다. 물레방앗간에서 두 사람이 나누던 사랑의 밀어를 엿들은 사내의 입이 소문의 근원지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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