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벌말 사내들의 질투

“갑돌아, 너는 배도 안 아프니?”

“뭐가?”

개똥이가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려 있던 갑돌이 심기를 건드렸다.

“금봉이가 박도령과 배꼽을 맞추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봐? 동네에 소문이 파다하니 말이여?”

개똥이는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신이 나서 갑돌이에게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 하였다.

“야! 네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 네가 금봉이와 그 도령이 배꼽 맞추는 걸 봤어? 사내놈이 입이 촉새처럼 가벼워서 뭐할래?”

“내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동네에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너는 귀도 없냐? 온 동네가 금봉이 때문에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난리인데.”

개똥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근거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내가 경고하는데 한번만 더 쓸데없이 금봉이 이야기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명심해. 절대로 가만 안 둔다.”

갑돌이가 주먹을 치켜들면서 곧 개똥이를 내려칠 기세였다.

“네가 뭔데? 네가 금봉이 서방이라도 되는 거야? 정말 살다 살다 별 요상한 말을 다 듣겠네. 수돌이는 가만히 있는데 네가 뭔데 지랄이야. 염병할.”

개똥이는 갑돌이와 동네 청년들을 번갈아 보면서 큰소리 쳤다.

“개똥이, 너 오늘 나한테 혼나 볼래.”

수돌이네 사랑채에서 동네 총각들이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갑돌이와 개똥이가 언쟁을 벌이자 난리가 났다. 약이 잔뜩 오른 갑돌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몽둥이를 들고 개똥이를 두들겨 팼다. 개똥이 머리통이 깨지면서 피가 흐르고 죽겠다며 비명을 질러댔다. 옆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동네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말렸지만, 워낙 완력이 강한 갑돌이를 쉽게 말리지 못했다.

“너, 한번만 더 그런 얘기 하면 아주 죽여 버릴 거야.”

친구들이 겨우 갑돌이와 개똥이를 떼어 놓았지만 갑돌이는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머리가 터져 피를 뒤집어 쓴 개똥이가 갑돌이에게 달려들어 대항해 보았지만 갑돌이에게 계속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친구들이 두 사람을 떼어 놓았지만 개똥이는 억울한 듯 갑돌이를 노려보았다.

“갑돌아, 너무했다. 그래도 친구인데 친구를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개 패듯 패면 어떻게 하니?”

갑돌이에게 매 맞은 개똥이는 집안이 떠나갈 듯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갑돌이를 죽여 버리겠다고 발버둥 쳤다. 개똥이의 비명을 듣고 마을 어르신들이 모여 들었다.

“개똥이 놈이 동네방네 다니면서 금봉이 험담을 하고 다닌다고 하지? 저런 변변치 못한 놈 같으니라고. 그러니 갑돌이에게 매를 맞지. 그놈은 매를 맞아도 싸.”

갑돌이가 개똥이를 흠씬 패준 것이 하나도 잘못된 게 없다고 마을 어른들은 생각했다.

“네가 너무한 거 같아. 개똥이를 저리 개 패듯 해놨으니 당분간 동네가 시끄럽겠어. 빨리 금봉이 일이 잠잠해져야 하는데…….”

수돌이가 갑돌이 눈치를 보았다.

“그 착하디착한 금봉이가 어째서 동네북이 돼야 하는 거야? 나는 금봉이가 동네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못 마땅해. 제 딸년들은 이놈저놈하고 붙어 다니는 것을 뻔히 알면서 어쩌다 금봉이네 집에 훤칠한 과객이 며칠 묵었다고 샘이 나서 근거도 없는 소문을 퍼트리고 다녀? 빌어먹을 여편네들. 아니지, 여편네들이 아니고 주둥이가 가벼운 몇몇 사내놈들 때문이지.”

갑돌가 술잔을 비우고 휑하니 수돌이네 사랑채에서 나가버렸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몸 건강히 과거공부에 전념하도록 도와주소서. 이 소녀,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달님! 우리 박달 서방님 소식을 아시는지요? 우리 박달 서방님께서 하루 세끼 밥 잘 드시고, 과거준비를 열심히 하시는지요? 달님, 박달 서방님에게 요상한 기운이나 마(魔)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보호해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달님이 측은한 시선으로 산골의 순진한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금봉이가 밤마다 천지신명에게 치성을 드린다고 하더니 참말이었구나. 그럼, 나는 뭔가? 지금까지 금봉이 하나만 바라고 살아왔는데, 나는 무엇이란 말인가?’

갑돌이 금봉이가 장독대 앞에서 천지신명님에게 치성드리는 소리를 듣고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사이라 금봉이와 허물없이 지내온 터였다. 또한 언제부턴가 금봉이를 마음속에 두고두고 은연중 마을 총각들에게 자신이 금봉이의 배필로 가장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하고 다녔으며, 동네 사람들은 갑돌이와 금봉이가 곧 부부의 연을 맺을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놈이 우리 마을에 찾아와 이런 평지풍파를 만들었단 말이더냐? 나는 이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십년 공들인 것이 하루아침에 도루아미타불이 되었더란 말이냐?’

갑돌이 담장에 기대어 소리 없이 흐느끼며 가슴을 쳤다. 어릴 때부터 스스럼없이 지내온 금봉이 어느 날 난데없이 찾아 온 과객 때문에 변해 버린 것에 대하여 갑돌이는 진작 금봉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때 내가 금봉이와 금봉이 부모님을 설득해 과객을 우리 집이나 다른 집에

묵게 했어야 했다. 내가 바보짓을 했구나. 정말로 내가 바보짓을 했어. 멀쩡하게 두 눈 뜨고 금봉이를 그 녀석에게 빼앗기다니. 이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일을…….’

금봉이 부모님은 갑돌이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고, 갑돌이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어서 자신이 금봉이와 백년가약을 맺을 거라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이 이제 물거품이 되어 버린 이상 갑돌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다.

‘지금이라도 금봉이가 그 박달인가 뭔가 하는 놈을 잊게 만들어야 해. 더 늦기 전에 금봉이가 그 녀석을 잊도록 무슨 조치를 하지 않으면 금봉이를 그놈에게 빼앗길 거야.’

갑돌이는 봉양댁을 만나보기로 하였다. 만나서 구두(口頭)로 다짐을 받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의 위안을 삼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밤새 뒤척이던 갑돌이는 다음날 아침 일찍 금봉이네 집을 찾았다. 갑돌이는 자신에게 늘 잘 대해주는 봉양댁을 만났다. 봉양댁을 만난 갑돌이는 벌겋게 충혈 된 눈으로 자신의 심정을 모두 말하였다.

“갑돌아, 조금만 기다려 줄래? 우리 금봉이가 지금 박도령에게 정신이 잠시 나가 있어. 잠시만 기다리면 금봉이 마음도 정리가 될 거야. 말로는 그 도령이 고향 가는 길에 한번 들리겠다고는 하였지만, 뜨내기 말을 어찌 믿을 수 있겠어?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줘. 우리 금봉이가 잠시 그 도령에게 혹해서 그런 거니까. 나는 너를 우리 집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저 얘가 잠시 정신이 나가서 그런 거야."

봉양댁은 갑돌이의 등을 다독거리며 위로하였다.

“어머니, 정말이지요? 금봉이가 박도령에게 마음 준거 아니지요?”

“그럼. 시간이 가면 금봉이도 그 도령을 잊을 거야. 내 짐작에도 그 도령이 우리 집을 다시는 찾지 않을 거야. 분명해.”

험-, 험-.

옆에서 두 사람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지켜보던 최대호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최대호도 마을에서 갑돌이 만한 사내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성에 차지 않았다.

‘박도령은 과거에 합격하면 꼭 찾아 올 거야. 절대로 나와 우리 금봉이를 모르 쇠할 사람이 아니야. 암 아니고말고. 저렇게 산촌에서 태어나 땅이나 파먹는 무지렁이 같은 녀석보다야 백번 천 번 잘 났지. 그럼, 잘났고말고.’

최대호는 궐련을 말면서 박달을 떠올렸다.

“어르신, 금봉이 마음은 잘 추스르도록 도와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는구먼요. 저는 지금도 금봉이가 저의 배필이라고 생각하는 있어요. 금봉이가 하루 빨리 그 사내에게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을 잡아주세요. 저는 금봉이 아니면 안돼요. 제발, 제 부탁을 들어주세요.”

험-, 험-.

갑돌이 사정을 해보았지만 최대호는 담배만 뻐끔뻐끔 피우면서 먼 하늘만 바라다 볼 뿐 이렇다 저렇다 아무 말이 없었다. 갑돌이는 그런 최대호의 태도에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과거 날이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박달은 더욱 분발하여 과거준비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박달은 노잣돈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주모는 계속해서 박달에게 추파를 던졌다. 어느 날 오후, 손님이 뜸한 시각 박달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에 주모는 박달의 옷가지를 모두 꺼내 빨래를 해서 뒷마당 빨랫줄에 널어놓았다. 밖에 나갔다 돌아온 박달은 주모의 행동에 신경이 쓰였지만 밀려있던 빨래를 해준 것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고마워했다. 고향을 떠나온 지 석 달이 다되도록 빨래를 하지 못했다. 사내가 빨래를 한다는 것이 창피하기도 하고 행여 누가 보면 어쩔까 싶어 입던 옷을 먼지만 툭툭 털어 입곤 했었다.

“주모, 고마워요. 내가 빨래를 해야 하는데 그대가 해주셨구려.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은혜 갚는 것은 아주 간단한데…….’

주모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 놓고 배시시 웃으며 박달에게 다가 왔다. 마침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도령님, 이제 과거 볼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제가 도령님 뒷바라지를 해드릴 테니 과거에만 전념하세요. 그동안 신경을 쓰게 해서 죄송해요. 저를 용서해주실 거죠? 저도 그날 밤 도령님을 그리 보내놓고 나서 마음이 편치 못했어요. 그러나 여인의 마음은 갈대와 같아서 늘 도령님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하여 제가 잠시 심술을 부렸어요. 이해해주셔요.”

주모는 풍덕한 엉덩이를 흔들어 가며 박달에게 달콤한 말을 건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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