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박달, 현시국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다

무릇 달이라하면 하늘에 떠있는 달을 연상하겠으나, 나는 하늘의 달을 보면 단순히 억조창생(億兆蒼生)을 먹여 살리는 영험한 신(神)으로 생각한다. 왜 그런고 하면 세상에 달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 보통 사람은 부모의 인연에 의하여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부터 시작해 정확히 열 달 만에 출세한다. 해와 달은 우리 인간사에 있어서 공기와도 같다고 할 수 있다.

해가 없다고 가정해 보자. 이 세상은 암흑천지로 변할 것이며 곧 영원한 동토(凍土)의 땅이 되어 인간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침에 해가 떠서 사해(四海)를

비추고 저녁이면 서천(西天)으로 들어간다. 해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별이나 달이 나타나 해를 대신하여 뭍 백성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준다.

한 하늘에 해가 둘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한 하늘에 해가 둘인 경우를 본다. 동절기의 경우 해가 서산(西山)에 들기도 전에 동산(東山)에서 또 하나의 붉은 해가 떠오른다. 그 뿐만 아니라 그믐의 경우는 어떠한가? 해가 동산에서 뜨면 또 하나의 희미하고 나약한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달의 역할은 정확히 무엇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달은 인간에게 평화를 가져다준다고 할 수 있다. 낮의 작열하는 태양에 비해 달은 은은한 빛으로 인간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주는 동시에 안온함을 주기도 한다.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달은 스스로의 모습으로 무언의 교시(敎示)를 하고 있었다. 수십억 년의 상한 세월을 달은 끝없이 윤회를 반복하면서 지상의 모든 생물과 무생물들에게 가르치고 또 가르쳐왔다. 작금 사람들은 달의 가르침은 잊은 채 오락이나 여흥을 위하여 달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여 왔다. 달은 부처이며 창조주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부처란 깨달은 사람, 눈을 뜬 사람, 완전한 인격자, 절대적 진리를 깨달아 스스로 이치를 아는 사람이란 뜻이다. 인간의 자궁(子宮)에서 태어난 분 중에는 불타가 유일하다.

불타는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해주어 깨달음과 실천을 두루 갖춘 분으로서 진리, 즉 법을 증득하고 실천하는 분이다. 나는 어머니 자궁에서 열 달 만에 출세하였다. 달이 없다면 지상의 모든 생명들은 태어날 수 없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고 달도 차면 기운다고 했다. 세상에 무한한 것이 어디 있던가? 성인께서 인생을 제행무상이고 제법무아라 했다. 지금의 사람들이 옛 달을 보지 못함은 등록망촉의 고사처럼 끝없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세상에 나와 이성(理性)의 눈으로 최초로 달을 보았을 때의 환희, 즉 초심의 맑은 호수 같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대취한 상태에서 달을 바라보는 작금(昨今)의 달은 달이 아니라 세속에 찌는 욕망의 화신이다. 공자께서도 교언영색(巧言令色)은 선의인(鮮矣仁)이라 하였다. 즉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에는 어짐이 부족하다고 하였으니 사람의 삿된 마음이 사라지게 되면 달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태조(太祖)께서 조선을 건국하였을 때도 유교를 국가통치의 이념으로 삼았으니, 더 늦기 전에 조정(朝廷)에서는 관리들의 눈에 낀 티를 없애 만백성이 청천에 뜬 전지전능한 달을 바라볼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나라의 왕은 태양이요 달이라고 할 수 있다. 낮에는 당연히 해가 주인이 되어야 하고 밤에는 달이 지배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의 달처럼 제대로 빛을 발산하지 못한다면 어찌 달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달은 밤에 떠서 은은한 빛으로 삼라만상의 근심 걱정을 듣고 고통을 위로해줘야 한다. 감히 달에게 요청하노니 심사숙고하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지금의 세제를 개혁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부국강병에 힘써야 한다. 상술하자면, 조정에서는 실시하고 있는 공납 제도를 재고하여야 한다. 그 고장에서 출산되지 않는 공물(貢物)을 받치게 함으로써 만백성의 고초가 극에 달하고 있어 조속한 대책이 필요하다. 만일 이대로 백성의 원성을 외면한다면 국기(國基)가 흔들릴 수 있음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종묘사직까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럼, 어떻게 공납의 폐해(弊害)를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본인의 대안은 다음과 같다.

공물은 세대를 대상으로 부과하여 백성들이 공납하던 토산물을 말하는데, 토산(土産)이 아닌 공물이나 농가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가공품 등을 공납해야 될 경우에 현물을 사서라도 바쳐야 한다. 따라서 이를 기회로 중간에서 이득을 취하는 상인 혹은 하급 관리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불법적인 수단으로 농민의 상납(上納)을 막기까지 하였으므로 방납(防納)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되었다.

지방에서 공납이 가능한 물품이라 할지라도 국가의 수요(需要)와 공납이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먼 지방으로부터의 수송에도 불편이 많았을 뿐더러 각 궁방(宮房)이나 관청에서 수납할 때에도 그 규격을 검사하여 불합격품은 이를 되돌려 다시 바치게 하는 등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국가에서는 경주인(京主人) 등으로 하여금 필요한 물품을 대신 바치게 하고 그 대가(代價)를 지방민에게 갑절로 받게 하였으므로 수요자와 방납자는 서로 결탁하여 지방의 납공자(納貢者)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므로 조정에서는 혁신적인 조처를 취하여야 한다. 즉 각 지방에서 바치던 공물을 각 지방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쌀로 대신 내게 함으로써 방납에 따르는 납공자들의 피해를 덜어야 한다. 이럴 경우 국가 조세의 증가로 이어 질 것이고 백성들의 원성은 줄어들 것이다.

- 경상도 풍산인 : 朴達 -

박달은 장문의 대책을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박달이 과장을 둘러보자 이십 여명만 남아 시권(試券) 작성에 전념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달은 나름대로 시권(試券)을 작성하고도 마음이 찜찜했다. 과연 자신이 작성한 답안이 조정에서 요구하는 답안인지, 아니면 엉뚱한 답을 지었는지, 혹은 시험관들의 심기를 건드려 불편하게 한 것은 아닌지 답답했다. 보통 과거를 보면 늦어도 당일 합격자를 발표하였으나 이번에 치룬 과거는 응시생이 많은 관계로 이틀 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하였다. 과장을 나오자 주모가 알아보고 박달에게 달려왔다.

“서방님, 욕보셨어요. 많이 힘드셨지요?”

“그런대로 보긴 보았소만…….”

“왜요?”

주모가 박달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안색이 좋은 편도 나쁜 편도 아니었다.

“서방님, 이제 다 잊으세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하잖아요. 그만큼 하셨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어서 가세요. 오늘은 주막으로 가지 말고 기루로 가요. 좋은 곳을 알고 있어요.”

“기루? 그대의 주막이 어때서요?”

“눈들이 너무 많아서요. 그래서 오늘은 서방님의 그간의 노고를 해소해드리고 싶어서요. 그러니 아무 말씀하시지 말고 따라오세요.”

‘이 여자가 무슨 여우소굴을 데리고 가려고 그러나? 하여튼 가보지 뭐. 과거도 끝났고 마음도 홀가분하니까.’

한껏 멋을 낸 주모는 박달 옆에서 걸어가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히죽거리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흘리기도 하였다. 비록 상민(常民)들을 대상으로 주막을 운영하는 여자이지만 생김새나 행동거지로 보면 여염집이나 사가(士家)의 여인이나 진배없었다. 주모는 남편이 과거를 준비하다가 죽은 관계로 과거에 한이 맺힌 여인이었다. 그녀는 헌헌장부의 박달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고 싶었다. 동백기름을 발라 반지르르 하면서 윤기 있는 큰 머리로 치장하고 옥잠(玉簪)을 꽂아 멋을 낸 주모의 모습은 세련된 한양의 유행을 말해주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앞서 걷는 주모의 붉은 치마가 나풀거리며 그 안에 감춰진 튼실한 육신이 박달을 유혹하고 있었다. 오던 길을 다시 걸으며 박달은 아침에 올 때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양의 번화한 모습에 넋을 잃었다. 창경궁을 바라

면서 박달은 다시 한 번 구름 위를 걷는 상상에 빠졌다.

‘꼭 합격해 저 궁궐을 드나들면서 나랏일을 봐야지.’

운종가에 들어서자 박달은 시장기를 느꼈다.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드디어 피마골(避馬洞)에 도착하였다. 피마길은 넓고 긴 운종가에 인접해 지어진 집 뒤로 난 좁은 길인데 서민들이 대로를 걷다가 말을 탄 높은 벼슬아치를 만나면 그 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엎드려 있어야 했다. 평민들의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골목길이 있는 곳을 피마골이라고 불렀다. 피마골은 선술집, 주점, 색주가, 장국밥집, 목로주점, 내외주점 등 일종의 한양의 대표적 서민 환락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큼은 양반 상놈이 따로 없었다. 무조건 돈 많은 사람이 대접 받는 아주 현실적이면서 이해타산이 우선시 되는 지역이었다. 과거를 보러 온 지방의 유생이나 어쩌다 한양에 놀러 온 지방 사람들은 목돈을 마련하여 들리는 곳이 이곳 피마골이었다. 물론 양반네들이 자주 애용하는 다동(茶洞)의 고급 기루촌(妓樓村)이 있지만 형편이 여의치 못한 백성들이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찾는 곳이 바로 피마골이었다.

“형님, 그 동안 안녕하셨지요?”

“응? 이게 누구야? 아지가 아니니? 아이고! 아지야, 이게 얼마만이냐?”

‘아지? 주모의 이름이 아지였구나.’

박달은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그동안 자신이 주모의 이름도 모르고 살을 맞대고 산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주모가 극락(極樂)이란 간판을 단 집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어떤 여인과 주모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얼싸 안고 반가워했다.

“형님, 극락도 예전보다 더 번창한 것 같네요.”

“아니야, 늘 그대로지 뭐. 아우님이 마포나루에서 주막을 열었다는 소리를 풍문에 얼핏 듣기는 했는데?”

“형님, 맞아요. 지금도 주막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참 손님을 받아야 할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도령님, 인사하세요. 이 언니는 이곳 극락을 운영하시며, 피마골을 대표하는 분이세요. 한양에서 언니를 모르면 오랑캐로 의심받아요.”

아지가 간드러지게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달이라고 합니다.”

“어머나, 아지야? 이렇게 칠칠한 대장부를 어떻게 모시게 되었니? 넌 참 사내 복도 많다. 부럽다.”

여인은 아지를 정말로 부러운 시선으로 보면서 연신 박달의 풍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언니도 한양에 내로라하는 남정네를 모두 꿰차고 계시면서 뭘 그러우?"

“쟤는 손님 앞에서 별말을 다 하네.”

“언니, 우리 박달 서방님이 몹시 시장하세요. 지금 막 성균관에서 과거를 보시고 오시는 길이세요.”

“그래, 알았다. 아주 맛있는 것으로 준비하마.”

극락의 여주인은 박달과 아지를 안채에 있는 비밀스러운 방으로 안내하였다. 겉은 여염집 비슷하게 생겼는데 방안에 들어가니 묘한 그림들과 장식들로 치장된 매우 낯선 곳이었다. 적나라한 남녀의 은밀한 행위가 묘사된 그림이 사방 벽을 어지럽게 장식하고 있었다.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