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산골 처녀 임신하다

“서방니임-, 꼭 안아주세요. 더욱 꼭 -.”

극락의 여주인이 문을 열다가 대취한 박달과 아지가 한 몸이 되어있는 모습을 보고 얼른 문을 닫고 문틈으로 두 사람의 애정행각을 훔쳐보았다.

‘남들 사랑놀이를 보니 나도 몸이 달아오르네. 염병, 저년은 하필 오늘 사내를 꾀어가지고 와서 내 가슴에 불을 지핀담.’

극락 여주인은 마른 침을 넘겨가며 아지와 박달의 뜨거운 장면을 계속 훔쳐보았다.

“아니 되오.”

아지의 입술을 훔치고 있던 박달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서방님, 갑자기 왜 그러셔요?”

“아니 되오. 나는 금봉이와 한 약속을 지켜야 하오. 나를 용서하시오.”

박달은 주전자를 들더니 벌컥거리며 순식간에 비우고 대취하여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내가 미친년이지. 그 여인에게 마음이 가 있는 남자의 마음을 훔치려 한 내가 미친년이야.’

아지는 술에 떡이 되어 인사불성이 된 박달을 바라보며 눈물을 찍어냈다.

“금봉 아버지, 나 좀 봅시다.”

금봉이에게 뜸을 뜨고 침을 놓은 박씨는 최대호를 슬며시 밖으로 불러냈다. 박씨의 얼굴빛이 밝지 않았다.

“박씨, 왜 그러우? 금봉이가 뭐 잘못되기라도 했소?”

“금봉 아버지, 내 이런 말을 해서 안 되었네만. 잘 듣게.”

“이 사람아! 무슨 이야기인데 그리 뜸을 들여?”

박씨는 곰방대에 불을 붙이더니 볼을 오물오물 거리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더니 박씨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네 딸이 홀몸이 아니네.”

“뭣!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인가?”

최대호는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갑자기 정신이 몽롱하면서 양쪽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바, 박씨! 천천히, 천천히 말해보게. 우리 금봉이가 홀몸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이여?”

다급해진 최대호가 말까지 더듬으며 박씨 소매를 잡았다.

“자네 딸, 금봉이가 아기를 밴 것 같으이.”

“아기? 그게 정말인가?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밴단 말인가?”

“그러니 나도 그게 이상해서 아주머니 대신 자네를 불러 낸 게야.”

‘아아, 이 무슨 맑은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이더냐? 시집도 안 간 내 딸 금봉이가 아이를 가졌다니? 이건 말도 안 돼. 박씨가 잘못 진단하였겠지. 말도 안 돼는 소리여 이거는.’

금봉이 아버지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내가 알기로는 금봉이가 행동이 조신하고 얌전하며 매사 신중하게 행동하는 처녀로 알고 있는데…….”

박씨가 말끝을 흐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박씨, 박씨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녀?”

“글쎄, 나도 어깨 너머로 의술을 익힌지라 좀 찜찜하기는 해도 진맥을 짚어보니 분명 아이를 가진 진맥이 틀림없어.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자내에게 큰 죄를 짓는 거고. 아직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십시다.”

“분명히, 박씨가 잘못 진맥을 보았을 거요. 시집도 안 간 아이가 어떻게 아이를 가진단 말이오?”

“금봉 아버지, 하여튼 내가 짧은 의술로 잘못 진맥을 하였을 수도 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요. 너무 상심하지 마시고.”

“박씨, 부탁하오. 잘못 진맥을 했을 수도 있으니 절대로, 절대로 나와 당신 두 사람만 알고 있어야하오. 남에게 발설하면 안 돼요. 아시겠소?”

“내 입은 무거우니 염려 마오. 우선, 자네 딸에게 잘 대해주시오. 다리에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크게 넘어진 듯싶은데 거기에 몸살 기운도 있소.”

박씨가 돌아가자 최대호는 딸의 방으로 들어왔다. 누워있는 딸이 측은해 보였다. 인기척에 금봉이 눈을 떴다.

“좀 어떠니?”

“아버지, 이제 괜찮아요. 죄송해요. 걱정을 끼쳐드려서요.”

“아니야. 난 괜찮다. 그러나 저러나 어서 몸을 회복해야지.”

그때 봉양댁도 딸의 방으로 들어왔다.

“박씨가 뭐래요?”

“몸살 기운이 좀 있고 몸이 허해서 그런다고 하니까 당분간 푹 쉬라고 하던데. 금봉아, 내일부터 당분간 집 밖 출입을 자제하고 집에서 있어야 한다.”

“그 말 말고 또 다른 말은 없우?”

“다른 말?”

“금봉이가 아픈 데는 없답디까?”

“몸살이야 이삼일 푹 쉬고 나면 낫겠지. 멀쩡한 애를 병자 취급하지 마오?”

최대호의 목소리에 어딘가 모르게 불편함이 묻어 있는 듯 했다. 최대호가 방에서 나가자 봉양댁은 금봉이에게 내일부터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고 집안에 있으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이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맞아. 맞을 거야. 박씨의 진맥이 정확할거야.’

최대호는 동네 과수댁이 운영하는 주점을 찾았다. 그는 탁주잔을 앞에 놓고 궐련을 빨아대며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주막은 아니지만 동네 남정네들을 상대로 술을 담가 파는 과수댁은 늦가을부터 늦봄까지 농한기에만 한시적으로 주점을 열고 있었다.

“금봉 아부지, 뭘 그리 고민하우? 술 안 드슈?”

“응? 드, 들어야지.”

“아까부터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슈? 집에 뭔 근심거리라도 있수?”

“아무것도 아니오.”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데? 뭔지 말해보슈. 혹시 내가 도움이라도 줄지.”

“영수 어멈은 아이를 낳았으니까 알겠지.”

“뭘 말이우?”

“여자가 임신했을 때 얼마정도 지나야 확실하게 알 수 있우?”

“갑자기 아기 밴 이야기를 왜 허우? 마나님이 늦둥이라도 뱄수?”

“그게 아니고. 내 먼 친척 되는 조카가 있는데 시집간 지 삼년이 넘어도 아이가 안 들어서서 나한테 고민 토로하기 묻는 거요.”

“그야, 꽃물이 끊기면 영락없이 애를 뱄다고 판단하면 돼유.”

“꽃물이 뭐요?”

“아이구! 그거 있잖수.”

“그거라니?”

과수댁은 차마 남자 앞이라 자세히 말할 수 없어 답답해하였다.

“아이고, 망측해라.”

“그러지 말고 자세히 말해 보구려. 답답하오.”

“그게 그리 궁금하면 마나님에게 물어보면 될 거 아니겠수?”

‘아니, 이 여편네가 남의 속도 모르고 지금 농담을 하나?’

“꽃물이라면 여인들이 한 달에 한번 하는 달거리를 말하는 거요?”

과수댁은 배꼽을 잡고 자지러질 듯 웃었다.

‘원, 이런 빌어먹을 여편네가 다 있나?’

“맞수, 그런데 금봉 아부지가 그런 걸 물으니 내가 괜히 기분이 묘해지는 구랴. 나는 꽃물 끊긴지 십년이 넘었수.”

험-, 험-.

최대호는 장독대 뒤에 놋요강 두 개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나는 아내의 것이고 작은 것은 딸의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 못 본 척 해왔다. 아직도 한 달에 한번 달거리를 하는 아내는 무명으로 된 개짐을 쓰고 있는데, 한번 사용한 개짐을 요강에 물을 가득 채우고 넣어 두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 핏물이 빠지면 깨끗하게 빨아 사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집안의 유일한 남자인 최대호는 요강 두 개가 놓여 있는 그 곳을 신성한 장소라고 생각하면서 절대 그 요강을 열어 보거나 접근하는 것조차 금기시 했다. 아내와 딸이 비슷한 시기에 월경한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금봉이가 박씨 말대로 아기를 가졌다면 그건 분명 두 달 전 내 집에 닷새정도 머물렀던 박도령의 씨앗이 분명할 거야. 그 사람이 한양으로 떠날 때 금봉이가 ’서방님'이라고 불렀었지.’

“과수댁, 술 반 주전자만 더 내오구려.”

“금봉 아부지, 너무 과한 거 아니우?”

“나는 보통 세 주전자는 마시지 않소?”

“그런데 금봉 아부지, 오늘은 안색이 영 안 좋아 보이시유. 조금만 들어유. 나야 술을 많이 팔면 좋지만 금봉이 아부지 건강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이유.”

“내 걱정 말고 내오구려.”

“알았수.”

‘그럴 거야. 그렇다면 금봉이가 사용하는 요강을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군. 그런데 금봉이가 정말로 아이를 뱄다면 어찌해야하나? 박도령 그 사람이 과거가 끝났으니 머지않아 고향으로 갈 테지. 가는 길에 분명히 벌말에 들릴 테고…….’

“내가 한잔 따라 드리겠수. 혹시 마나님이나 금봉이가 아이를 뱄수?”

과수댁이 도끼눈을 뜨고 최대호를 쳐다보았다.

“영수 어멈, 그게 무슨 말이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를 배다니?”

최대호가 버럭 화를 내자 과수댁은 비실거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최대호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약 이일이 동네에 소문나면 우리 금봉이는 행실이 안 좋은 아이로 낙인찍힐 것이고 혼삿길은 막힐 것이다. 아니지, 박도령이 과거에 떡하니 합격해서 찾아온다면 얼른 혼인을 시키면 되지. 그렇지! 박도령과 짝을 맺어주면 되겠구나. 내가 괜한 걸 가지고 걱정을 했구먼.’

“술 맛 좋다.”

최대호는 밤늦도록 혼자 자작하며 애꿎은 담배만 축냈다.

날이 밝았다. 박달은 아침 일찍 서강의 주막을 나섰다. 오늘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아지가 따라오겠다고 하는 것을 박달은 억지로 떼어 놓고 혼자 가기로 하였다. 과거 보던 날 마차를 타고 가던 길을 혼자서 걷기로 하였다.

“서방님, 합격자 발표를 확인하시면 얼른 오세요. 보나마나 합격하셨을 테니 잔치를 준비할게요.”

박달은 운종가에 피마골에 있는 색주가 '극락’에서 아지의 가슴에 상처를 준 이후 두 사람은 소원하게 지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내하고 아지는 오늘을 기다려왔다. 아지의 얼굴은 방금 이슬 맞은 복사꽃처럼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생글거리며 박달 도령에게 의복을 정제해주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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