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직 떠나지 마세요.

김왕노

어쩌다 내 꿈에 오신 어머니 떠나지 마세요.
이제 눈부신 사과를 따고 멀지 않아 거친 풀을 되새김질하던
언덕의 소가 새끼를 낳을 겁니다.
송아지에게 순둥이니 누렁이니 복덩이니 이름 하나 짓고
아장걸음으로 송아지가 들판으로 뛰어나갈 때까지 어머니 계셔요.
어머니가 걷던 강가의 미루나무가 노랗게 물들어 파닥입니다.
그간 어머니 힘 드셨으니 푹 쉬다 가세요.

내 솜씨가 좋지 않아 꿈속이 좀 누추하나 어머니 좋아하시는
마당가에 심은 소국이 서리를 견디며 고봉의 밥처럼
환하게 피어나면 눈요기라도 실컷 하고 가세요.
어머니 내 꿈속에 열리는 가을하늘이 어느 하늘보다 곱습니다.
할머니와 마주 앉아 도란거리며 다듬이질하던 다듬돌
낙숫물 똑똑 떨어지며 시간이 깊어가는 것을 알리던 처마 끝
새벽에 정화수 떠놓고 약골인 내가 건강하라고
날마다 치성을 드리던 부엌도 그대롭니다.
백년우물물이 차오르던 우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석쇠로 굵은 고등어를 구워 차린 밥상위로 하나 둘 별이 뜨고
외등마저 조는 내 늦은 귀가를 끝내 기다려주셨던 어머니
오늘은 내가 석쇠로 고등어를 굽습니다.
어쩌다 내 꿈에 오신 어머니 떠나지 마세요.
어머니 가시면 내 꿈은 눈물로 홍수나 절단 날게 뻔합니다.
곧 겨울의 시린 발소리가 천지에 자욱할 텐데
이제 가면 언제 오실지 모를 어머니, 몇 시간만이라도 더

‘아빠가 꿈에 보여도 무서워하지 말라. 아빠는 하늘나라에서도 너희가 항상 잘 되기를 늘 기도 하고 있다.’남편이 떠났을 때 가장 먼저 중학생 고등학생 어린 자녀들에게 내가 한 말이다. 정작 나는 6개월간 불면에 시달렸다. 결혼 초부터 남편은 아파서 병간호를 해야 했고 생활력도 없고 술도 너무 마셔서 잘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었지만 떠난 후 나는 잠을 못 잤다. 뼈 속까지 처절하게 삶과 죽음이란 허무에 대하여 몸살을 앓았다. 거기에 어린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다른 아이들이 얕보지 않을까 고민이 산처럼 쌓여져서 힘들었었다. 그에 비하면 부모님의 사망은 큰 상처는 아니었다. 아마도 내 나이가 많아서 겪은 이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 꿈속에서 부모님을 뵈면 살아 있는 모습이었기에 기쁨이었고 아쉬웠다 이 시를 읽는 동안 고향의 풍경이 그대로 그려져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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