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
민소연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짙은 약속을 얼떨결에 움켜쥐었을 때
새끼손가락 끝에 검붉은 피가 모였을 때

치밀한 혀를 가지게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어떤 밤엔 마침내 혀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발음했다

맺혔던 울음소리가 몇 방울 떨어지고
태어나고

수도꼭지를 끝까지 잠갔다
한밤중엔 그런 소리들에 놀라서 문을 닫았다
너무 규칙적인 것은 무서웠다 치열하게
몸을 움직이는 초침 소리나
몸을 웅크린 채 맹목적으로 내쉬는 너의 숨소리가 그랬다

거듭 부풀어 오르는 뒷모습을 보면서 호흡을 뱉었다
어쩌면 함께 닳고 있는 것 같았다
박자에 맞춰 피어오르는 게 있었다 입김처럼
희뿌옇고 서늘했다
숨을 삼키다 체한 밤이면 너를 깨웠다
내기를 하자고 했다

누가 더 먼저 없어질 것 같은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보자고 했다 너와 나는 모두
내가 먼저일 거라는 결론을 내려서

우리는 오래도록 같은 편이 되었다
내가 죽은 척을 하면 너는 나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등 뒤에서 각자의 깍지를 움켜쥐었다
영원한 타인에 대해 생각했다
손끝에 짙은 피가 뭉치면

동시에 숨을 전부 내쉬었다

품 안에서 녹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살갗이 들러붙었다

오늘은 202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품인‘드라이아이스-결혼기념일’을 읽는다. 사랑을 드라이아이스로 표현한 것이 새롭다는 평이다. 심사위원들의 다음 평이 특히 주목이 갔다.‘독자를 속이려는 현학적 말장난이 없으며 속이 텅 비어 있음에도 엄청난 비유인 척 요란하거나 요설이 없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에 동감한다. 점점 현대 시는 음악에서 랩rap을 접하는 것처럼 내용을 파악하기가 난해한 경우가 많다. 물론 나의 해석 역량이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비유가 남발하는 경우는 촌스럽고 지루할 수가 있겠고 또한 비유가 이치에 혹은 연관성에 타당하지 못하고 억지스러우면 흔들리게 된다. 심장을 찌르는 날카로운 한방의 비유가 필요한데 부자연스러운 비유는 독자의 설득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말 안되는 말장난에 그칠 수 있다. 가수가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듣는이가 좋아하지 않고 감동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참으로 시 쓰기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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