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훼방꾼

"흥, 절대로 못 찾을걸. 이제 경우 내 서방이 되었는데 허무하게 내 줄 수 없지. 그 금봉이란 처자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어."

아지는 박달이 주막에 있을 때 일행들이 찾아왔더라면 그를 빼앗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지는 문 밖에 소금을 뿌리면서 손을 탁탁 털었다. 잠시 뒤에 박달이 돌아오자 아지는 사정이 생겼다면서 그를 운종가의 극락으로 데리고 갔다. 박달은 영문도 모르고 아지를 따라 나섰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방님, 며칠간만 이 극락에 있으세요. 우리 주막은 지금 너무 춥고 또 지붕이 새서 수리를 해야 해요, 수리하는 동안 시끄러워서 공부하시기 힘들 것 같아서 이리로 모셨어요. 사나흘만 게시면 됩니다.”

“그대 말대로 하지요.”

‘그것참 이상한 일이로세. 갑자기 잠자리가 바뀌니 마음이 편치 않을 걸. 그러나 할 수 없지.’

박달은 주점에서 공부를 하려니 깊은 방에 옆 밀실에서 들려오는 요상한 소리에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남녀가 교접(交接)하면서 내는 신음이 분명했다. 박달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여인의 교성(嬌聲)에 그만 책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곧 과거를 봐야하는 사람에게 이런 장소에 머물게 하다니. 도대체 저놈의 소리 때문에 공부를 할 수가 없네. 자꾸만 묘한 생각이 들고.”

박달은 극락의 여주인에게 술을 주문하였다. 그는 자작(自酌)하면서 쾌락에 겨워하는 남녀의 긴 여운(餘韻)을 안주로 삼았다.

최대호 일행은 광통교, 애오개, 이현시장, 용산, 구파발, 숭례문, 다동 등 한번 다녀갔던 길을 다시 밟으며, 주막과 객사(客舍)를 찾아 다녔지만 끝내 박달을 찾을 수 없었다.

“어르신, 저희가 가보지 않았던 곳을 한번 돌아보고 사대문 주변으로 가시지요. 한양에는 수백 곳에 주막이 있을 테지만, 사대문 주변의 주막이나 객사에 지방 유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하니 그곳을 집중 찾아보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곳에 박도령이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그러세. 마지막으로 뒤져보자고.”

일행은 흥인지문과 숭례문 주변의 주막과 객사, 민박집을 이 잡듯 찾아 다녔다.

“어머나, 이분은 박달도령님 이신데.”

“아가씨가 이분을 본적이 있습니까?”

“네에, 얼마 전에 우리 주막에서 머물면 일손을 거든 적이 있어요.”

“아, 그래요?”

갑돌이 칠패시장 주변 주막에서 간난이를 만나 박달에 대한 소식을 접하고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아가씨, 우리는 이분을 꼭 찾아서 고향에 데리고 내려가야 합니다. 이분과 장래를 약속한 낭자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시간이 없습니다. 이분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오.”

종철이 간난이에게 통사정하였다.

‘어찌해야 하나? 박달님이 그때 그 언니와 마포 서강 주변 주막으로 간다는 것만 알고 있는데…….’

“아가씨, 한시가 급합니다. 이분이 있는 곳을 좀 알려주시오.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이오.”

간난이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저도 달포 전에 어떤 여자 분이 오셔서 박달도령님을 모셔간 것 밖에는 몰라요. 마포 나루 근처에 있는 주막으로 가신다고 들었어요.”

“그 주막 이름이나 그 여자분 이름은 모르십니까? 부탁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박도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낭자가 있어요. 그 낭자의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낭자가 박도령을 만나면 소생할 수 있습니다. 부탁합니다.”

이번에는 갑돌이가 간난이에게 통사정 하였다.

“주막 이름하고 위치는 정확히 모르겠고요. 그 언니 이름이 아지라고 했어요. 그 언니 얼굴이 엄청 예쁘고 눈웃음을 살살칠 때 보면 왼쪽 볼에 보조개가 움폭 패인답니다.”

“고맙습니다.”

최대호 일행이 주막을 나서자 간난이는 문밖까지 따라 나와서 인사하고 멍하니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언젠가 박달이 찾아 올 거라고 기대는 하였지만 두 여인 사이에 얽혀 있는 인연의 덫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박달이 불쌍하게 느껴졌다.

“어르신 빨리 마포로 다시 가야겠습니다.”

“갑돌아, 조금 전에 그 아가씨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제 오후에 우리가 마포에서 들렀던 그 주막 여주인 이름이 아지일거야. 그 여자 인상이 웃을 때 보면 볼에 보조개가 피었었어.”

일행이 부리나케 마포나루를 향해 달리다시피 했다.

아지의 욕심은 한양의 사대부가 며느리들이나 중산층 여인들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일찍이 부처께서 여인의 다섯 가지 욕심에 대하여 갈파하신 적이 있었다. 호화롭고 귀한 집에 태어나기를 원하고, 부귀한 집 자제와 혼인하기를 원하며, 또한 남편이 자신의 뜻에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많은 자식을 바라고, 집 안팎에서는 마음대로 하는 것을 바란다. 아지의 욕망에 비하면 제천 평동 벌말의 소녀, 금봉은 순수함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박달의 과거 급제 한 가지만 지극 정성을 다하여 천지신명에게 빌고 또 빌었으나, 타의(他意)에 의해 부당하게도 과거에 낙방하여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천생연분인 박달과 금봉의 불행은 조정의 탐욕스러운 관리들에 의해 비롯되었지만 그들에게 따질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어쩌면 때를 잘못 타고난 것이 불행의 원인이기도 했다.

“주모, 다시 왔소. 주모 이름이 아지가 아니오? 이 주막에 박달도령이 기거하고 있다고 알고 왔소. 그런데 그제는 어찌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거요? 지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아지는 최대호 일행이 들이 닥치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갑돌이 험악한 인상으로 아지에게 따지고 들었다.

“나는 박달이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우리 주막에는 온 적도 없어요. 어디서 잘못 알고 오신 듯 하네요. 저는 그렇게 무정한 여인이 아닙니다. 사람을 잘못 보셨어요.”

“이런 빌어먹을 여편네를 봤나. 우리가 그렇게 통사정을 하였는데도 잡아떼다니. 당신은 사람이 아녀.”

종철이 마당 한구석에 있던 돌절구를 들어 마당에 놓여 있던 평상 위에 내동댕이치자 평상이 산산 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바람에 주막에 들었던 손님들이 놀라서 하나 둘 빠져 나갔다.

“당신들 뭐야? 웬 놈들인데 행패를 부리는 거야?”

덩치가 깍짓동만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자신 만만한 표정으로 종철 앞으로 다가왔다.

“웬 놈들? 너는 뭔데 껴드는 거냐?”

“이놈아, 나는 마포나루 일대 주막들을 보호해 주는 이 지역 터줏대감 어른이시다. 어서, 부서진 평상 값을 물어주고 좋은 말 할 때 꺼져.”

사내가 눈알을 부라리며, 종철을 잡아먹을 기세였다.

“이놈이, 감히 충청도 제천 장사에게 덤벼? 오늘 너 제삿날인줄 알아라.”

“뭐야. 제천 촌놈이 감히 마포 터줏대감에게 덤벼.”

사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종철이 허공으로 붕 뜨더니 그의 두발이 마포 터줏대감의 가슴을 강타했다. 이어서 종철의 두 주먹이 그의 복부를 강타하였다.

“아이고, 나 죽네-.”

마포 터줏대감은 종철에게 기습을 당하고 배를 잡고 마당에 나뒹굴었다. 종철의 완력과 날랜 몸놀림을 덩치 큰 터줏대감은 당해내지 못했다. 금방 사람들이 싸움 구경을 하느라 우르르 몰려들었다. 주막을 나갔던 손님들 다시 주막 안으로 들어와 싸움 구경에 신이 났다.

“제천 장사 잘한다. 저놈은 이 일대 무뢰배여, 순진한 백성들 피를 빨아 먹고 사는 흡혈귀라고. 오늘 단단히 버릇을 고쳐놔야 해.”

“저놈에게 당한 자들이 수두룩해.”

“저놈,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났구먼.”

구경꾼들은 신이 나서 한마디씩 했다. 아지는 믿었던 터줏대감이 일방적으로 당하자 어쩔 줄 몰라 했다.

“주모, 박달이 있는 곳을 대요. 아니면 오늘 이 주막 박살 날 줄 아시오.”

갑돌이 험악한 표정으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던 아지를 윽박질렀다.

“그분은, 그분은 나흘 전에 고향 풍산으로 내려간다고 했어요. 그리고 고향 가는 길에 평동에 금봉 낭자에게 들린다고도 했습니다. 고향 갔다가 두 달쯤 다시 올라온다고 했고요.”

“당신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이오?”

“믿지 못하시겠다면 그분 고향 풍산에 가보면 알게 아니에요.”

아지는 이 순간을 모면하려 했다.

‘뭐라, 평동에 들린다고. 맞아. 박달이 우리 집에 오던 날 나에 게 고향이 풍산이라 했지. 나흘전이라면 우리하고 길이 엇갈렸구먼. 지금 쯤 경기도 여주 가남이나 음성 감곡 쯤 내려갔겠군. 그러나 저 여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믿을 수 있어야지.’

최대호는 아지가 풍산과 평동 그리고 금봉이라는 말을 꺼내자 그녀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당신 말을 어찌 믿지요? 그리고 당신이 박달이와 어떤 사이요?”

갑돌이 아지를 다그쳤다.

“주모! 나는 금봉 낭자의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박도령과 내 딸은 장래를 약속했습니다. 과거가 끝나고 바로 내려온다고 약속하고 반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믿어야 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한다면 세상이 어찌 되겠습니까? 내 딸은 지금 임신한 상태이고, 박도령이 곧 온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병이 들어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두 목숨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인간적으로 부탁합니다. 박도령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오. 일단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대호가 박달과 아지가 보통 사이가 아니라는 것은 직감하고 있었다. 그는 점잖은 말로 아지를 타이르듯 했다.

‘안 돼. 안 돼! 알려 줄 수 없어. 알려주면 서방님과 내가 지금까지 들인 정성과 노력이 한 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거야. 안 된 일이지만 절대로 알려줄 수 없어.’

아지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금봉의 아버지가 다시 한 번 박달의 소재를 알려 달라고 통사정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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