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산골 소녀 승천하다

“그러면 안 됩니다. 위험해요. 지금 잠시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금방 깨어날 수도 있으니 일단 조용히 해야 합니다. 이렇게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환자에게 도움이 안 됩니다.”

박씨가 만류하였지만 고모와 이모들은 금봉이 숨이라도 넘어간 것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아이고, 금봉아! 정신 차려라. 이렇게 가면 안 된다. 아버지도 안 계신데, 이리 허망하게 가면 안 된다. 정신 차려라.”

“조카야, 정신 줄 놓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지금 박도령을 데리고 오고 있어. 조금만 기다리면 돼.”

고모들은 당황하여 꺼져가는 조카의 생명줄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금봉은 의식이 돌아올 줄 모르고 마치 숨이 끊어진 사람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럇-.

금봉의 아버지와 갑돌은 저녁도 먹지 않고 제천 평동 벌말을 향해 달렸다. 최대호는 마부에게는 수고비를 더 계산해 준다고 약속하고 밤을 새워서라도 마차를 빨리 달릴 것을 부탁하였다.

“아버님, 금봉이가 아직은 괜찮겠지요?”

“그럼, 아직은 멀쩡할 게야.”

“그런데, 박도령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 박도령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뛰어난 인재라도 조상님들의 영향으로 과거에 낙방했을 수도 있다고 하는 말에 박도령이 때를 잘못 타고 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명인 것 같아요. 금봉이와 박도령이 만난 것도 이미 예전부터 예정된 만남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갑돌이 운명론자가 된 듯 침울한 표정을 입을 열었다.

‘그래, 운명이야. 그 집이나 우리 집이나 백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조상끼리 일면식(一面識)이 있을 것이야. 어쩌면 그때 조상님들끼리 맺은 인연이 후대에 다시 이어졌을지도 모르지. 박달 도령, 그 사람은 조선의 인재였구나. 내 딸과 맺어졌더라면 우리 가문이 번창할 기회였는데, 참으로 아깝고도 원통하다. 나나 금봉이나 또한 박도령이나 모두 때를 잘못 타고 났어. 백년 쯤 뒤에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마차는 덜컹거리며, 밤이슬을 맞았다.

“마부 아저씨, 마차를 좀 더 빨리 달려주세요. 지금 사람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렸습니다. 내일 날이 밝기 전까지 평동 벌말에 도착해야 합니다.”

갑돌이 마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달려보지요.”

이럇-.

마부의 고함과 채찍소리가 깊은 산에 메아리 쳤다. 그때 멀리 북쪽 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길게 사선(斜線)을 그으며 지상으로 떨어졌다.

“올케, 올케! 빨리 와봐요. 어서요. 금봉이가, 금봉이가 이상해요.”

금봉이의 큰고모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잠시 옆방에 있는 봉양댁을 불렀다. 건넌방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봉양댁이 놀라서 달려왔다. 그녀는 딸이 자리에 몸져누운 뒤로 단 하루도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졸고 있던 박씨가 금봉의 팔목을 잡고 진맥을 하였다.

“금봉아! 너 왜 이러니? 응, 정신 차려. 왜 이러는 거야.”

금봉은 눈을 감은 채 입을 벌리고 뭐라고 말을 하는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몸을 움찔움찔하면서 몸을 떨었다.

“어-, 어-, 어머-,”

금봉은 어머니를 찾는 것 같은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 여기 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니? 천천히 말해봐.”

봉양댁이 딸의 손을 꼭 잡고 귀를 입에 바싹 갔다 댔다.

“어, 어, 어머니, 서방님, 미워하지 마세요.”

“그래, 미워하지 않을게. 이것아,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일어나야지.”

“고마워요. 어머-.”

갑자기 금봉의 고개가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손에서 힘이 빠졌다.

“얘, 금봉아, 금봉아! 아이고, 금봉아. 금봉아, 정신 차리거라.”

“봉양댁, 금봉이가 그만 숨을 거두었습니다.”

“금봉아!, 금봉아!, 안 된다. 안 된다. 엄마를 두고 가면 안 된다.”

봉양댁, 고모, 이모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벌말의 밤하늘에 메아리 쳤다. 미쳐 피워보지도 못하고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무서리를 맞은 듯 시들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을 애별리고(愛別離苦)라고 한다. 여기에는 부모형제, 배우자, 자식, 애인, 벗 등과 생이별하거나 사별할 때의 괴로움이 포함된다. 예토에 사는 모든 사람은 애별리고의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개인마다 고통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다는 통한(痛恨)이라는 것에는 동일하다. 사람은 운명적으로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을 반복하며, 한평생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통석(痛惜)의 이별에는 부모형제와 자식 등 혈육의 별리, 부부나 정인(情人)의 영결(永訣) 만큼 가슴 아픈 이별은 없다. 혈육의 영결은 당연한 아픔이 뒤따르겠지만, 이성지합(二姓之合)으로 맺어졌던 부부의 영결은 혈육과 마찬가지로 그 슬픔의 정도도 가늠하기 어렵다. 형제와 혈육 간에는 촌수(寸數)가 있지만, 부부사이에는 무촌(无寸)이며, 동혈(同穴)의 벗이라 애틋한 감정은 형제간의 그것보다 더하다.

“아이고, 아이고 -, 금봉아,”

“금봉아-.”

“아이고 금봉아, 원통해서 이일을 어쩔거나. 아이고-.”

자시(子時 : 밤11시~새벽1시)가 시작될 때 금봉이 숨을 거두자 그녀의 어머니는 그만 실신하고 말았다. 고모와 이모 그리고 다른 친척들도 예상치 못한 급작스런 그녀의 죽음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였다.

금봉이의 사망 소식이 금방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장을 비롯한 반장들이 새벽에 그녀의 집으로 몰려들었다. 이장은 반장들에게 즉시 상청(喪廳)을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마을 청년들에게는 상가(喪家) 마당에 천막을 치고 상가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도우라고 하였다. 청년들은 바깥마당에 천막을 설치하고 모닥불을 피웠다.

"어쨌거나 참으로 금봉이가 안됐으이. 그 도령이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 상사병에 걸렸을까. 참으로 딱하게 되었어. 혼자도 아니고 뱃속에 아이까지 있다니. 쯧쯧쯧……."

"어허. 세상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구먼. 그래. 시집도 안 간 처녀가 아이를 밴 채 죽다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원로들은 요즘 젊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하면서도 금봉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였다.

"우리 마을이 생긴 이래로 이런 흉사는 처음이야. 성황신께 우리가 뭘 잘못한 거 같으이. 장례 마치고 이장을 비롯해 마을 원로들께서 서낭신께 제사를 지내야 해. 서낭신께서 노하신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마을에 이런 재앙을 내리실리가 없지.”

그녀의 아버지가 풍산에 가고 없는 상태에서 먼 친척이 임시 상주가 되어 장례치를 준비를 서둘렀다. 마을 원로들은 모여 장례에서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처녀가 한을 품고 세상을 하직하였기 때문에 마을에 흉사(凶事)였다. 게다가 망자의 복중에 들어있던 태아까지 동시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을 원로들은 혼인도 하지 않은 처녀의 원통한 죽음을 애도(哀悼)의 뜻을 표하면서도 찜찜한 표정이었다. 이장과 원로들은 이일 장으로 서둘러 장례를 치르는 것으로 결론을 보았다.

전통적으로 장례는 사람이 사망하고 삼일, 오일, 칠일 뒤에 치르는데, 혼인하지 못하고 죽은 젊은 남녀의 경우는 이일 장으로 치르는 것이 마을에 전통처럼 내려오고 있었다. 장례절차가 정해졌다. 마을의 장년들은 부르지도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상가에 모여 밤을 새우며, 장례 절차를 논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다음날 장례를 치르기에 위해서는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야 했다.

“아버님, 날이 밝아옵니다.”

“그렇구나. 봉양에 도착한 듯 하구나.”

밤을 새워 최고 속력으로 달려온 마차는 날이 밝아오자 더욱 속력을 냈다. 말이나 마부(馬夫)는 상당히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마차가 벌말에 도착했을 때 최대호는 마당에 천막이 쳐진 것을 보고 딸의 죽음을 직감하였다.

“아아-, 금봉이가, 금봉이가 세상을 떴구나.”

“안 돼, 금봉아! 안 돼.”

두 사람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마을 사람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그들을 맞았다.

“어서 들어가 보시게. 금봉이가 지난밤에 그만…….”

이장이 말을 잇지 못했다.

“얘야, 금봉아! 애비가 왔다.”

“금봉아!”

두 사람이 금봉의 시신이 있는 방에 들었을 때 막 염을 시작하려고 했다.

“얘야, 애비다. 눈을 떠보거라. 눈을 떠봐. 이게 어찌된 일이니?”

최대호는 방바닥을 쳐가며 통곡하였다.

“안 돼. 금봉아! 안 돼. 나를 두고 어디를 가는 거니. 금봉아, 안 돼. 눈을 떠봐. 이대로 가면 안 돼. 난, 난 너를 보내지 않았어.”

갑돌이 싸늘하게 식은 금봉의 손을 잡고 통곡하였다. 두 남자의 통곡소리에 마을 사람들도 가슴이 먹먹하여 눈을 슴벅거렸다.

“금봉아, 애비가 잘못했다. 애비가 잘못했어. 아비를 용서해다오.”

“금봉아, 이렇게 허무하게 가면 어떻게 하니. 난, 난 어떻게 하라고. 어서 일어나서 이등령으로 진달래꽃 따러가고 칡도 캐러가야 하잖아.”

두 사람이 서럽게 울자 그만 울음을 참고 있던 가족들도 흐느꼈다. 날이 환하게 밝았다. 벌말은 조용한 슬픔에 휩싸이면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상가(喪家)로 모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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