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 싹을 바라보는 견해들
고은희

잘라놓은 반 토막 무에서 싹이 돋아 나왔다.

할머니는 처녀 적 사립문 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막 빠져나오는 송아지 같다고 하고 나는.

혁명 같다고 했다.

연속 재배하면 벌레 먹고 풀이 날개를 치면 한없이 나약해져 버리는 무.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를 싹둑 잘라 두었던 것인데, 잘린 쪽은 이미 구름으로 덥혀 져 있다. 구름의 본성은 땅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본성이 하늘을 닮아간다는 것, 부채 살 같이 퍼진 무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는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함께 들어 있는 채소라서 무를 여러 번 말하면 맵고 지린 맛이 난다.

구름에서 속 씨가 웅크리고 있다. 모든 싹은 처음에는 속잎이었다가 속잎이 겉잎이 되는 동안 사립문이 헐리고 철 대문이 달리고

송아지는 개의 값을 뒤집어쓰고 음매음매 컹컹 짓는다. 그 사이,

혁명은 손가락질 받았다.

무청은 줄줄이 엮여 내걸리고 반 토막 무만 남아 필사적으로 싹을 틔우고 있다. 철 대문에서 싹이 자라고 싹이 노란 송아지가 컹컹 짓는다. 한 개의 무를 할머니는 구름 쪽을 먼저 썰고 나는 파란 하늘 쪽을 먼저 썰자고 한다.

매운 입술이 내미는 혁명의 싹,

반쪽 남은 무를 두고도 분분한 의견이 한 집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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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5.18신인 문학상 받은 작품이다. 오늘 무를 잘라 반찬을 하면서 이 시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다시 찾아 읽고 여기에 옮긴다.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잘린 무와 새순이 돋는 광경을 혁명이며 분분한 의견이며 이렇게 좋은 사유로 시를 맛있게 요리하였으니, 시 한 편을 배부르게 읽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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