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한 기억
김나비

나는 걸어다니는 화석이지
아득한 어제의 내일에서 말랑말랑하게 오늘을 사는
지금 난 미래의 어느 지층에서 숨을 쉬고 있는 걸까
오지 않는 시간 속, 닿을 수 없는 먼 그곳엔
오늘이 단단하게 몸을 굽고 있겠지
거실에 흐르는 쇼팽의 녹턴도 조각조각 굳어 가겠지
밤마다 창 밖에 걸었던 내 눈길도
오지 마을 흙벽에 걸린 마른 옥수수처럼 하얗게 굳어 있을거야
이번 생은 사람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살지만
삐걱이는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
지하 1층쯤 지층에는
내가 벗어버린 다른 포장지가 파지처럼 구겨져 있겠지
기억이 모두 허물어진 나는 나를 몰라도 어둠은 알겠지
내 귓바퀴를 맴돌며
내가 벗은 문양을 알려주려 속살거릴거야
49억 년 전부터 지구를 핥던 어둠은
소리 없는 소리로 구르며 둥글게 사연을 뭉치고 있겠지
눈사람처럼 뭉쳐진 이야기를 은근하게 나르겠지
내가 갈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부는 바람의 몸통
그곳에서 난
검은 항아리 위에 새겨진 기러기처럼
소리를 지운 채 지친 날개를 누이겠지
돌과 돌을 들어내면
오목새김 된 내 무늬가 부스스 홰를 칠거야


어느 날부터인지 이름보다 시를 먼저 보게 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아마도 시집이 쏟아지는 현상 때문인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시를 읽다가 시인이 궁금해지는 경우 대부분 프로필이 한결같이 화려하다. 적어도 큰 상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쯤이면 내가 비록 시는 못써도 심사위원으로도 손색이 없지 않겠냐는 건방진 자만까지 든다. 위 시인의 다른 시를 읽다가 위 시를 다시 찾아 읽는다. 시인의 오래된 말처럼 ‘세상의 낮은 곳에서 시라는 돋보기를 들고 멈춰 서서 아픔을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다.’가 와 닫는 내밀하고 상상력이 충만한 한 편의 시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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