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 지피지기

“우리 군은 대부분 산성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약 오만명의 병력으로 요동 지역에서부터 이곳 압록수까지 수나라 별동대를 상대로 치고 빠지는 식으로 접전을 이어왔습니다. 저들이 지칠 때까지 계속 이대로 이끌고 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술을 바꾸다가는 전 병력이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비장의 말 끝나자 돌격대의 고 군관이 의견을 말했다.

“우리의 전략과 전술은 이미 수나라 지휘부에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색다른 전술을 모색할 때입니다. 수나라군도 지쳤지만, 우리 군도 상당히 지친 상태입니다. 수나라 군대를 격퇴하고 병사들 사기를 높일 특별한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돌격대 이 군관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고 군관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치고 빠지는 전술로 적을 대할 것입니까? 우리가 각 산성에 있는 지휘관들과 연락하여 일시에 양광의 본영이나 별동대를 공격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봅니다.”

눈치를 보고 있던 또 다른 군관이 손을 들었다.

“이 군관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요동 지역 전체 산성에 주둔하고 있는 군사들을 동원하여 우리와 협공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미 내호아라는 수나라 해군 장수가 평양 인근에서 고건무 세제(世弟)가 이끄는 아군에게 크게 패해 퇴각했습니다. 현재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비장과 군관들의 의견은 고리타분한 내용이었다. 군관들이 서로 얼굴만 바라보고 있자 웅록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전술을 밝히고자 했다. 그가 을지문덕을 보고 손을 들었다.

“웅부관, 의견이 있으면 말해봐요.”

을지문덕이 웅록의 의중을 알고 지명하였다. 다른 군관들이 일제히 웅록을 바라보며 ‘이제 갓 조의 선인 단체에서 배출된 신출내기가 전쟁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럼, 소관의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소관이 고구려 오만 대군을 지휘하는 처지라 가정하고 드리는 말씀입니다.”

웅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을지문덕이 앉아 있는 좌측에 걸려있는 대형 지도 옆에 섰다. 웅록이 여러 군관 앞에 서자 모두의 시선이 그의 화사하고 반반한 얼굴에 집중되었다. 군관들은 새내기가 무슨 말을 할까 싶어 팔짱을 끼고 눈을 감기도 하고 콧구멍이나 귓구멍을 후비기도 했다.

적과 싸우는 방법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 아군의 숫자가 적군보다 열 배 많으면 적을 포위하고, 다섯 배 많으면 공격하며, 배가 많으면 적을 분열시켜 각개 격파한다. 또한, 아군과 적군이 비슷한 수라면 사력을 다해 싸워야 하고, 아군이 적보다 열세하면 방어만 하고 싸우지 아니하며, 아군이 적보다 아주 열세의 입장이면 도망친다. 전투의 기본은 싸우지 않고 적군을 제압하는 것이다. 전쟁의 달인이 말하기를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 했는데, 이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부지피이지기일승일부(不知彼而知己一勝一負)라 했는데, 이는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번 싸우고 한번 진다. 또 부지피부지기매전필패(不知彼不知己每戰必敗) 즉,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진다고 했다.

압록수를 방어하고 있는 고구려군은 양광이 급파한 별동대 30만 5천 명의 육분지 일밖에 안 된다. 다섯 가지 전투 방법 중에서 가장 나중에 말한 것처럼 우리는 고의든 아니든 수나라 군대와 정면으로 맞붙으면 안 된다. 비장의 의견처럼 수나라 군대를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평양성 가까이 유인하여 조금씩 힘을 빼놓는 방법이 좋다. 수나라 별동대 병사들은 백일 분량의 식량을 가지고 출발하였는데, 식량과 병장기가 무겁다 보니 상당수 병사가 그들의 식량을 버렸기 때문에 지금쯤 상당히 굶주린 상태라고 추측한다. 식량이 떨어지고 머지않아 날씨가 추워지기 시기가 다가오니 수나라 군대는 사기가 더욱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 평양성 근방 30리까지 최대한 수나라 별동대를 유인한 뒤에 저들의 상태가 최악의 수준이 되었을 때나 저들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퇴각할 때 저들의 후미를 치는 게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본다. 평양성을 뒤로 두고 배수진을 치자는 방안이다.

“가만, 가만. 그러니까 평양성을 바다, 즉 물로 본다? 더는 물러날 곳이 없다고 판단한 아군 병사들이 죽기 살기로 싸우게 유도하자. 아주 좋아요. 극과 극은 통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이전에 적군의 동태를 자세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내일 내가 단기(單騎)로 우중문을 만나려고 합니다.”

웅록의 의견을 잠자코 듣고 있던 을지문덕이 웅록의 전술을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섰다. 게다가 한술 더 떠 그는 홀로 적의 진영으로 찾아가 적장을 만나겠다고 했다. 군관들은 을지문덕이 너무 피곤하여 헛소리한다고 생각했다. 을지문덕이 자신이 한 말을 이행하지 않아도 누구 한 사람 불평불만을 토로하지 않을 것이다. 회의가 끝난 뒤에 을지문덕은 웅록을 장군 막사로 불렀다. *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