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으로 흐르자
-의병들과 곽재우 장군을 기리며

명서영

물이 물렁하다고 물 먹이지 마라 물은 불길 어디든 흐를 수 있다

어린 잎사귀 하나가 낚아채지 못하고 놓친 빗방울이었던 나는 부림면 외딴 산골이 생성시킨 물,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십칠 년째 자라고 있는 가느다란 물줄기 스스로 일어선다

스스로 낮추고 낮아져서 비로소 나는 맨땅을 적시고 길을 텄다
작은 통로를 지날 때 물도 뼈를 깎고 영혼까지 쪼그려서야 나왔다
겁 없는 영산은 커다란 불길, 불길 앞에서 본능적으로 계곡이 반대 방향으로 물고를 튼다

방향이 없이 날아온 불, 옆 친구의 머리가 불이다
순식간 흔적조차 없이 날아간 친구, 정지된 난 얼음 한 조각
바람이 흔들어 표정을 채울 때까지

물이 불을 두려워할 수 있나 물은 불을 잠재울 수 있다 뭉쳐야 한다
우리의 얼어붙은 머리를 쥐어박는 저 시퍼런 물은 곽재우라고 했다.
누가 낮은 곳으로만 물이 흐른다 했을까 우리 둥글게 뭉쳐 하늘로 역류한다

이름 모를 골짜기와 계곡의 물방울들이 모여 개울과 냇물이 밀물密勿져 불어난다
물소리가 커진다 무기가 된 물기둥 정신도 맑고 투명하다

영산이 솟구친다 정암진으로 흐르자 함성이 하얗게 하늘을 채운다
때로 작은 불씨에도 번번이 깨지면서 다시 솟구치는 물

불길에 휩싸인 나는 더 흐르지 못하고 한쪽에 고인다
하늘에 구름만 보이는 곳 기억이 서서히 말라간다
잠깐, 정암진은 다음에 흐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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