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 녹족의 아들 수나라 선봉이 되다

얼마 뒤에 양광이 황제에 즉위하자 우익위대장군에 임명되어 문무백관을 관리하기도 했다. 아비에 이어 양광이 또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자 우중문은 좌군 중 낙랑도군(樂浪道軍)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전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지지부진하자 우문술과 별동대를 이끌고 평양을 직공(直攻)하는 선봉장이 되었다.

“장군님, 지금 우문술과 우중문이 한 군영에 같이 있습니까?”

“아닐세. 압록수 건너 최전선에 우중문의 병영이 있고 그 뒤로 우문술의 진영이 있네. 정신 나간 양광이 우문술보다 우중문을 더 신임하고 있는 게야. 그러나 내가 봤을 때 침착한 우문술이 더 상대하기 어렵게 느껴지는군. 우중문은 다혈질로 성질이 급하고 쉽게 흥분한다네. 그런 자를 요리하는 게 더 쉽지 않겠는가? 그리고 참, 자네 ‘녹족 삼 형제’라고 들어보았는가? 지금 우문술과 우중문 휘하에 좌장과 공격대장을 맡고 있는데, 그 녹족 삼 형제의 활약이 대단하다네. 그 삼 형제의 맹활약에 힘입어 별동대가 파죽지세로 압록수까지 진격했네. 녹족 삼 형제는 별칭이고 그들의 성씨가 번씨(樊氏)라고 하네. 우리가 자객을 파견하여 그 삼 형제만 제거한다면 고구려군이 단번에 수나라 오랑캐들을 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번씨 성을 가진 녹족 삼 형제? 왜 하필이면 별칭이 녹족(鹿足)일까? 그렇다면 그 삼 형제가 사슴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일까? 혹시, 그 삼 형제의 발이 나의 사슴 발처럼 굽이 두 갈래로 벌어진 형태란 말인가?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구나. 고구려 군영에서는 내가 여인이며, 사슴의 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나는 영원히 이 비밀을 간직해야 한다.’

웅록은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정신을 가다듬었다.

“맞습니다. 장군님께서 그래서 우중문을 만나신다고 하셨군요. 두 적장(敵將)의 성향은 파악하였으나, 병사들의 사기와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탐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중문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이기는 하나 문무백관을 통솔했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시문(詩文)에 대한 감각도 있으리라 봅니다.

소관의 어쭙잖은 소견이지만 장군께서는 시문에 능하다고 정평이 났습니다. 오언절구(五言絶句)나 아니면 칠언절구 정도로 우중문을 조롱하는 시구(詩句)를 지어보시지요. 오언 또는 칠언율시(五言律詩)는 문장이 긴 까닭에 성질 급한 우중문이가 자칫 오역(誤譯)할 수도 있습니다. 미사여구가 아닌 미려(美麗)한 문장으로 우중문의 불같은 성질에 기름을 붓고 춘추필법에 익숙한 오랑캐의 자존심을 건드려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수천 마디의 말보다 의미를 압축한 시문이 때에 따라서는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관이 판단했을 때 수나라 군대는 이미 진흙 구덩이에 들어온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쉽게 고구려 국경을 넘었지만 돌아갈 때는 수나라가 아닌 염라국(閻羅國)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수나라 황제 양광이 조급한 마음에 별동대를 보냈다면 우문술과 우중문은 그 이상으로 조급증에 밤잠을 못 자고 있을 것입니다. 대사를 앞에 놓고 마음이 조급한 자는 일을 성사시킬 수 없습니다. 장군께서 신중한 성정의 우문술보다 미욱하고 웅숭깊지 못한 우중문의 진영으로 가시겠다고 하신 것은 정말로 탁월한 선택입니다. 이제는 장군님께서 수나라 군대가 우리 고구려군에게 패퇴하여 퇴진했을 때 어찌 처리할 것인가를 고뇌해보셔야 할 겁니다. 지금 장마로 수군이 감히 압록수를 건너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햇살이 나고 청명한 날씨가 되니 곧 수나라 오랑캐들이 도강(渡江)을 시도할 것입니다.

이제 제대로 붙어볼 때가 되었습니다. 저놈들이 압록수를 건너는 순간 지옥으로 가는 길로 접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단, 한 놈의 수나라 오랑캐들은 살려 보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별동대를 모두 압록수나 살수에 수장시켜야 합니다. 장군님, 그 녹족 삼 형제가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수나라 진영에 몰래 숨어들어 그들을 살펴보고 암살하거나 납치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 혼자는 할 수 없는 일이니 그 맹호 같은 삼 형제를 제압하려면 최소 무술에 능한 병사 스무 명 정도는 대동해야겠지요. 그러나 스무 명이 움직이면 저들에게 금방 노출될 것입니다. 그 삼 형제는 제가 별도로 연구를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별명이 어째서 녹족이라고 하는 것인지도 조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을지문덕은 웅록의 정세 분석에 속으로 탄복했다. 어떻게 전쟁에 한 번도 참가한 전력이 없는 부장이 그토록 세밀하고 정확하게 전황을 꿰뚫어 볼 수 있는지 을지문덕은 혀를 내둘렀다.

‘웅록이 보통이 아니야.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 거야. 이 정도의 명석한 머리를 가진 부관이라면 내가 믿고 건곤일척을 던져도 되겠어. 그런데 사내가 어찌 이리 얼굴이 곱고 단아할까?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야. 우리 고구려군에게는 보석 같은 존재가 틀림없다.’

“웅부관, 나를 도와주시게. 나를 돕는 것은 곧 고구려를 돕는 것이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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