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을지문덕 계략을 세우자

을지문덕은 수군 별동대의 이동 경로와 진영 배치를 그린 지도를 펼쳐놓고 웅록과 세밀한 작전을 짜기로 했다. 지도 위에 나타난 양군의 대치상황으로 볼 때 고구려군은 압록수 남동쪽으로 이십 리쯤에 군영(軍營)을 갖추고 있고, 수나라 군영은 압록수에서 북서쪽으로 30여 리 떨어져 진을 치고 있었다.

얼핏 지도에 그려진 양군의 배치도를 볼 때 고구려군은 수나라 군대를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30만 5천 명의 수나라 별동대를 5만이 채 안 되는 고구려 정예병으로 대적하기에는 무리였다.

“장군님, 우중문의 군영에 홀로 가신다니 소관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여, 압록수에 중선(中船) 한 척을 띄워 장군님께서 우중문의 진영에 가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하고 싶습니다. 고구려의 전군을 지휘하시는 장군께서 말도 없이 걸어서 가실 수는 없습니다. 며칠 전 장마가 끝나 압록수의 물도 조용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단신으로 먼저 수나라 진영에 가서 장군의 방문을 알리겠습니다.”

을지문덕은 자진해서 전령이 되겠다는 웅록의 제안을 받고 고심하다가 승낙했다.

“고맙네. 그리하시게. 혼자 가면 위험하니 날랜 군사 두 명과 동행하시게. 내가 우중문에게 보내는 서신을 써주겠네. 몸조심해야 하네. 그리고 듣자 하니 웅부관은 조의선인으로 훈련을 받을 때부터 동료들과 방을 같이 쓰지 않는다고 하는데, 군영에는 막사가 부족하네. 웅부관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습관이 다양하니 내가 이해는 하네. 급할 때는 급한 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군대를 지휘하는 군관으로서 덕목이 될 수도 있네.”

“참고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늦은 밤까지 함께하며 작전을 구상하였다. 먼저 을지문덕이 우중문의 군영을 찾아가는 방법, 우중문에게 말할 내용, 우중문 군영에서 살펴볼 시설이나 병마(兵馬), 적의 진영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방법 등을 논의했다. 을지문덕이 사전에 전령을 우중문 진영에 보내 ‘고구려 장수 을지문덕이 방문하겠다’는 내용을 전달하는 것으로 두 사람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다음에는 을지문덕이 직접 별동대 진영으로 건너가 우중문을 만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댔다. 만약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억류할 경우 문제는 복잡해질 수 있으므로 적진을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 대안을 두고 논의했다. 을지문덕이 제안하고 웅록이 세밀하게 살펴본 다음 보완하는 것으로 대략적인 작전 방안이 마련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웅록은 별도로 마련된 자신만 사용하는 막사로 돌아갔다.

“형님을 뵙습니다.”

우중문의 진영에 배속되어 좌우 공격대장으로 활약하던 삼록(三鹿)과 구록(九鹿)이 잠시 한가한 틈을 이용해 맏형인 일록(一鹿)의 막사를 찾았다. 서로 모시는 상관이 다르므로 녹족 삼 형제는 자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긴 장마로 수나라 병사와 고구려 군사들은 휴전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아우들아, 그동안 잘 지냈느냐?”

“형님, 저는 고구려 평양으로 진격하는 이 전쟁이 썩 마음에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의 조국이 고구려 아닙니까? 그렇다고 우중문 장군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구록이 일록을 보자 불평을 토로했다.

“형님, 저의 심사도 편치 않습니다. 차라리 구록이 하고 탈영하여 고구려로 도망칠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형제가 탈영하게 되면 형님에게 위해가 미칠까 두려워 주저하고 있습니다.”

구록과 삼록이 맏형 일록에게 자신들의 괴로운 심정을 하소연했다. 형제 사이이니 그러한 말이 가능했다. 다른 병사나 군관이 그러한 말을 들었을 때 삼 형제는 참수형(斬首刑)을 받을 것이었다. 두 아우가 만나자마자 속내를 토로하자 일록은 속이 쓰렸다.

“아우들아, 우리가 우리를 낳고 길러준 조국 고구려를 쳐들어간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 삼 형제의 상황이 탈영할 시기가 아니다. 나 역시 아우들과 같은 심정이다. 우선은 아우들은 우중문 대장군의 명령이라면 죽는시늉이라도 할 것처럼 잘 보여야 한다.

우문술 대장군은 중요한 사안이나 작전 회의가 있을 때마다 나의 의견을 물어보고 작전에 반영한단다. 우리가 수나라의 고급 장교가 되어 조국을 쳐들어간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기회를 보자. 지금 압록수 건너에는 고구려의 영웅 을지문덕 장군이 진을 치고 있다. 이제 압록수의 수위(水位)도 차츰 낮아지니 곧 강을 건너라는 명령이 떨어질 것이다. 우리 삼 형제는 별동대에서 용맹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모르긴 해도 고구려 진영에서도 우리 삼 형제의 존재를 인지하였을 것이다. 아버님과 어머님이 우리 삼 형제가 수나라 군대의 좌장과 돌격대장이 되어 고구려를 쳐들어간다는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가슴 아파하실까?”

일록이 부모님 이야기를 꺼내자 녹족 삼 형제는 잠시 숙연해졌다. 삼 형제는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고구려와 부모를 잊은 적이 없었다. 아홉 형제의 맏이로서 일록은 많은 상처를 입었다. 해적들에게 잡혀 와 배에 감금된 동안 이록, 사록, 오록, 칠록이 병에 걸려 죽었을 때 나머지 형제들은 절망과 함께 큰 상처를 입었다.

또한, 장안의 인간 시장에서 육록과 팔록이 페르시아 노예상에게 팔려 갈 때도 세 형제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멍에가 되어 가슴 속 깊이 응어리로 남아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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