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의비를 읽다

박수봉

돌이 찢어진 비문을 꽉 물고 있다
입술을 다문 침묵을 쪼아
빗돌의 늑골에 문신을 새긴 사람은
붓을 챙겨 떠나버리고
깨진 돌만 남아서 그때를 증언한다
돌은 침묵을 가장하고 있지만 돌에는
임진의 여름 풀꽃들이
폭풍우에 쓰러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스며있다
비문의 진술을 딸가 보면
북채를 쥔 사내 따라 삽을 놓고
기꺼이 졸이 된 사람들
탕, 타탕, 터지는 화구를 몸으로 막아
무명천에 펄럭이는 의를 몸뚱이에 감았다
돌의 찢어진 흉곽에서 진물처럼
마지막 비명이 묻어 나온다
지은 죄가 두려워 빽빽한 돌의 진술을
찢어버리고 황급히 꼬리를 감춘
섬나라 살쾡이들
아직도 속내를 해무에 감춘 채
호시탐탐 내륙을 훔쳐보고 있다
조각난 뼈를 맞추고 피부를 꿰맨
비의 깨진 이마에 순의가 선명하다
군데군데 뜯겨나간 살점은
돌의 심장으로도 차마 발설할 수 없어
시멘트로 봉해버린 상실의 시간이다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나신 조헌 선생께서는 성균관 향교 교수이셨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최초로 의병을 일으키셨다. 금산을 회복하였으나 조헌 선생과 칠백 의사는 일본 군대에 전멸하였다.

조헌(1544년~1592년)은 유학자이자 경세 사상가, 의병장이다. 중봉 조헌 선생의 비를 보고 쓴 위 시는 임진왜란의 싸움이 상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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