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녹족부인 우중문을 만나다

“어서 오시오. 통역사 진진(秦眞)이라 합니다. 나는 평양을 수백 번도 더 다녀온 사람입니다. 이제부터 그대들을 자랑스러운 별동대 총사령관이신 우중문 대장군에게 안내하겠습니다. 미안하지만, 대장군님을 만나기 전에 간단한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통역사라는 자는 유창한 고구려 말을 구사하였다. 병사들이 달려들어 웅록 일행의 몸수색을 하려고 했다. 웅록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수나라 병사들이 몸수색하다가 웅록이 여자라는 게 밝혀지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이보시오, 진진 통역사. 우리는 좋은 일로 우중문 장군을 만나러 온 고구려 전령이오. 그런데 이렇게 대접을 하면 되겠소이까? 너무 무례하오. 우린 그냥 돌아가겠소이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병장기를 가지고 있지 않소이다. 자, 보시오.”

웅록이 소리치자, 진진 통역사가 놀라서 웅록에게 다가왔다.

“알겠소이다.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몸수색은 높은 분을 만나기 전에 하는 의례적인 것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마시오. 내가 봐도 그대들은 분명히 고구려 전령이 맞소이다. 자자, 얼른 안으로 들어가 우중문 대장군을 알현합시다. 이 사람 진진 통역사를 따라 들어오시오.”

진진 통역사가 앞장서서 커다란 막사 안으로 들었다. 웅록 일행이 막사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대형 막사 안에 고구려 복색의 아리따운 여인 두 명이 뚱뚱해 보이는 한 사내를 가운데 놓고 술 시중을 들고 있고, 막사 가운데에서는 역시 고구려 복색의 무희(舞姬) 서너 명이 풍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사내는 아직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인데 이미 대취한 듯 얼굴이 불콰해 보였다. 진진이 가운데 앉아 있는 사내에게 다가가더니 귓속말로 속살거렸다. 두 사내가 소곤대는 와중에도 앉아 있는 뚱뚱한 사내는 웅록 일행을 응시했다.

“하오. 흔하오.”

가운데 앉아 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웅록 일행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이 키는 8척은 되어 보였고 황금색 비단옷을 입고 있는데, 겉모습을 봐서는 전장에 나온 군인 같지 않았다. 기름이 번들거리는 얼굴은 보통사람 두 배나 되어 보이고 배는 남산만했다. 그러나 눈빛만은 살아서 반짝거렸다. 진진이 웅록 일행에게 다가왔다.

“어서, 우중문 대장군님에게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시오.”

웅록 일행이 예의를 갖춰 우중문에게 절을 하였다. 웅록 일행의 절을 받은 우중문이 웅록에게 다가왔다. 그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웅록은 그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웅록이 진진을 바라보았다.

“장군께서 그대들을 환영한다고 하십니다.”

진진이 웅록 일행에게 우중문의 말을 통역했다.

“이것은 을지문덕 장군께서 우중문 장군께 전하는 서신입니다.”

웅록이 서신을 품에서 꺼내 우중문에게 건네자 진진이 웅록의 말을 통역하였다. 우중문은 웅록이 건넨 서신을 받아들고 다시 탁자에 앉더니 그 서신을 유심히 읽어내렸다. 서신을 읽는 우중문의 얼굴이 차차 밝아지면서 빙그레 웃었다. 마치 전장에 나간 자식에게서 온 편지를 읽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웅록은 우중문의 표정과 행동을 빠트리지 않고 살폈다. 그는 을지문덕이 보낸 서신을 보고 만족한 듯 했다.

“나는 을지문덕 장군을 기꺼이 맞이하여 환대할 것이다. 내일 정오쯤에 온다니 참으로 어려운 결단을 내렸구나. 참모는 제장(諸將)들에게 전하라. 압록수를 넘으려는 계획을 잠시 보류하라고. 내일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이 나를 만나러 온다니 맛있는 음식과 술 그리고 고구려에서 맛볼 수 없는 산해진미를 풍족하게 준비하고 막사 주변도 깨끗하게 청소하라. 을지문덕 장군에게 책잡힐 일이 한가지라도 있으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압록수를 건너오느라 고생한 저기 있는 웅록 전령 일행을 후하게 대접해서 보내라.”

우중문의 명령에 따라 웅록 일행은 중간 정도 크기의 막사로 안내되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아늑한 분위기였다. 마치 연인들이 사용하는 규방처럼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가운데 둥근 탁자와 의자가 있고 뒤로 수나라풍의 대형 걸개그림이 빙 둘러쳐져 있는데 마치 최고급 기루(妓樓)를 통째로 옮겨다 놓은 듯 했다. 아무래도 방금 본 고구려 춤을 추는 무희들이 사용하는 막사 같았다. 잠시 후에 병사들이 수나라 요리와 술 그리고 처음 보는 과일을 잔뜩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우중문 장군께서 그대들에게 배불리 먹여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 푹 놓고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외부 인사들이 오면 접대하는 곳이니 아무 신경 쓰지 마시오.”

진진 통역사가 크게 인심을 쓰듯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병영에 들어오면서 본 병사들은 모두 피골(皮骨)이 상접해 있는데. 우리에게 이런 호사를 부리다니, 우중문이 허세를 부리는구나. 좋다. 많이 먹어주마.’

웅록은 이미 우중문이 잔꾀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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