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발가락이 닮았다

‘아아-, 이럴 수가. 이 아이들은 내가 낳은 자식들이 틀림없다. 이십 년이 아니라 백 년의 세월이 흘러도 나는 내 몸에서 나온 자식들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내가 이 아이들의 어미라고 증명을 해야 하나? 그렇지. 내가 버선을 가져 왔지.’

웅록의 양 눈에는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웅록의 행동에 형제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꼼짝도 하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형제는 웅록의 행동을 유심히 보면서 뇌리에 무의식으로 잠자고 있는 아릿한 기억을 반추하는 중이었다. 웅록이 얼른 투구와 갑옷을 벗고 머리를 풀어헤쳤다. 그리고 군화를 벗고 버선을 벗었다. 웅록의 사슴 발이 드러났다.

순간, 형제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전율하면서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는 것을 느껴야 했다. 형제는 여태껏 자신들과 같은 발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웅록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음을 감지하면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아직은 앞에 있는 여인이 자신의 생모라는 확신을 하기에는 무리였다. 세상에는 자신들 이외에도 사슴 발을 가진 사람이 더 있을 것 같기 때문이었다.

“나는 고구려 여인으로 이름은 녹족부인이라 불립니다. 이렇게 남장(男裝)하고 고구려군에 입대하여 이십 년 전 수나라 해적에게 빼앗긴 아홉 명의 자식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내 아들의 이름은 일록, 이록, 삼록, 사록, 오록, 육록, 칠록, 팔록, 구록이입니다. 수나라 군영에 녹족 삼 형제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행여나 하는 마음에 만나고 싶었답니다.

그러던 차에 오늘 을지문덕 장군의 서신을 가지고 우중문 장군을 만나러 왔답니다. 다시 고구려군 진영으로 가야 하는데, 우중문 장군께서 후하게 대접을 해주시는 바람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혹시, 두 분께서 나와 인연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버선은 이십 년 전 잃어버린 나의 자식들을 만나면 줄려고 만든 버선이랍니다.

나의 큰아들 일록이 등에는 점이 일곱 개 있고, 이록이 왼쪽 발등에는 어려서 뱀에 물린 흉터가 있으며, 삼록이 왼쪽 겨드랑이에는 푸른 점 세 개가 있고, 사록이 왼쪽 뺨에는 붉은 점이 하나가 있으며, 오록이 오른쪽 엉덩이에는 두 살 때 불장난하다 데인 흉터가 있고, 육록이 목덜미에는 사마귀 두 개가 있답니다.

그리고 칠록이 배꼽 위에 밤톨만 한 붉은 점 하나가 있고, 팔록이 오른팔에는 세 살 때 도랑을 건너다 넘어지는 바람에 살갗이 찢어져 의원이 꿰맨 자국이 있으며, 막내 구록이 등에는 어른 손바닥만 한 검은 반점이 있습니다.”

‘아아, 어떻게 고구려군 전령으로 온 여인이 우리 아홉 형제의 몸 구석구석을 손금보듯 훤히 알고 있단 말인가? 천지신명도 모르고 귀신조차도 모르는 것을 이분은 모두 알고 있다. 이분은 틀림없는 나의 어머니이시다.’

형제는 웅록의 말에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말을 마친 웅록이 두 사내가 반응이 없자 가져온 버선 아홉 켤레를 형제에게 내보였다. 삼록이 고구려 여인이 버선을 아홉 개씩이나 가져 왔다는 말에 무엇인가 집히는 게 있는지 얼른 군화를 벗고 시커먼 버선도 벗었다.

그의 발도 웅록의 발과 똑같았다. 삼록이 자신의 발을 웅록의 발 옆에 대고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웅록이 가져온 버선을 신어보았다. 웅록도 버선을 다시 신었다. 버선을 신은 두 사람의 발 모양이 똑같았다. 삼록이 신은 버선의 치수와 웅록의 발 크기와 똑같았다.

그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구록이 군화를 벗고 버선을 신었다. 세 명이 모두 똑같은 버선을 신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삼록과 구록의 눈에도 어느덧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형제의 뇌리에는 동시에 사슴 발, 고구려, 20년 전, 아홉 형제, 아홉 켤레의 버선, 태어나면서부터 쓰고 있는 아홉 형제의 이름과 몸에 있는 특징 등이 혼재되면서 웅록이 자신들의 생모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어머니, 소자(小子) 삼록이 입니다. 이십 년 전 수나라 해적들에게 끌려간 셋째아들 삼록이 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저의 왼쪽 겨드랑이에는 푸른 점 세 개가 있습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삼록이 얼른 바닥에 엎드려 웅록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소자 막내 구록이 입니다. 여기를 보세요. 저의 등에 어른 손바닥만 한 검은 반점이 있습니다. 어머니를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저희 형제의 절을 받으십시오.”

삼록과 구록이 웅록에게 수도 없이 절을 하면서도 고구려 말로 울먹였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들이 20년 만에 아주 낯선 곳에서 상봉하는 순간이었다. 웅록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곳이 수나라 군영이 아니라면 두 아들을 붙잡고 대성통곡이라고 하고 싶었다.

세 사람은 한참 동안 서로를 부둥켜안고 흐느끼며 떨어질 줄 몰랐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지금은 수나라 우중문의 군영 막사 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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