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너희 조국은 고구려다

웅록은 마음을 진정하고 두 아들과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삼록과 구록이 지난 20년 동안 겪은 과정을 이야기하자 웅록은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시간이 없었다. 모자 상봉의 기쁨은 나중에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일이었다. 웅록은 두 아들에게 고구려가 현재 처한 상황을 빨리 알게 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만나자마자 그러한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할 것만 같았다.

“삼록아. 구록아, 너희 형제들이 고맙게도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쓰고 있구나. 고맙다. 진정하고 이제부터 이 어미가 하는 이야기를 잘 새겨들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자가 다시 만날 수 있다.”

“어머니, 말씀하세요.”

웅록은 두 아들에게 가족관계와 조국 고구려의 상황 그리고 부모와 자식 간의 지켜야 도리 등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황금 같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특히, 웅록은 고구려의 상황이 아주 좋지 않으니 형제가 어떻게 해야 조국을 위험으로부터 구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주었다.

웅록과 형제는 통역사 진진이나 함께 온 동료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올까 봐 걱정되어 다시 옷매무새를 고치고 본래의 상태로 돌아갔다. 만약 진진이나 함께 온 두 동료가 웅록이 여인이며, 삼록과 구록의 친모(親母)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 사람의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고구려 군영에서 웅록이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조의선인 출신이라고 알고 있던 것이 한순간에 깨져버릴 수도 있었다. 두 아들과 이야기를 마무리할 즈음에 진진이 기침을 하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세분이 좋은 말씀을 나누셨는지요?”

“진진, 자네 덕분에 나는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네. 우리 형제의 이름이 고구려 진영에까지 알려질 줄 몰랐네. 참으로 고마워. 자네의 수고를 두고두고 잊지 않겠네.”

삼록이 진진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장군님들께서 기분이 좋으셨다니 소인도 괜히 기분이 좋습니다. 부디, 고구려를 정벌하는 데 큰 공을 세우셔서 황제 폐하께 상을 받으셔야지요. 앞으로 이 진진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진진이 두 손을 비벼대면 아양을 떨어댔다.

“걱정하지 마시게. 고구려에서 온 전령께서 무사히 돌아가시도록 잘 부탁하네. 우리 수나라 같은 대국은 적국의 사신이나 전령을 잘 모셔야 하네.”

구록이 진진에게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다.

“두 분 장군님, 저처럼 하찮은 사람을 만나주시어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 두 분 장군님을 뵈니, 소관이 듣던 바보다 더 용맹하게 보입니다. 마치 두 마리 맹호(猛虎)를 본듯한 착각에 빠졌답니다. 소관이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고구려의 전령으로 오겠습니다. 그때도 소관을 뿌리치지 마세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웅록이 두 아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반드시 그리하셔야지요. 웅록 전령님을 꼭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 그럼, 무사히 돌아가시길 빌겠습니다.”

삼록과 구록이 웅록에게 목례를 하고 막사를 나가려다 다시 들어왔다.

“이것은 저희 형제의 선물입니다.”

삼록이 단도(短刀)를 웅록에게 건넸고. 구록은 옥패(玉牌)를 건넸다. 옥패는 수나라 황제가 장군들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시(戰時)에 옥패만 있으면 말이나 병사를 징집할 수 있고, 어떤 지역이든 검문을 거치지 않고 통과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 것이었다. 그리고 삼록이 건넨 단검은 손잡이가 상아로 되어있고 칼집 역시 상아와 보석으로 치장된 화려한 보검이었다. 보검의 값이 상당할 것 같았다.

“장군님들,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 주신 선물은 가보로 대대손손 보관하며 장군님들을 생각하겠습니다. 부디, 몸조심하시고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인사를 하는 웅록의 눈에 또 눈물이 갈쌍갈쌍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렇게 다시 헤어져야 하는군요. 곧 저희 형제들이 어머님을 모시게 될 겁니다. 그때까지 몸 성히 지내셔야 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삼록은 웅록과 시선을 맞추고 무언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니, 소자가 반드시 어머님을 모시러 가겠습니다. 저희 형제의 조국은 고구려입니다. 그때까지 무탈하세요. 오늘 어머님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세요. 그리고 죄송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구록은 붉게 물든 눈자위를 감추느라 자주 헛기침을 하며 고개 좌우로 돌렸다. 웅록도 진진과 두 동료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형제는 속으로 무수히 ‘어머니’라는 말을 되뇌며 웅록과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세 사람이 모자(母子) 관계라는 사실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져야 했다.

“웅록 전령님, 무사히 돌아가십시오.”

웅록이 무사히 압록수를 건너 고구려군 진영으로 돌아왔다. 그는 우중문을 만나 나눈 이야기와 대접받은 사실 그리고 수나라 진영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살펴본 세세한 내용까지 모두 을지문덕에게 보고하였다.

또한, 압록수에서 수나라군 진영까지 가는 30여 리 길의 상태로 상세하게 보고했다. 을지문덕은 웅록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수나라 별동대의 진영도(陣營圖)를 수정하였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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