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을지문덕 적장을 만나러 가다

“장군님, 내일 가실 겁니까?”

“우중문에게 약속했으니 가야 하겠지. 내가 안 가면 그자가 얼마나 섭섭해하겠는가? 남아일언은 중천금 아닌가?”

“그렇지요. 내일 장군님을 압록수 건너편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리하세. 압록수를 건너면 나 혼자 우중문을 만나러 갈 것일세.”

“장군님, 안됩니다. 검술에 능한 군관 두 명을 대동하십시오. 수나라 사람들은 흉물스러워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 웅부관의 말대로 하겠네.”

웅록은 중선(中船)을 준비했다. 중선은 돛대가 달리고 병력을 최대 50명까지 태울 수 있는 배였다. 중선을 준비한 이유는 군사 10여 명과 말 세필을 태우고 압록수를 건너야 하기 때문이었다. 장마가 끝나고 물이 빠진 상태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수량이 많고 넓은 강을 건너려면 중선 정도가 필요했다.

압록수가 장마로 물이 불어나면 강의 폭이 10리 정도 되었다. 현재는 7리 정도의 폭이기는 하지만 물살이 세고 깊었다. 웅록은 을지문덕을 호위할 검술에 능한 수행원 두 명을 선발하고, 별도로 소형 선박 한 대를 준비하고 몸이 날래고 용감한 다섯 명의 병사를 뽑아 놓았다.

웅록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을지문덕 휘하의 열 명의 고급 군관과 비장을 별도로 자신의 막사로 초치(招致)하였다. 군관들은 을지문덕이 웅록을 무척 신임한다는 사실과 압록수를 건너 우중문의 진영에 다녀온 것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웅록이 수나라 군영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무척 궁금해했다.

군관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웅록의 막사로 모여들었다. 웅록은 따끈한 차를 끓여놓고 군관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중문의 군영을 다녀온 웅록은 아직도 아들을 만난 희열과 행복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웅부관께서 우중문을 만나고 오더니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게요?”

“혹시 우중문이가 술이라도 보냈다면 맛 좀 봅시다.”

“갈수록 웅부관의 얼굴이 점점 더 반반해지니 이게 무슨 조화요?”

군관들은 차를 마시며, 웅록에게 농담을 했다. 웅록은 군관들의 진한 농담도 받아 낼 정도로 군영 생활에 익숙해져 있었다. 웅록은 조금 전에 을지문덕에게 보고했던 내용을 그대로 군관들에게 설명했다.

수나라 군영이 그려진 작전 지도를 보며 세밀하게 설명하자 군관들은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군관들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수나라 별동대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얼굴이 굳어졌다. 그들이 알고 있던 수나라 별동대의 정황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오늘 참으로 좋은 것을 알았소이다. 웅부관. 정말로 고생했소이다.”

“참으로 큰일을 해냈소이다.”

“내일 을지 장군께서 우중문을 만나러 가는 일도 잘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목숨을 걸고 우중문 진영에 다녀온 웅부관에게 손뼉을 쳐줍시다.”

하룻밤이 빨리 지나가고 있었다. 웅록은 어제 20년 만에 만난 두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옛일을 그려보았다. 그녀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수나라 해적에게 잡혀갔다가 배 안에서 목숨을 잃은 이록, 사록, 오록, 칠록 그리고 페르시아 노예 상인에게 팔려간 육록과 팔록이의 일이었다.

이승을 달리한 네 명의 아들들은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멀리 페르시아 상인에게 팔려간 육록과 팔록이 지금도 어느 낯선 땅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것만 같았다.

‘내가 죽기 전에는 반드시 육록이와 팔록이를 찾을 것이다. 이 세상 끝까지라도 뒤져서 반드시 내 아들을 만날 것이야. 이미 저승에 든 네 아이에게는 내가 먼 훗날 명부(冥府)에 들면 속죄를 해야겠지. 아마도 그 아이들은 아비를 만나 피안(彼岸)에서 잘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웅록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동이 트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강가로 나온 을지문덕과 그리고 십여 명의 군사들은 서둘러 배에 올랐고, 고물에는 말 세필도 실려 있었다.

물안개가 자욱한 압록수는 마치 호수처럼 잔잔했다. 배의 좌우현에 수부(水夫) 열 명이 힘껏 노를 저었다. *이각(二刻)이 지나 배가 압록수를 건넜다. 을지문덕과 두 수행원은 배에서 내려 말을 타고 서쪽으로 달렸고 웅록은 다시 배를 돌려 동쪽으로 향했다.

* 일각 – 일각(一刻)은 지금 시간으로 15분 정도, 이각은 30분.

어머니와 아쉬운 작별을 한 삼록과 구록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고 서러운 눈물을 쏟아냈다. 꿈에 그리던 어머니와 20년 만에 상봉했는데도 마음껏 모자의 정을 나누지도 못한 형제의 심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날 밤, 형제는 큰형 일록이 머무는 우문술의 병영을 찾았다.

삼록과 구록은 형이 근처에 있어도 함부로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우문술과 우중문이 서로 전공을 세워 황제 양광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세 형제가 공공연히 만난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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