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 살파랑

유사룡(劉士龍)은 *홍농현(弘農縣) 사람으로 매우 영특하고 재주가 많이 황제 양광의 총애를 받았다. 제2차 여수(麗隨) 전쟁이 발발하자 우문술과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에 상서우승(尙書右丞)의 벼슬에 있으면서 위무사로 종군하고 있었다.

우문술과 우중문도 양광의 총애를 받는 유사룡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그는 창칼을 들고 전투를 하는 무관(武官)은 아니었지만, 병법을 알고 별들의 움직임을 파악하여 우문술과 우중문에게 자문하였다. 그러나 그의 병법과 점성(占星)은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상서님, 우선 잔부터 받으세요. 이 술은 제가 가장 아끼는 술이랍니다. 한 잔 드시면 근심이 없어지고, 두잔 드시면 두통이 사라지고, 석 잔 드시면 몽중인(夢中人) 찾아온답니다. 백 잔을 마시면 흰머리가 검게 변하고, 빠진 이가 다시 생겨나며, 밤마다 양물이 벌떡거려 짝없는 사내는 베개를 끌어안고 전전반측해야 한답니다.”

“번장군 입담이 세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네만, 과연 헛소문이 아니었네그려. 오늘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보세.”

일록이 독주를 한 잔 따라 건네자 유사룡은 얼른 한잔을 목구멍으로 넘겼다. 이어서 두잔, 석 잔, 넉 잔을 유사룡은 안주도 없이 독주를 뱃속으로 붓다시피 했다. 유사룡은 호주가였다. 맛이 기가 막히게 좋은 술이라면 마누라도 주저 없이 팔아서 마실 인사였다. 유사룡이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기분이 좋은지 혼자서 아무 말이나 지껄여 댔다.
* 홍농현 – 현재 중국 호남성 삼문협(三門峽)

“유상서님, 오늘 천문(天文)을 보신 결과는 어떻습니까?“

“번장군, 혹시 을지문덕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아는가?”

일록의 물음에 유사룡은 엉뚱한 것을 물었다.

‘음-, 이자도 내일 을지문덕 장군이 찾아온다는 것을 알고 장군에 관한 것을 연구하고 있었구나. 참으로 잘 되었다. 을지문덕 장군의 생시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나라든 최고위 장군의 사주(四柱)는 최고급 비밀이라 국왕이나 황제를 제외하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을지문덕 장군의 성(姓)과 이름에 사주가 들어있지 않은가? 을(乙)은 십간(十干) 중 두 번째에 해당한다.

한 달은 십간이 세 번 순회하는 기간이다. 그렇다면 태어난 날은 초이틀이나 열이틀 혹은 스무이틀이 될 것이라 본다. 그다음에 지(支)는 땅을 뜻한다. 나도 을지문덕 장군을 직접 본 적이 없지만, 호랑이 인상을 닮았다고 적당히 둘러대 보자. 과연 이자가 어떤 해석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일록이 두꺼비처럼 눈만 껌뻑거리자 유사룡이 다시 물었다.

“번장군 을지문덕에 대해 아는 게 없는가? 번장군은 최전선에 나가 전투를 하는 무인(武人)이니 을지문덕이에 대해 좀 아는 게 있나 해서 물었네. 나는 오랫동안 그자의 사주를 알려고 백방으로 수소문해봤지만, 아는 자가 없더군. 그자의 사주만 알 수 있다면 그자의 운명을 손금보듯 훤히 알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일록이 유사룡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전에 요동성을 공략할 때 고구려군 서너 명을 포로로 잡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포로들을 고문하면서 을지문덕이의 사주와 고향, 가족관계, 그와 동문수학한 벗들 등 여러 가지를 취조했습니다. 그때 한 포로가 말하기를 을지문덕을 살파랑이라 부르더군요. 소장은 아직도 그 뜻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밖에는 소장도 을지문덕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일록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했다.

“번장군, 방금 뭐라 했는가? 살바람이라 했는가?”

“아닙니다. 살파랑이라 했습니다.”

유사룡의 두 눈이 커지면서 놀란 토끼 모습 같았다. 일록은 살파랑의 의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유사룡은 옆에 일록이 있다는 것을 잊었는지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열심히 계산하는 것 같았다. 일록은 유사룡의 어둔한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살파랑이라? 죽일 살(殺), 깨트릴 파(破), 이리 랑(狼)자가 틀림없으렷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을지문덕이가 살파랑이란 말인가? 북두칠성 중 파군성(破軍星), 칠살(七殺), 탐랑성(貪狼星)이 형성하는 격국을 살파랑이라 한다. 이거 큰일이로구나. 특히, 우문술 장군과 우중문 장군은 파군성의 살기(殺氣)를 경계해야 한다. 만약, 을지문덕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두 장군이 살기를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또한, 을지(乙支)란 땅의 강성한 기운을 뜻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자는 하늘의 살파랑과 땅의 기운을 받아 기문둔갑술을 쓰거나 상상할 수 없는 조화를 부릴 수도 있을 것이야. 막아야 한다. 황제가 이미 을지문덕을 보거든 반드시 사로잡아 오라고 했지만,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을지문덕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수나라 별동대는 몰살할 수도 있다.

우문술 장군은 나의 말이라면 들어주지만, 문제는 고집불통의 우중문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두 장군에게 군사행동에 대해 조언과 자문해주는 위무사 아닌가? 양광 황제가 위촉한 위무사.’

유사룡이 정신으로 돌아온 듯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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