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 함정에 든 을지문덕

“을지 장군, 어서 말에서 내려 대수나라 별동대를 지휘하시는 우중문 대장군님과 우문술 대장군님께 하배(下拜)하시오.”

“진진 통역사, 나는 고구려 태왕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절을 하지 않소이다. 나는 고구려군의 총사령관으로 두 분 장군들과 강화협상(講和協商)을 하려고 왔소이다.”

을지문덕이 말 위에서 불쾌한 얼굴로 진진의 말에 대꾸하자, 배불뚝이 사내와 파란색 비단옷을 입은 사내가 얼른 을지문덕 앞으로 다가왔다.

* 한푸 – 중국 전통 남자 옷으로 아래위가 통으로 되어있다.

“어서 오시오. 나는 우중문이라 하오.”

“멀리 있는 길 오시느라 고생하였소. 이 사람은 우문술이라 하오.”

그제야 을지문덕은 말에서 내려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예의를 갖추고 통성명을 했다. 모두 긴장의 순간이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의 호위 군사들은 행여 무슨 변고나 일어나지 않을까 무척 긴장한 표정이었다.

“반갑습니다. 나는 대고구려군 총사령관 을지문덕이라 합니다.”

세 사람 모두 평상복 차림이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자 우중문이 을지문덕을 안내하여 대본영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본영 안에는 을지문덕, 우중문, 우문술 그리고 통역사 진진 등 네 명 만 있었고, 나머지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우중문과 우문술을 호위하던 군관은 웅록의 세 아들과 그들의 수하였다. 을지문덕과 우중문, 우문술의 담화가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담화가 막 시작될 때 유사룡이 술이 덜 깨 모습으로 대본영에 나타났다. 그는 일록을 보자 배시시 웃으며, 한쪽 눈을 찡끗했다. 간밤에 마신 독주가 아직도 덜 깬 것이 확연해 보였다.

“빨리 노를 저어라.”

고구려군 진영에서 출발한 중선(中船) 한 척이 빠른 속도로 압록수를 건너고 있었다. 오전에 을지문덕 일행이 타고 강을 건넜던 그 배였다. 배가 수나라군 진영이 있는 방향으로 건너오자 수나라 척후들은 그 배를 유심히 살폈다. 척후들은 그 배가 을지문덕이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깃배를 강안(江岸)으로 바싹 붙여라.”

그런데 수나라 척후들이 알지 못하는 장소로 또 한 척의 작은 어선이 북쪽에서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어선에는 웅록과 다섯 명의 고구려 무사들이 타고 있었다. 소형 어선이지만 어른 열 명이 충분히 탈 수 있는 규모였다. 작은 어선과 중선의 거리는 대략 5리 정도 되었다. 한여름이라 강가에는 수양버들이 우거져있어서 소형 어선이 버들가지 사이에 숨어있으면 찾기 어려웠다.

전쟁하는 두 나라 장수가 만나는 일은 휴전을 하거나 아니면 항복을 할 때 이외에는 거의 없었다. 우중문에게는 이미 전날 웅록이 고구려군 총사령관인 을지문덕이 강화를 하기 위하여 수나라 진영에 올 것을 알린 만큼 우중문과 우문술 그리고 그들의 휘하 참모진들은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웅록이 우중문에게 고구려군의 상태에 대하여 언질을 준 만큼 우중문과 우문술은 을지문덕이 항복하러 오는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을지문덕이 고구려 왕이나 혹은 태자 정도는 대동하고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우중문은 속으로 크게 실망하였지만, 을지문덕과 이야기를 나눠봐야 실상을 알 것으로 판단하고 자중하고 있었다.

을지문덕과 우중문, 우문술이 원탁에 앉았다. 수나라군의 본영이고 대장군 막사라 그런지 세 사람이 들어있는 막사는 무척 넓고 화려했다. 막사 안에 또 다른 작은 막사 서너 개가 있는데 침실이나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는 시설 같았다. 가운데는 장창과 황금빛으로 치장한 군검(軍劍)이 진열대에 세워져 있는데 우중문이 사용하는 병장기 같았다. 우중문의 뒤로 대형 지도가 걸려있었다.

지도에는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그리고 만주지역과 고구려의 강역이 그려져 있는데, 탁군(涿郡)에서 평양성까지 붉은 화살표로 수나라 별동대의 공격로가 그려져 있었다. 산동반도에서 황해를 지나 평양성까지는 청색 화살표가 덧칠되어 있는데, 그 표시는 수나라 해군을 이끌고 평양성으로 진출한 내호아의 공격로 같았다. 세 사람이 잠시 서먹한 상태에서 앉아 있을 때 시자(侍者)가 차를 내왔다.

“장군님들, 분위기가 너무 딱딱합니다. 차를 드시고 말씀을 나눠보시지요.”

통역사 진진이 촐랑거리며 세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을지 장군, 내가 즐겨 마시는 차입니다.”

우중문이 을지문덕에게 차를 권했다.

“우리 수나라에는 차가 아주 많습니다. 우리는 식사할 때나 일을 할 때 수시로 차를 마시지요. 고구려에도 대륙에서 차가 전래하였을 것입니다. 식기 전에 드시지요.”

우문술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을지문덕에게 수나라 차를 자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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