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푸른 타자기를 치다
김성배

내 심연에 푸른 타자기 한 채 살고 있다
탁, 탁, 탁
사부자기 맨발의 유채꽃이 자진모리로 나서서
서성이던 파도가 굿거리장단 흥얼거리는
진지리길을 따른다
옷깃을 여미던 등대만 바다를
먹끈의 어둠으로 적어나가고 있다
참꽃 각질이 이는 하늘이 시든다
질 줄 아는 것이 피는 법도 안다고
입술 다 닳도록 파도가 바위에 쐐기문자를 새긴다
곰삭은 노을은 몸이 단 수평선에
이백여섯 개 뼈가 뒤틀리는
절정의 죽방렴을 쳐 놓는다
아직도 바람을 헤메던
나의 바다를 이렇게 엮어내기가 힘겨울까
파란 여백 위에 몸을 부려놓지만
숨찬 파도 얼룩 같은 활자판만 달그락거린다
질박한 바다를 이고 살아간다는 건
갈매기 울음에 절여진 이름 석 자에
물음표와 마침표의 투망을 던져놓는 일이다
'마침표를 찍는다고 끝은 아니다'
만년을 녹슬지 않는 질긴 파도소리가
동대만을 가득 메운다
하루해의 주름 속에서 지는 것들을 위한
맛있는 해거름을 바래하기로 한다
맛조개, 우럭조개, 불통조개, 바지락, 쏙……
무꽃 핀 갯벌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저녁은 날것으로 잘 살아있다

파도가 파도치는 모습이 타자기를 치는 것과 같다는 시적 상상이 닿는다. 해안 도시에 살지만 자주 못 가는 바다를 이번 휴가철에 바다에 있으면서 이 시를 떠 올린 적이 있었기에 올려본다. 내일은 또 내일 새롭게 날 것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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