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을지문덕의 염탐

“두 분 장군께서 이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우리 고구려에도 차가 다양하게 있습니다. 이 사람은 고구려 인삼을 달인 차를 즐겨 마신답니다.”

을지문덕이 탐스러운 수염을 쓸어내리며 여유를 부렸다.

“호오, 고구려 인삼이 몸에 참으로 좋다는 소문을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내가 평양에 입성하면 인삼차를 실컷 마셔봐야겠습니다. 인삼이 남자들 정력을 보강하는 데 좋다고 하는데요? 요즘 들어 내가 정력이 달려서 그런지 밤일이 시원치 않습니다.”

우중문이 너털웃음을 흘리며 분위기에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두 장군께서 이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대군을 이끌고 먼 달려 압록수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내가 나중에 대장군들께 고구려 인삼을 선물하지요. 인삼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몸에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인삼을 복용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몸 상태를 알아봐야 합니다. 인삼이 누구에게나 잘 듣는 게 아니랍니다.”

을지문덕의 말에 뼈가 들어있었다.

“아, 그렇군요. 고구려 인삼이 영약이란 말을 예전부터 들어왔습니다. 백제와 신라에서도 인삼이 산출되는데, 고구려 인삼이 최고라고 하지요? 장군께서 선물하신다니 기대가 됩니다.”

침착한 성격의 우문술이 을지문덕을 흠모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문술은 을지문덕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덕담이 너무 오래가는 듯 하자 진진이 옆에 있다가 자주 킁킁거리며, 불편해했다. 그는 통역하면서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때 밖에 있던 위무사 유사룡이 술 냄새를 풍기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을지문덕에게 시선이 꽂혔다.

“위무사 어른, 이분은 고구려군 총사령관 을지문덕 장군이십니다.”

진진이 유사룡에게 을지문덕을 소개했다.

‘오오-, 과연, 과연 파군성의 정령이 사람으로 화(化)한 게 분명하구나. 일록 좌장의 말대로 한 마리의 맹호로다. 아니, 맹호가 아니라 하늘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거대한 항용(亢龍)이로다. 나는 지금까지 이처럼 고고하고 헌거로운 호걸은 처음 본다. 내가 이 호걸 옆에 있어도 강한 자기(磁氣)가 느껴진다. 이런 사람이 우리 수나라에 태어났더라면 황제가 되고도 남는다. 검은 팔자 수염과 대춧빛보다 붉은 얼굴, 파란 안광(眼光)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눈, 여인네보다 크고 진한 입술, 아-, 과연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영걸이로다.’

유사룡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위무사 어른, 어제 드신 술이 아직도 안 깨십니까? 이분은 고구려군 총사령관 을지문덕 장군이십니다.”

유사룡이 을지문덕을 빤히 바라만 보고 있자 진진이 다시 한번 소개했다.

“어? 아! 그, 그렇지. 고구려군 총사령관이신 을지문덕 장군님이시지. 미안합니다. 제가 장군의 용안(龍顏)을 바라보다가 그만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송구합니다. 소인은 수나라 상서우승으로 별동대에 소속되어 위무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을지 장군님을 직접 알현하니 감개무량합니다.”

유사룡이 이상하리만치 을지문덕에게 고개를 반쯤 숙여 체머리 떨며 굽신거리자, 우중문과 우문술은 자존심이 상했다. 우중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무사, 용안은 황제에게나 쓰는 말이오.”

“아, 알지요. 알고말고요. 을지문덕 장군님은 황제보다 더 위에 계신답니다.”

“아니, 뭐라고요? 위무사는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요?”

우중문이 불쾌하고 뇌꼴스러운 얼굴로 유사룡에게 꾸짖듯 소리쳤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을지문덕은 그만 자리에 앉아 있기가 멋하여 자주 큰기침을 해댔다.

“자, 장군, 이러시면 안 됩니다. 자중하셔야 합니다.”

그 와중에 진진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우중문에게 진정하라고 애면글면했다. 을지문덕은 웃음이 났지만, 간신히 참고 있었다. 진진이 겨우 유사룡과 우중문 사이를 진정시키고 을지문덕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는 고구려군 총사령관이신 을지문덕 장군과 강화회담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 인사치레는 그 정도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모두가 바쁜 사람들이니 군소리는 될 수 있으면 빼고 알맹이만 가지고 논하는 게 좋은 듯 합니다.”

우문술이 좌중을 바라보며 한마디 하자 우중문이 컥컥대며 부아가 난 심사를 진정시켰다. 유사룡은 우중문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음에도 정신을 못 차린 듯 을지문덕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우중문과 우문술이 싸움닭이라면 을지문덕 장군은 독수리라 할만하다. 양광 황제가 을지문덕이나 고구려 태왕을 보면 반드시 잡아서 요동의 대본영으로 압송하라고 했다. 우중문이 그리하고도 남을 자이다. 내가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나 우리 수나라 군사들은 을지문덕에게 전멸당할 수 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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