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을지문덕을 잡아라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께서도 을지문덕을 보면 사로잡아 압송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문술도 을지문덕을 체포하는 데 동의하였다.

“안 됩니다. 절대로 그리하면 안 됩니다.”

유사룡이 우문술과 우중문의 의견에 반대하였다.

“위무사, 황제 폐하께서 을지문덕을 보면 사로잡아 압송하라고 나와 우문술 장군에게 밀명을 내리셨습니다. 황제의 명령을 거역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우중문의 눈이 황소눈 처럼 커졌다.

“우익대장군 말이 맞소. 황제께서 그리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런데, 상서우승께서 어찌 반대하시는 겁니까?”

우문술이 유사룡이 반대하는 이유를 물었다.

“두 분 장군들께서 어느 정도 병법을 안다면 나의 말을 알아들을 겁니다.”

유사룡은 우문술과 우중문의 손까지 잡고서 극구 만류하였다.

‘아니, 이자가 보자 보자 하니까 못하는 말이 없구나. 병서라면 나도 수십 번도 더 읽고 실전에 응용도 하였다. 특히, 거란이나 돌궐 등과 수많은 전투에서 나는 병법을 활용하여 매번 승리하였다. 그런데, 붓이나 잡고 있던 유사룡이 병법 운운하니 가소롭기 짝이 없구나.’

우문술은 유사룡의 말이 괘씸했지만 참고 있었다.

“위무사, 요즘 들어 함부로 말을 하는데, 병법에 적장을 절대로 잡으면 안 된다는 구절이 어디에 나와 있답니까? 손빈(孫臏)의 손자병법에 그런 말이 있더이까? 아니면, 오기(吳起)의 병법서의 나와 있습니까? 그도 아니라면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에 그런 말이 한 적이 있습니까?”

우문술과는 달리 우중문은 핏대를 세우면서 유사룡을 힐난하였다. 그러나 유사룡은 빙그레 웃으며 오히려 우중문과 우문술을 어리보기 대하듯 했다. 유사룡이 여유 있는 자세로 나오자 우문술은 유사룡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위무사. 어째서 을지문덕을 체포하면 안 된다고 하는지, 이유나 들어봅시다.”

우문술이 일단 유사룡이 반대하는 이유가 듣고 싶었다. 우문술은 유사룡이 병법뿐만 아니라 천문지리까지 통달하였다는 말을 듣고는 있었지만, 그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나라 군대가 고구려군과 주요 전투를 할 때마다 유사룡은 천문이 어떻고, 지리가 어떻고 하면서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들에게 말참견하였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유사룡의 말을 들어서 크게 낭패를 본 적이 없었다.

“좌익위대장군, 살파랑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살파랑(殺破狼)이란 게 뭡니까? 낙양에 있는 고급 기루 이름입니까? 아니면 고구려 기녀(妓女) 이름입니까? 나는 태어나서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봅니다.”

속으로 유사룡을 깔보던 우문술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많은 장수가 병법서만 읽었다면 이는 겨우 말 타는 법을 배운 것에 불과합니다. 병법을 제대로 배운 자는 천문과 지리에도 능통해야 합니다. 을지문덕은 살파랑 격국(格局)을 구성하고 북쪽 하늘을 지배하는 운명을 타고났습니다.

살파랑은 북두칠성 중 탐랑성, 파군성, 칠살을 말하는데, 장군들이 을지문덕 장군을 해치거나 곤란에 빠지게 하면 자칫 황제 폐하의 목숨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황제 폐하께 불행한 일이 발생하면 그 모든 책임을 두 분 대장군께서 져야 합니다.

내가 근자에 천문을 자주 염탐해보면서 자미두수(紫微斗數) 12궁 중 황제에 해당하는 별들을 관찰하니 천이궁(遷移宮)에 흉한 기운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바로 살파랑의 격국에 의한 일이니 을지문덕 장군을 그냥 돌려보내야 합니다. 아직은 을지문덕을 잡아 둘 때가 아닙니다. 삼백만 수나라 대군의 고생이 자칫 무위로 돌아가고 고구려 원정은 수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부디, 자중해야 합니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유사룡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진법(陣法)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유사룡이 을지문덕에게 위해를 가하면 황제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말에 우문술과 우중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두 사람은 유사룡이 천문지리에 능통하다는 풍문을 몇 차례 들은 바는 있지만, 황제의 목숨이 연관되어 있다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우중문이 우문술의 팔을 잡고 잠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일각(一刻)이 지난 뒤에 다시 나타났다.

“우리 두 사람은 위무사 의견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대장군님들, 정말로 잘하셨습니다. 황제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우문술과 우중문은 떨떠름한 기분으로 본영 막사로 돌아왔다. 을지문덕과 우중문, 우문술은 보름 후에 다시 수나라 진영에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 약속에는 을지문덕이 고구려 태왕과 조정의 관리들을 모두 데리고 함께 오는 조건도 붙었다. 세 사람은 웃는 낯으로 술잔을 비우고 밖으로 나왔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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