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녹족 형제 을지문덕을 구하다

을지문덕과 수행원 두 명이 수나라 진영을 빠져나와 동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을지문덕 일행이 돌아가고 나서 우중문은 삼록을 불렀다.

“대장군,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다. 유사룡이 나에게 흥글방망이놀은 게 틀림없다. 을지문덕을 체포해야 했다. 촐랑이 유사룡의 체 치 혀 때문에 대사를 그르친 게 분명하다. 삼록대장은 구록대장과 병사 열 명을 데리고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잡아 와라.”

“알겠습니다.”

우문술도 을지문덕을 보내놓고 나서 곰곰이 생각하니 유사룡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은 게 아니라면 위무사인 유사룡이 천문지리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었다. 우문술은 자신의 좌익위대장군 진영으로 돌아가던 중 다시 말머리를 돌려 우중문에게 향했다.

“삼록대장님, 구록대장님, 저기 을지문덕 일행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와 대략 천여 보(步)쯤 되는 거리입니다.”

우중문의 명령을 받고 을지문덕 일행을 추격하던 수나라 추격병이 소리쳤다. 정말로 을지문덕 일행이 뽀얀 흙먼지를 날리면서 동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저 멀리 압록수가 추격병들의 시야에 들어왔다. 곧이어 을지문덕 일행을 태우고 돌아갈 중선도 보였다.

을지문덕 일행은 뒤를 돌아보다가 한 떼의 기마병이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것을 보고 더욱 말을 빨리 달렸다. 을지문덕 일행이 수군추격대가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추격병들이 타고 있는 말이 을지문덕 일행들이 타고 달리는 말보다 빨랐다.

“장군, 거기 서시오. 할 말이 있소이다.”

“을지문덕 장군, 잠깐 서시오. 전달할 물건이 있소이다.”

추격병들이 을지문덕 일행에게 소리쳤다. 그때 삼록은 구록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구록이 삼록의 신호를 받고 고개를 끄덕거리며 맨 뒤로 빠졌다. 이유도 없이 말달리는 부하들을 세울 수는 없었다. 을지문덕 일행과 겨우 백 보 정도고 거리가 좁혀졌다.

“장군, 수나라놈들에게 잡히게 생겼습니다. 말이 빨리 달리지 못합니다.”

“큰일이다. 적정(敵情)을 잘 살폈는데, 잡히면 모든 게 허사가 되고 만다. 저기 강기슭에 고구려군 배가 있다. 조금만 더 달려라.”

을지문덕은 압록수 가까이 접근하면서 위험한 상황이 되면 북쪽으로 오리쯤 더 달릴 계획이었다. 그곳에 웅록이 있기 때문이었다. 을지문덕 일행과 수나라 추격대 사이가 거의 좁혀졌을 때였다. 갑자기 수나라 추격병들이 화살을 맞고 비명을 질러대며 말에서 떨어졌다. 주변에 고구려 군사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추격병들 모두가 땅에 떨어지고 삼록과 구록만 말을 타고 있었다. 형제의 손에 활이 들려 있었다. 형제는 말에서 내려 을지문덕을 향해 절을 하였다. 압록수를 향해 달리던 을지문덕은 기이한 일을 목격하고 다시 말머리를 돌렸다.

“장군, 가시면 안 됩니다.”

“장군, 위험합니다. 저들이 속임수를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은 잠시 여기서 기다려라. 나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절대로 오면 안 된다.”

을지문덕이 느끼는 바가 있었다. 수나라 진영에 들어가 우중문과 우문술을 만날 때 그들 곁에 일록, 삼록, 구록이 무장한 채 호위하고 있었다. 녹족 삼 형제는 을지문덕과 시선이 마주치면 고개를 숙이고 정중하게 목례를 하며 예의를 갖추었다. 이전까지 보아온 수나라 군관이나 장수들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을지문덕은 녹족 삼 형제와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다가가서 그들의 이름과 소속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말에서 내린 을지문덕이 삼록과 구록에게 다가갔다. 삼록과 구록은 을지문덕이 가까이 다가와도 일어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을지문덕에게는 단검 한 자루도 없었다. 을지문덕이 엎드려 있는 형제의 등을 두드렸다.

“고맙습니다. 두 분께서 이 사람을 살리셨습니다.”

을지문덕이 형제에게 고맙다고 존댓말을 하자 그제야 형제는 고개를 들어 을지문덕을 올려다보았다. 형제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장군님, 다시 한번 절을 올리겠습니다.”

“그만해도 됩니다.”

을지문덕이 녹족 형제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세 사람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마치 아버지가 아들들과 대화를 하는 모양새였다. 을지문덕의 수행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기이한 사건을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우두망찰 말 잔등에 앉아만 있어야 했다.

한 식경(食頃)쯤 지나서 녹족 형제는 을지문덕과 헤어져 수나라 진영이 있는 쪽으로 말을 달렸다. 을지문덕은 형제를 보내놓고서도 한참 동안 그 자리에 서서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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