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위기의 평양성

압록수의 물이 장마 이전의 수준으로 되면서 수나라와 고구려군 사이에 점차 긴장이 높아져 갔다. 을지문덕은 수나라 별동대가 곧 압록수를 건널 것을 예상하고 그들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수나라 별동대는 요동에서 압록수까지 오면서 고구려군과 전투다운 전투를 해보지 못했다.

고구려군을 맞아 싸우는 것보다 무거운 군장(軍裝)을 메고 천리(千里) 가까운 길을 행군하는 게 더 어려웠다. 별동대는 백 일 분의 군량과 갑옷, 무기 등을 짊어지고 고난의 행군을 해야 했다. 마치 큰 돼지 한 마리를 업고 가는 것과 같은 무게였다. 별동대들은 도저히 군장을 가지고 이동하기 어려워지자 행군 도중에 식량과 군장을 파묻기도 했다.

그들이 압록수 주변까지 왔을 때 백일 치 식량 중 겨우 닷새 정도 버틸 수 있는 군량만 남아있었다. 일부 군사들은 식량이 없어 남의 것을 훔치기도 했다. 군사 대부분이 굶주리고 있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우문술과 우중문은 군량(軍糧)을 버리는 자는 목을 베겠다고 경고하였다.

을지문덕을 그냥 돌려보낸 우중문과 우문술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를 추격하던 추격대마저 전멸하고 겨우 삼록과 구록만 중상을 입고 돌아오니 우중문은 더욱 난감한 지경이 되었다.

“우중문 장군, 아무래도 우리가 압록수를 넘는다는 것은 무리요. 군사들에게 나눠준 군량도 겨우 사나흘 분밖에 남지 않았소, 대본영으로 돌아가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출발합시다. 당초 우리 별동대가 회원진(懷遠鎭)과 노하진(瀘河鎭)을 출발할 때만 해도 건장한 상태였지만, 지금은 태반이 질병에 시달리고 있소. 이런 군대를 이끌고 압록수를 넘고 살수(薩水)를 건너 평양성까지 간다는 것은 곧 죽으러 가는 것과 같소.”

우문술의 말에 우중문이 인상을 썼다.

“무슨 소리입니까? 저 압록수만 건너면 평양성까지 곧장 내달릴 수 있소이다. 부족한 군량은 지금 한여름이니 산에서 나는 열매나 과일 등으로 보충하면 됩니다. 압록수를 건너가면 이곳보다 먹을 것이 많소이다. 질병은 군사들이 움직이지 않고 군영 막사 안에만 있어서 더 번진 것이오. 창칼을 들고 전투를 하면 씻은 듯 나을 수도 있소이다. 우리는 한시도 지체할 수 없소이다. 당초 예정일 보다 많이 지체되었소. 지금 상태에서도 나나 좌장군은 황제에게 질책을 받을 수 있소.”

우중문은 우문술의 말을 무시했다. 우중문이 서둘러 압록수를 건너려는 이유는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잡으려는 것과 평양성으로 오고 있을 해군의 내호아를 만나면 군량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내호아가 이끄는 해군 10만 명 중 4만여 명이 평양성을 공격했다가 왕제(王弟) 고건무가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몰살당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을 우중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양성에서 퇴각한 나머지 병력은 요동반도와 평양성 사이에 있는 장산군도 같은 섬들을 떠돌며 대기하고 있었다. 수나라 해군은 우중문과 우문술이 이끄는 별동대의 상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내호아는 해군과 별동대가 협공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보았다.

“속히 압록수를 건너라.”

별동대를 우중문과 우문술이 지휘했지만, 실질적인 총지휘관은 우중문이었다. 황제 양광은 우문술보다 우중문을 더 신임하고 있었다. 양광은 우중문이 군사를 이끄는데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으며, 대사를 앞에 두고 주저함이 없이 돌진하는 그의 시원한 성격을 좋아했다. 우문술은 황제가 자신보다 우중문을 더 신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우중문에게 끌려가듯 할 수 없이 압록수를 건너야 했다. 그에게는 퍽 내키지 않는 진군이었다.

“빨리 건너라. 압록수는 깊지 않다. 깊은 곳은 헤엄쳐서 건너리.”

좌군을 지휘하는 설세웅(薛世雄)이 채찍을 휘두르며 뒤에 쳐진 병사들을 닦달했다. 그는 우중문의 심복으로 불리며, 별동대를 함부로 다뤘다. 별동대가 압록수를 건너자 고구려군은 여러 군데에서 수나라군을 기습공격 하였지만, 별동대는 크게 병력 손실을 보지 않았다. 고구려군은 치고 빠지는 수법을 쓰면서 별동대를 괴롭혔다. 양측이 접전을 벌이는가 싶으면 어느새 고구려군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우중문은 고구려군이 접전하다 도망치자 기고만장하며 우쭐댔다. 별동대가 연전연승하자 우중문의 요청으로 잠시 제장(諸將)들이 모여 작전 회의를 하였다. 우중문은 자신의 군공을 자랑하고 계속해서 고구려군을 추격할 요량이었다.

“우문술 대장군, 고구려놈들이 도망만 치는 것을 보니 어떻소?”

“장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우리가 을지문덕이에게 속았습니다. 고구려군이 번번이 싸우다 도망치니 무슨 간계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이쯤 해서 퇴각하는 게 어떻습니까? 어제도 군사들이 질병이 악화하여 죽어 나갔습니다.

또한, 군사 대부분이 식량이 떨어져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되면 우리는 평양성에 도착도 하기 전에 전멸당할 수 있습니다. 회군하여 전열을 재정비한 다음 다시 와도 늦지 않습니다. 전멸당하는 것보다 공격 시기를 늦추는 편이 현명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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