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지의 노래
허민

 나를 스쳐간 독자여
지나온 생을 되돌아보는 밤이다
구멍 난 가슴 한쪽 스스로를 위한
작은 부고 기사 하나 실어보지 못하고
결국 이렇게 끝을 맺는 밤이다
낡은 집 바닥에 젖은 채 누워
한껏 페인트나 풀을 뒤집어쓰거나
먹다 남은 짜장면 그릇 따위 덮고 있을 줄
몰랐던 쓸쓸한 밤이다
노숙인의 유품이 되어 그의 마지막 겨울을
나의 마지막으로 덮게 될 줄 몰랐지만
마지막까지 나를 필요로 했고
나는 그의 외로움을 가려주었으니
조금은 괜찮았던 밤이다
생이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으니
내가 한 그루 푸르고 싱싱한 나무였을 적
한 여인이 내게 등을 기댄 채
텅 빈 하늘만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괜찮다, 나쁘지만은 않았지 생각한 밤이다
그녀를 위한 한 권의 인생이 되기 위해
빗방울의 손톱들을 삼키고
여러 날의 미치도록 거센 바람과
눈송이의 쌓여가던 무게를 견뎠던 밤이다
스쳐간 이름들, 흔들리는 이파리로 살다가
결국 흰 눈 가득한 백지가 되어
그대들을 위한 간절한 소식 적었고
한 줄의 슬픈 사건이 되기도 했던 캄캄한 밤,
한 사람을 사랑한 여인이 부러 깨뜨린
유리잔 조각 하나하나 쓸어 담는
구멍 난 종이 뭉치, 나 기꺼이 되었던 밤이다
그러니 독자여, 바닥을 뒹구는 내 마지막 보거든
지난한 밤을 기억 말고 대신
끝내 되고자 했던, 살고자 했던
내 푸른 문장들을 상상해 주길
잠시라도 그대 가슴 안에서
솨솨솨_ 내 전생의 숲이 불어오는
길고도 짧은, 오늘의 깊은 밤이다

붓을 든 선비가 일필 한 것처럼 막힘과 주저함이 전혀 없이 써 내려간 매끄러운 것이 일품이다. 쓰다 보면 엉키고 읽다 보면 매듭으로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기에 시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우선 시원한 느낌이 강하게 와닿는다. 2023년 평택 생태시 문학상을 받은 허민 시의 [신문지의 노래]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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