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수나라 진영의 내분

우문술도 우중문의 기세에 눌리거나 꺼둘리지 않으려고 무진히 애를 썼다.

“우중문 대장군, 좌익위대장군의 의견도 일리가 있어요. 어쩌면 우리 별동대가 고구려놈들의 전략에 말려들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재고해보셔야 합니다. 별동대가 타국 땅에서 고혼(孤魂)이 되는 것보다 회군하여 재정비하는 편이 좋습니다. 작전상 후퇴는 황제 폐하께서도 뭐라 나무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잠자코 있던 유사룡이 끼어들어 우문술을 거들고 나섰다. 두 사람이 철군을 말하자 우중문도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다 낭패를 보면 모든 책임을 혼자서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좌익위대장군이나 위무사 어른의 말씀에 소장도 동의하는 바입니다. 우익위장군께서 말씀하신 것 보다 아군의 상황이 더 심각한 수준입니다. 괴질에 걸려 죽어 나가는 군사가 하루에 수백 명이 넘습니다. 군량이 떨어져 군사들이 풀이나 나뭇잎을 뜯어 죽을 쑤어먹고 있습니다. 고구려군이 퇴각하면서 들판에 있는 곡식이나 식량이 될 만한 것은 모두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좌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도 나서서 우중문에게 철군을 건의했다. 그는 백전노장으로 우중문과 우문술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장수였다. 우중문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한 지경이 되었다.

“아닙니다. 지금 내호아 장군이 이끄는 수나라 해군이 요동반도 인근 장산군도에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에 평양성을 공격했다가 일부 병력의 손실은 있었지만, 아직도 수만 명의 병력이 있고 군수물자 또한 수백 척의 배에 가득 실려 있습니다. 우리 별동대가 평양성만 도착하면 내호아 장군이 이끄는 해군을 만나야 합니다. 그때는 군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처럼 계속 전진한다면 곧 평양성에 당도할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우문술의 일록 좌장이 우중문의 주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다른 장수들이 우중문에게 철군을 주장하는 반면에 우문술의 좌장이 그러한 발언을 하자 우문술은 충격을 받았다.

“번일록 좌장, 자네는 누구의 막료인가? 나인가? 아니면 우익위대장군인가?”

우문술이 자리에서 벌떡이어서더니 일록에게 대갈일성 했다. 일록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삼록이 구록에게 신호를 보냈다.

“소장이 한 말씀 하지요.”

구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아닙니다. 소장이 먼저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삼록이 일어서서 소리쳤다. 우중문의 휘하에서 공격대장 임무를 맡은 삼록과 구록이 동시 일어나 발언권을 요청하자 회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회의에 참석한 여러 장수는 삼록과 구록이 일록의 아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녹족 삼 형제는 별동대에서도 용맹하기로 이름난 장수들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감하여 그 어떤 장수들에게도 무용(武勇)만큼은 절대 밀리지 않았다.

“구록 대장부터 말해보오.”

우중문이 구록을 가리켰다.

“지금 우리 별동대가 약간의 내부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여 진격을 멈추거나 주저하면 안 됩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우중문 대장군님에게 별동대의 총지휘권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런데 병사들 몇 명이 괴질에 걸리고 군량이 모자란다고 돌아간다면 불같은 성정의 황제 폐하의 노여움을 어찌 감당하실 겁니까? 우리 별동대 지휘부는 고구려군에게 죽기 전에 황제의 칼에 먼저 목이 잘릴 수 있습니다.

지금 압록수 건너부터 평양성까지는 십만 명도 안 되는 고구려군이 지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빨리 진군해야 합니다. 별동대가 평양성에만 도착하면 내호아 대장군의 해군과 만나야 합니다. 별동대와 해군이 연합하여 평양성을 공격하면 이틀 안으로 성을 함락시킬 수 있습니다.”

구록의 세 치 혀가 좌중을 그만 얼어붙게 했다. 별동대를 이끄는 여러 장수가 고구려군이 아닌 황제의 칼에 먼저 죽을 수 있다는 말에 그만 누구도 퇴각하자느니, 회군하자느니 하는 패색 짙은 말을 할 수 없었다.

“장군, 소장도 한마디 하겠습니다.”

“하오-.”

구록의 말에 기분이 우쭐해진 우중문은 삼록에게도 발언권을 주었다.

“지금 상태에서는 공격만이 능사입니다. 무조건 고구려군을 밀어붙이는 것만이 최선책입니다. 우리 별동대가 어렵게 압록수를 건넜는데 이대로 회군한다면 고구려군에게 반격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별동대는 고구려군을 상대로 모두 승리했는데, 철군하다가 한 번의 반격으로 패배라도 하면 별동대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고 자칫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소장이 보기에는 고구려군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살수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살수를 건너면 평양성까지 금방 당도할 수 있습니다. 대장군께서 지금 즉시 내호아 대장군에게 전서구(傳書鳩)를 날려 모월 모일까지 평양성 하구에서 만나자고 하시면 됩니다. 황제 폐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삼록의 말에 여러 장수는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보며 킁킁 대기만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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