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우중문의 착각

“과연, 과연 번회 아들답도다. 그 아비에 그 자식들이로다. 좋다. 별동대 총지휘관으로서 여러 장수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평양성까지 잠시도 지체하지 말고 돌격하라. 꾸물거리거나, 눈치를 살피며 진군을 빨리 진행하지 않는 지휘관은 즉결 처분하겠다. 알겠는가?”

“장군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우문술과 유사룡만 머쓱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해댔다. 우중문의 서슬에 여러 장수는 그만 기가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7월 중순에 접어든 시기였다. 아침에 해가 뜨기 무섭게 대지는 달아올랐다. 수나라 별동대는 허기진 가운데 우중문의 명령을 따라 진격해야 했다. 병사들은 마지못해 진군하다가 주저앉거나 숨이 넘어가는 자들도 속출했다. 우중문은 진군하기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병사들은 모두 죽이라고 하였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별동대가 아군의 창칼을 맞고 죽어 나갔다.

* 전서구 – 통신에 이용되는 잘 훈련된 비둘기

“고구려군 보다 아군이 더 무섭다. 도대체 우리가 누구와 전쟁을 하는 것인가?”

“괴질에 걸렸으면 치료해줘야지, 걷지 못한다고 죽이면 우린 어쩌란 말이냐?”

“우중문은 사람도 아니다. 우리가 살려면 저놈 먼저 죽여야 한다.”

“녹족 삼 형제가 미쳤나 보다. 그전에는 우리들의 처지를 대변하더니만 갑자기 사람이 변했다. 그놈들도 군공에 눈이 멀었다.”

“우문술 장군 말이 맞다. 별동대는 평양성에 도착하기도 전에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우중문이 마음을 돌려야 우리가 살 수 있다.”

“우린 파리 목숨이네. 전장에서 죽어도 누구 하나 슬퍼하지 않을 것이네. 시기를 잘못 타고난 우리 운명을 탓해야지.”

별동대는 진군하면서 불평불만을 토로했지만, 지휘관들은 그들의 말을 무시했다. 다른 부대보다 전진 속도가 느리면 우중문의 칼에 목이 떨어질 수도 있었다. 고구려군이 나타나도 병사들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구려군이 가까이 접근해야 할 수 없이 활을 쏘고 전투 대형을 갖추었지만, 고구려군은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하여 별동대를 골탕 먹이기만 했다. 압록수를 건넌 수나라 별동대와 고구려군이 일곱 차례나 큰 접전을 벌였지만, 그때마다 수나라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우중문의 생각처럼 진군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군량이 떨어진 별동대들은 먹을 것을 찾아 자주 군영을 이탈하거나 진군 중에도 대오를 무단으로 빠져나와 도로변에 있는 민가를 급습했지만, 민가에는 보리 한 톨,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짐승의 사체(死體)를 보면 그들은 그것을 토막 내 불에 구워 먹거나 끓여 먹었다. 짐승의 사체를 먹은 군사들은 곧 알 수 없는 병으로 목숨을 잃었고, 지휘관들은 군사들에게 대열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지만 굶주린 병사들은 상관의 명령도 무시했다.

“형님, 이제 평양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녹족 삼 형제가 저녁에 잠시 만났다.

“넉넉잡고 사흘 후면 평양성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내일 살수를 건너면, 고구려군 측에서 협상하자고 사람을 보내올 수도 있을 겁니다. 그때 어머님이나 을지문덕 장군님이 오실지도 모릅니다.”

녹족 삼 형제는 이제부터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조국 고구려를 위해 헌신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 형제들의 행동 방향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자 했다. 형제들은 이미 우중문 우문술에게서 마음이 떠나 있었다. 형제들은 어떻게 하면 고구려군이 대승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녹족 형제들이 웅록을 처음 만났을 때 충분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우리 형제들은 별동대가 고구려군과 대접전 벌일 때를 기다렸다가 고구려군과 내응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장수들이 우리들의 행동을 눈치채게 하면 절대 안 된다.”

“형님, 내호아가 정말로 다시 평양성으로 돌아올까요?”

삼록은 내호아의 상태가 궁금했다.

“그자는 지금 장산군도에 있다지만 한번 고구려군에게 패퇴한 전력이 있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설령, 그자가 저번의 과오를 만회하기 위하여 재차 평양성으로 진군한다 해도 군사들이 이미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형제는 내호아가 오든 말든 신경 쓸 것 없다. 어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고구려군이 승리하도록 유도하면 된다.”

형제들이 행군 중인 상태에서 자주 만난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지난번 작전 회의 때 삼 형제가 우중문의 편을 든 다음부터 다른 지휘관들이 형제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지휘관들뿐만 아니라 병사들도 녹족 삼 형제를 비난하였다. 진중에서도 병사들은 삼 형제를 보면 은근히 야유하거나 뒤에서 욕을 해댔다. 녹족 삼 형제는 자신들을 향한 병사들의 비난이 거세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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