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고구려군의 유인작전

을지문덕은 마침 태왕이 잠시 전방 시찰을 왔을 때 웅록의 비밀에 대하여 모두 고했다. 태왕은 웅록의 존재에 대하여 알고는 있었지만,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했다. 태왕은 그녀의 세 아들이 별동대의 수뇌부로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놀라며 웅록을 불러 여러 가지를 물어보기도 했다.

태왕은 을지문덕에게 수나라 별동대에 있는 웅록의 아들들과 수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수단을 취하고 작전을 구상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을지문덕은 수나라 말을 제법 할 줄 아는 병사 서너 명을 차출하여 세작(細作)으로 정하고 수나라 병영으로 침투하여 녹족 삼 형제와 접촉도록 했다.

“고구려군들이 우리가 남하하는 사흘 동안 한 명도 보이지 않는구나. 이 항복문서가 과연 진짜가 맞는구나. 빨리 평양성에 입성해서 황제 폐하께 전승을 보고해야겠다. 여러 장수는 진군 속도를 높여라. 한시가 급하다.”

우중문이 휘하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대장군,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우리 군의 자랑스러운 별동대가 남하할 때 이미 수십 개 마을을 지나쳤지만,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구려 백성들이 모두 나와 우리 군대에 손을 흔들거나 환영해야 정상이 아니겠습니까?”

신세웅이 자꾸만 뒤를 돌아보고 사방을 살피면서 우중문에게 주의하라고 권했다.

“신 장군은 의심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내 손에 고구려 태왕의 옥새가 찍힌 항복문서가 있는데 뭘 그리 의심하는가? 사내대장부는 한번 믿으면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의심하면 안 되네. 잡생각 하지 말고 병사들에게 더욱 속도를 내어 평양성을 향해 달리게 하게.”

우중문의 시큰둥한 말에 여러 장수는 그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말을 달려야 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군관 이상급은 크게 힘든 줄 모르지만, 별동대 하급 병사들의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행히 한여름이라 그렇지 겨울이었다면 대부분 병사는 벌써 동사(凍死)하거나 병사(病死) 또는 굶어 죽었을 것이었다.

매일 물 한 모금과 소금 한 숟가락으로 버티며 죽기 살기로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별동대가 압록수와 살수를 건너 남하하는 동안 수천 명의 병사가 괴질과 기아로 사망하고, 정체불명의 괴한들 기습에 또한 수천 명의 병사가 죽거나 다쳤다. 우중문은 중상이 심각한 병사는 몰래 죽이도록 지시하여 남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대장군, 저기 희미하게 보이는 물줄기가 아마도 *패강(浿江)인 듯 합니다.”

앞서 달리던 설세웅(薛世雄) 우중문이 타고 있는 지휘부 마차 쪽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신세웅이 소리치자 군사들도 그 자리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며 함성을 질러댔다.

“패강이라면 평양성이 얼마 안 남았다는 것이렷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마차에서 내려 별동대의 진군을 멈추고 잠시 쉬도록 했다.

“아-, 과연 저 반짝거리는 물줄기가 패강이 맞는 것 같다. 드디어 고구려 궁성 앞까지 왔구나. 그런데, 우리가 이곳까지 왔으면 고구려 태왕이나 을지문덕이 다려와서 나를 영접해야 하는 거 아닌가?”

“장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군사들을 다시 살수쯤으로 물립시다.”

우문술이 약간은 두려운 표정으로 우중문에게 철군을 제의했다. 자신도 별동대를 이끄는 최고 대장군이지만 별동대의 총지휘권이 우중문에게 있기에 강력하게 말할 수 없었다.

* 패강 – 대동강

“허허-, 좌익위대장군은 아직도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구려. 고구려 태왕의 항복문서가 내 손에 있고 그들이 평양 성문을 활짝 열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데, 뭐가 겁이 나서 그런 재수 없는 말만 골라서 하는 거요? 겁이 나면 이 길로 황제 폐하께서 계시는 요동 대본영으로 돌아가시구려.”

“내가 꼭 돌아가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오. 장군에게 참고하라는 뜻에서 한 말이니 오해 없기를 바라오.”

말 한마디 했다가 여러 부하 앞에서 망신만 당한 우문술은 입술을 깨물었다. 우중문에게 이런저런 말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나중을 위해서라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이곳에서 잠시 머문다. 군영을 설치하고 쉬도록 하여라. 그리고 여러 장수를 소집하라.”

우중문이 휘하 장수들을 소집하여 긴급히 작전 회의를 열고자 했다. 그도 무작정 웅록이 전한 고구려 태왕의 항복문서를 믿지는 않았다.

“우리는 장군님들이 회의하는 동안에 먹을 것을 찾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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