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평양성 삼십 리 밖

행군이 멈추고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상태가 안 좋은 병사들은 풀숲이나 숲속에 아무렇게나 누워 주린 배를 쥐어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다른 병사들은 들로 산으로 퍼져서 먹을 것을 찾느라 야단이었다.

들판에는 고구려군이 미처 제거하지 못한 곡식이 약간 남아있었다. 병사들이 날곡식을 뜯어 입안에 쑤셔 넣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콩 껍질도 까지 않고 날로 먹다가 캑캑거리는 병사, 누렇게 말라 죽은 채소 잎사귀를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는 병사, 반쯤 썩어 문드러진 호박을 우걱우걱 씹어먹는 병사 등 들판과 야산에 병사들이 새카맣게 퍼져 진풍경을 연출했다.

“고구려 호박은 구린내 나는 것도 맛이 있다.”

“비릿한 콩과 콩잎도 먹을 만하다.”

“나무 속껍질도 달착지근한 게 먹을 만하다.”

“고구려 태왕이 항복했다는데 왜 여기서 행군을 멈추는 것일까? 빨리 평양성으로 달려가지 않고. 그곳에는 먹을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데.”

“그러게. 두 분 대장군의 속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구먼.”

병사들이 모여 잡담을 늘어놓고 있었다. 병사들은 대부분 바싹 마른 나무토막처럼 피골이 맞닿은 상태였다. 그들은 먹을 것 이외에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나는 열흘 동안 물만 마시고 버티고 있네. 이제 가라고 해도 더는 걸 수가 없어. 때려죽인다고 해도 못가.”

“나는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 분간이 안 가네. 밥 구경 못 한 지 보름이 넘었어. 물하고 나무껍질로 겨우 연명은 하고 있는데, 먹은 게 없으니 눈도 침침하고 귓속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나네. 오줌똥 싸본 지가 언제인지 몰라.”

“고구려 태왕이 정말로 항복한 게 맞기는 한 것인가?”

“나는 고구려 왕이 보냈다는 항복문서를 믿을 수 없네. 내 생각에는 고구려군이 우리 별동대를 유인하려는 술책 같아. 아무래도 좌, 우익위대장군들이 고구려 태왕에게 속고 있는 게 틀림없어.”

“우리 별동대들이 저 패강에 물고기 밥이 되는 거 아닌지 몰라.”

별동대 병사들의 사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 달 가까이 굶은 병사들에게 고구려군을 상대로 전투를 하라는 명령은 무리였고 더는 먹혀들지 않았다. 물과 풀 그리고 나무속 껍질을 벗겨 먹으며 죽음의 행진을 하는 수나라 별동대는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우중문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범처럼 날래고 용맹한 고구려 군사 한 명을 별동대 열 명이 달려들어도 당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가 평양성 밖 삼십 리까지 왔습니다. 이제부터 우리 자랑스러운 수나라 별동대가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장수의 의견을 듣고자 작전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오늘 늦게나 내일쯤이면 고구려 태왕이 고구려의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우리를 마중 나올 것입니다. 해서, 나는 그때까지 이곳에 군영을 설치하고 기다리고자 합니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우중문이 여러 장수를 향해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회의가 열리는 막사 안에 침묵이 흘렀다. 여러 장수는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우중문에게 질책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에헴-, 내가 우익위대장군께 한 말씀 드리겠소.”

위무사 유사룡이 침묵을 깼다. 그의 강력한 권고로 지난번에 별동대 군영에 찾아온 을지문덕을 방면케 한 일로 유사룡은 의기소침해 있었다. 돌아가는 을지문덕을 추격했던 별동대 병사들이 죽자 유사룡은 상당히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수나라 진영 내에서는 유사룡이 고의로 을지문덕을 놓아주게 했다는 비판과 함께 고구려군을 이롭게 했다며 그를 참수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다. 그 일이 있은 뒤로 유사룡은 될 수 있으면 언행을 조심하며, 여러 장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황제의 명을 받고 파견된 위무사란 직책이 있고 수나라 조정의 상서우승이란 벼슬을 하고 있는지라 우중문은 그를 어찌하지 못했다.

‘저자가 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려고 그러나?’

‘저놈 때문에 다잡은 을지문덕이를 놓쳤다. 저놈은 도대체 수나라 사람이냐? 아니면 고구려 첩자냐? 참으로 알 수 없는 자로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유사룡을 노려보았다.

“위무사에게 좋은 의견이 있나 봅니다. 말씀해보세요.”

우중문이 야지랑스럽게 촐싹대는 유사룡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우리 별동대가 평양성 밖 삼십 리 지점에서 진을 치고서 고구려 태왕이 영접하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좀 우습습니다. 내가 별동대를 대표하여 평양성을 방문해서 고구려 태왕을 이곳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유 위무사께서 평양성의 동태를 살필 겸 해서 다녀오는 것도 퍽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그리하시지요?”

한시가 급한 우문술이 유사룡의 의견을 지지하고 나섰다. 우문술은 이곳에서 별동대가 병영을 꾸리고 기다리고 있다가 행여 고구려군의 기습을 받으면 전멸을 당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 계속

저작권자 © 남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