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을지문덕 시를 짓다

을지문덕은 노래하면서 고향에 두고 온 아내를, 그리고 동시에 지금 곁에 있는 웅록을 생각했다. 사나이의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음성이 막사 안에 가득 찼다. 웅록은 을지문덕의 노래에 감정을 이입하며 빠져들었다.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외로운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유리왕의 두 왕비 치희(雉姬)와 화희(禾姬)는 유리왕을 사이에 두고 서로 질투하며 헐뜯다가 한나라 출신 치희가 친정으로 돌아갔다. 유리왕이 말을 달려 치희를 쫓아갔으나 그녀는 이미 한나라 땅으로 넘어간 뒤였다. 유리왕은 상심하여 돌아오는 길에 나무 위에서 정답게 지저귀는 꾀꼬리를 보고 자신의 심정을 노래했다.

을지문덕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웅록에 대한 연정(戀情)이 싹트고 있음을 느꼈지만, 함부로 말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맺은 인연이기에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앞날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심전심이 통하고 있었다.

“장군님, 고맙습니다. 육백 년 전에 그 노래를 지은 유리태왕의 깊은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장군님의 속을 조금은 알 것도 같습니다.”

“그리 말하니 내가 괜히 쑥스럽구먼. 이제 우중문이에게 보낼 시를 써야겠네. 어제 그제 대충은 머릿속에서 지어보았네.”

“역시 장군님이세요. 제가 자리를 피해드릴까요? 저 때문에 창작하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 그럽니다.”

“아니야. 부관이 내 곁에 있으면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일하는 게 즐겁다네. 내 옆에서 먹을 갈면서 내가 짓는 시가 제대로 되었는지 한번 봐주시게”

“고맙습니다. 장군님 시를 우중문보다 먼저 감상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웅록이 탁자 위에 한지(韓紙)를 펼치고 먹을 갈았다. 을지문덕은 잠시 벽을 향해 앉더니 조용히 무엇인가를 낭송하였다. 웅록이 얼핏 듣기에는 그는 ‘천지신명’을 찾고, ‘칠성님’을 부르는 듯 했다. 을지문덕의 진지한 모습에 웅록도 곁에서 속으로 천지신명을 찾았다.

‘고구려의 천지신명님. 살아서 천지를 굽어보시는 환인 할아버님, 환웅 할아버님, 단군 할아버님, 부디 을지문덕 장군께서 수나라 오랑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명문(名文)을 지을 수 있도록 도우소서. 할아버님들께서 세우신 환국(桓國), 배달국(倍達國), 조선(朝鮮)의 맥을 이은 고구려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나이다.

우리 고구려는 절대 오랑캐의 손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한때는 오랑캐들이 단군 할아버님이 통치하던 나라에 구걸하던 족속들이었습니다. 진정한 하늘의 자손들이 천년만년 이 땅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소서.’

웅록이 조용하게 기도하는 소리가 을지문덕의 귓가에도 전달되었다. 면벽 기도를 마친 을지문덕은 웅록이 갈아 놓은 먹물에 붓을 적시고 일필휘지로 시문을 써 내려갔다. 그의 글씨는 용사비등이며, 평사낙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웅록은 을지문덕의 웅건한 글자에 매료되어 시선을 떼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며 바라보았다.

을지문덕은 시문의 제목을 여수장우중문(與隨將于仲文)이라고 쓰고 기구(起句)와 승구(承句)를 써 내려갔다.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는 그의 손에 고구려의 운명이 걸려있었다. 우선 기구와 승구 쓰기를 마친 을지문덕은 자신이 쓴 시문을 한 발짝 떨어져서 살펴보았다. 웅록도 먹을 갈던 손을 잠시 쉬고 속으로 읽어보았다.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 그대는 천문을 강구하여 신묘한 비책을 얻었고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 기묘한 헤아림은 땅의 이치를 통하였도다

‘오오-, 과연, 과연 장군의 오언고시(五言古詩) 문장이야말로 하늘과 땅의 이치를 통하였구나. 이는 우중문을 칭찬하는 듯하나 실은 반어(反語)와 억양(抑揚)으로 그를 우롱하는 명문장이다.

그리고 상대방의 심리를 이용하는 고도의 전술적 의도가 담겨 있다. 기구와 승구는 우중문이 아니라 당신께서 천문과 지리에 최고 고수임을 은연중에 나타내고 있다. 장군님이 *기문둔갑술(奇門遁甲術)에 도통하셨다는 소문이 정말이었구나. 천문과 지리에 통달하지 않고는 지금까지 수나라 백만대군을 상대로 싸울 수 없다.’

웅록의 지아비는 병법에 능한 선비였다. 살아있다면 지금쯤 유비를 도와 촉한(蜀漢)을 건국하는데 일조한 제갈량처럼 을지문덕의 참모가 되어 고구려군이 승리하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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