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녹족부인 다시 적진으로 가다

세작들에 의해 매일 보고되는 수나라 별동대의 상황을 접하면서 태왕은 이번 작전이 상당한 위험이 따르지만, 고구려군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장군님, 다녀오겠습니다.”

“무사히 다녀와야 하네. 답장은 받아올 필요 없네. 그 서신만 우중문에게 건네고 돌아오면 되는 것이네.”

“장군의 명을 받잡겠습니다. 장군님, 소관의 절을 받으십시오.”

“아니, 왜 그러는가? 다시는 못 볼 사람처럼 말이야. 이러지 마시게.”

을지문덕이 웅록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으나, 그는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을지문덕에게 절을 하였다. 전장의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웅록은 다시는 상관인 을지문덕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장군님, 지난밤에 소관에게 베풀어주신 하해와 같은 은혜를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것입니다. 행여, 소관이 다시 장군님을 뵙지 못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장군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여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지내면서 받았던 압박감을 어제 훌훌 털어버렸습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잠시라도 장군님을 정성껏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장군님, 다녀오겠습니다.”

“웅부관, 기다리고 있겠네.”

아침 해가 뜰 무렵 웅록이 호위무사 두 명과 말에 올랐다. 그의 품속에는 을지문덕이 지은 ‘여수장우중문(與隨將于仲文)’이라 제목의 시 한 수가 들어있었다. 을지문덕과 군부 고위 인사들은 성루에 서서 먼지를 날리며 수나라 진영으로 떠나는 웅록 일행을 바라보았다. 수나라 별동대가 있는 진영까지 말을 빨리 달리면 한 시진(時辰) 내로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고구려 태왕과 군 지휘부는 대성산 아래 안학궁(安鶴宮)을 나와 보통강이 자연스럽게 해자(垓字) 역할을 하는 한성에 머물고 있었다. 이곳은 수나라 30만 별동대가 몰려와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천연 요새였다. 안학궁을 감싸고 있는 평양성도 철옹성이지만 전투를 지휘하는 데는 이곳이 더 유리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보내는 시를 웅록에게 건네기 전에 태왕에게 보였다. 태왕도 을지문덕의 시문을 보고 감탄하며, 우중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해했다.

“저기 누가 온다.”

“저들이 고구려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니 고구려군이 틀림없다.”

별동대 군영 입구를 지키던 수나라군 보초병들이 웅록 일행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소리쳤다. 초병은 즉시 우중문에게 달려가 고구려군 진영에서 보낸 사자(使者)가 온다고 보고하였다.

“그럼, 그렇지. 내가 뭐라고 했어. 고구려 태왕이 사람을 보낼 거라 하지 않았나?”

우중문과 우문술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휘하 장수들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초병이 고구려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에 더욱 기고만장하여 우쭐거렸다. 우문술은 쓸데없이 헛기침만 해대며 우중문의 눈치를 살폈고,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유사룡은 두 눈만 껌뻑거리며 씁쓸한 차를 억지로 마셨다.

“과연, 우익위대장군이십니다.”

“우익위대장군께서는 귀신보다 한 수 위에 계십니다.”

“대장군, 선발대가 온 것을 보니 고구려 태왕이 신하들과 곧 도착할 것입니다. 평양성으로 납실 채비하시지요. 소장들이 두 분 대장군님을 호종하겠습니다.”

“아닙니다. 두 분 대장군은 벌써 소장이 호위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중문 휘하의 장군들이 서로 잘 보이기 위해 충성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녹족 삼 형제는 속으로 웃고 있었다. 잠시 후 초병들이 웅록 일행을 데리고 우중문 일행이 있는 본영 막사로 들어섰다. 웅록이 막사 안으로 들어서자 통역사 진진 제일 반가워했다.

“웅부관, 반가워요. 웅부관은 점점 예뻐지는구려. 고구려 사내들은 얼굴도 곱고 몸매도 또한 날렵하니, 도대체 무얼 먹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나는 갈수록 뚱뚱해져 걱정인데. 자자, 우익위, 좌익위 두 분 대장군님에게 인사부터 올리시오.”

웅록 일행이 우중문과 우문술에게 허리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기타 장수들에게는 눈인사로 대신했다. 인사를 받는 중에도 우중문은 웅록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다른 장수들도 화사한 얼굴의 웅록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다만, 녹족 삼 형제만 행여 우중문이나 다른 장수들이 웅록에게 이상한 농(弄)을 걸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웅부관이라했던가? 그대와 내가 벌써 세 번이나 만나니 보통 인연이 아니오. 진진이 말처럼 고구려 사내들은 얼굴이 참으로 곱습니다. 고대원 태왕과 을지문덕이 이리로 오고 있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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