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을지문덕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다

우중문의 말에 웅록과 녹족 삼 형제는 또 한 번 가슴을 졸여야 했다. 웅록이 얼른 답변하지 못하자, 진진이 끼어들며 웅록을 안심시켰다.

“대장군, 물어보나 마나이지요. 곧 백기를 들고 고구려 만조백관과 몰려올 겁니다. 웅부관은 늘 미리 달려와 보고하는 직분이니, 기다려 보시지요.”

웅록은 진진이 고마웠지만, 우중문이 자꾸만 곤란한 질문을 할 것만 같아 엉뚱한 답변을 하였다.

“소관은 대장군께 전하는 서신을 가져왔을 뿐입니다.”

“뭐라, 서신이라고? 고구려 왕은 매번 서신만 보내니 무슨 꿍꿍이인가? 이번에는 또 무슨 서신인가? 고구려 왕비가 혹시 나에게 연서(戀書)라도 보낸 겐가? 아니면 딱딱한 어조의 재미없는 문서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노릇이로다.”

웅록이 품 안에서 서신을 꺼내 우중문에게 건넸다. 웅록은 서신을 건네고 세 아들을 흘낏 바라보았다. 일록, 삼록, 구록이 웅록과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 숙여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른 장수들은 네 모자가 전광석화처럼 인사하는 장면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머님, 이 위험한 곳에 또 오셨군요. 우중문이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일록이 무언(無言)의 인사말을 전했다.

‘어머님, 소자들은 잘 있습니다. 저희 형제는 어머님 명령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삼록이 눈자위가 벌겋게 변하면서 웅록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 이번에는 어떤 일로 오셨는지 모르지만 일을 무사히 마치시고 돌아가셔야 합니다. 간밤에도 어머님이 보낸 고구려 첩자들과 만나 향후 세부적인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오늘 아침에 두 형님에게도 알렸습니다.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구록이 웅록을 보고 있다가 뒤돌아서서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옆에 있던 한 장수가 구록의 행동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을지문덕이가 쓴 시문(詩文) 같은데, 나는 시문(詩文)에는 까막눈이라 이 뜻을 잘 모르겠도다. 제목은 나에게 보낸다는 뜻인데, 본문은 도대체 무슨 귀신이 지청구해대는 소린지 원. 누가 이 글을 보고 뜻을 풀이해봐라.”

우중문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우문술이 얼른 서신을 받아 읽어보았다. 그 역시 한참 동안 그 서신을 읽고 또 읽어보았으나 고개만 좌우로 돌릴 뿐이었다. 일록이 직속 상관인 우문술의 반응을 주시했다.

‘이글은 우중문이를 한껏 띄우다가 조롱하는 문장이로다. 첫 번째 행 속에 쓰인 신책(神策), 천문(天文)과 두 번째 행의 궁지리(窮地理)라는 시어(詩語)를 보니 을지문덕이 이미 기문둔갑술에 도통했다는 증좌로다.

이거 큰일 났구나. 마지막 행인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는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로다. 우리 별동대가 그만 물러가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내용이 틀림없다. 아아, 무서운 시문이다. 빨리 퇴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린 을지문덕이 이끄는 고구려군에게 전멸당할 수 있다. 그러나 까막눈을 가진 저 미련퉁이 우중문이 놈은 시문에 숨은 뜻을 모르고 있으니 문제로다. 유사룡이가 이것을 보고 을지문덕의 의중을 간파해야 한다. 우중문이에게 내 뜻을 말해도 무시할 게 뻔하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우문술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좌불안석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기를 반복하면서 발을 떨기도 하고 괜히 헛기침해대며, 우중문을 쳐다보았다.

“좌익위대장군은 왜 그러시오? 아침에 뭘 잘못 먹은 게요? 내 눈치를 살살 보지만 말고 나에게 할 말이 있으면 사내답게 당당하게 하시오.”

우중문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우문술을 깔보듯 말했다.

“이 서신은 아무래도 우리 진영에서 가장 박식하고 학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유사룡 위무사께서 읽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나도 시문에는 문외한이라 이 서신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겠소이다. 하지만 내가 해석하기에는 빨리 철군하는 게 좋을 것 같소이다.”

우문술의 말에 잠자코 앉아 있던 유사룡이 거만한 태도로 서신을 받아들고 읽기 시작했다. 서신을 읽는 유사룡의 얼굴에 웃음기가 번지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중문을 비롯한 막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유사룡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무척 궁금해했다.

“우익위대장군, 기뻐하시오. 고구려 태왕과 을지문덕이 곧 이리로 온다고 합니다.”

유사룡의 말에 우중문은 손뼉을 쳐댔다.

“역시, 역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다릅니다그려. 위무사께서는 조정의 고위직에 있지만, 수나라에서 제일가는 천문지리의 대가입니다.

그 시문의 전체 내용을 내가 알기 쉽게 풀어서 말해보시오. 고구려 태왕이 나를 영접하러 오기 전에 그 시문의 뜻을 알아야겠소이다. 그래야 고구려 태왕을 만나면 아는 척을 해야 하잖소.”

유사룡과 우중문의 말에 웅록은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웅록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고 혀를 깨물기도 했다. 녹족 삼 형제도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웃음을 참느라 무진히 애를 써야 했다. 우문술은 낯빛이 흑색이 되어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그의 눈동자는 촛점을 잃은 상태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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