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엉터리 해석

“그럼, 내가 을지문덕이 우익대장군에게 보낸 ‘여수장우중문’이란 제목의 오언고시를 풀이할 테니 잘 들어보시오. 아, 다른 장수들도 내가 풀이하는 시문을 잘 들어보시구려. 에헴-.”

유사룡이 점잔을 빼면서 입을 열었다. 기구인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을 유사룡은 ‘우중문 우익위대장군이 귀신도 곡(哭)할 정도의 뛰어난 전술로 고구려군을 싸울 때마다 물리쳤으니, 하늘의 이치를 아는 유능한 장수이다. 승구의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는 우중문 대장군의 정확하고 빈틈없는 계산은 땅의 귀신들도 탄복하였다.

전구로 쓴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는 우중문의 별동대가 압록수를 넘으며, 고구려군과 싸워 매번 필승하였으니 이미 전공은 하늘에 닿았다.

유사룡은 마지막 결구가 정말로 시문의 요체(要諦)가 함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면서 뜸을 들이더니 풀이를 이어나갔다.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는 고구려군은 수나라의 30만 별동대가 빛나는 전술이 있음에도 즉시 쳐들어오지 않고 평양성 30리 밖에서 기다려주는 자비로운 배려에 감복하니, 바라건대 이제 싸움을 그만하겠다. 을지문덕의 시문은 ’고구려군이 전쟁을 그만두고 태왕이 항복하러 오겠다‘는 뜻이라고 힘주어 강조했다.

유사룡은 자신의 해석에 스스로도 만족하는 듯 체머리를 떨어가며 히죽거렸다. 웅록은 또 웃음을 참기 위해 혀를 깨물어야 했고, 그의 아들 삼 형제도 또 한 번 허벅지를 꼬집어야 했다.

“과연, 유사룡 상서우승께서는 대제국 수나라를 대표하는 문장가며, 예언가입니다. 나의 의중뿐만 아니라 고구려 태왕의 속까지 훤히 꿰뚫고 있으니, 천만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태산 같은 귀재(鬼才)가 틀림없소이다. 그러니 황제 폐하께서 우리 별동대에 위무사로 보내셨지요. 자자, 항복문서는 이미 받았으니 우리는 고구려 태왕이 제 발로 걸어올 때까지 술이나 한잔하면서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 봅시다. 웅부관도 오느라 고생했으니, 그만 물러가 잠시 쉬시구려.”

우중문은 인자한 얼굴로 웅록 일행을 격려했다.

“아닙니다. 태왕께서 오시려면 길을 잘 아는 소관이 달려가 안내를 해야 합니다. 냉수 한잔 마시고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그리하도록 해요.”

웅록이 우중문의 본영 막사에서 나와 별도의 장소로 자리를 옮겼다. 우중문의 본영 막사는 금방 주연장으로 변했다. 무식한 휘하 장수들은 아침부터 술을 마셔대며 우중문의 탁월한 영도력을 칭찬하느라 바빴다.

풍악이 울리고 고구려 출신 무희들이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우문술은 마지못해 주연장에 앉아 있었지만, 속이 쓰렸다. 녹족 삼 형제는 웅록이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삼 형제가 모두 웅록에 가면 의심을 맡을 것 같아 삼록이 주연 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삼록은 자리를 뜨면서 일록과 구록에 눈을 찡끗했다. 진중에 풍악이 울리고 군관 이상의 모든 지휘관이 모여 술자리를 열자 병사들은 아연실색하였다.

“왕서방, 이게 지금 무슨 경우란 말인가? 병사들은 쫄쫄 굶어 죽어 나가는데, 이른 아침부터 군관들은 술타령이라니, 기가 막히는구먼.”

“위서방, 우리 이러다가 어떻게 되는 거 아녀?”

“곧 고구려 태왕이 정식으로 항복하러 이곳으로 온다는구먼,”

“혹시, 고구려놈들이 간계를 부리는 게 아닌지 몰라.”

“고구려군 총사령관이신 을지문덕 장군님께서 시를 보내왔대. 그 시에 그리 쓰여 있다는군. 우리같이 글자를 모르는 무지렁이들이야 뭘 알겠는가?”

“아니고 배고파 죽겠네. 병사들은 죽어 나가는데, 저놈들은 아침부터 술타령이라니, 벼락을 맞아 뒈질 놈들이다.”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여 웅성거렸다. 아침부터 들려오는 풍악 소리에 그만 군대의 기강은 사라졌고, 굶주린 병사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산과 들로 뛰쳐나갔다. 그들이 진영을 빠져나가도 누구 한 사람 제지하거나 뭐라고 하지 않았다.

“어머니,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합니다.”

웅록은 아들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에 삼록이 나타나자 웅록은 아들을 끌어안고 등을 다독거렸다.

“너희들은 잠시 밖을 경계하거라. 아무도 들어오게 해선 안 된다.”

웅록이 함께 온 호위무사 두 명에게 지시하였다. 웅록은 신속하게 삼록에게 특급지령을 내려야 했다.

“어머니, 시간이 없습니다.”

“삼록아, 어젯밤에 고구려 첩자가 전한 태왕의 밀지(密旨)를 받아봤겠지만, 곧 고구려군의 대반격이 시작될 것이다. 무식한 우중문과 별동대는 공황에 빠져 도망가기 바쁠 것이다. 너희 삼 형제는 별동대들이 살수와 압록수를 건너갈 때 별동대들의 이동 방향을 고구려군이 매복한 지점으로 유도해야 한다.

살수에서 일차로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것이고, 살아서 도망친 자들을 대상으로 압록수에서 두 번째 대공세가 있을 것이다. 나는 너희 형제를 믿는다. 너희들 뿌리는 고구려라는 것을 잠시도 잊어선 안 된다. 자, 이 작전 지도를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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