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고구려군의 청야전술

사내의 밭은 숨소리가 한바탕 들려오면 곧이어 여인의 가냘픈 신음과 비명이 은은하게 막사 밖으로 흘러나왔다. 막사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올 때마다 초병들은 전율하며, 아랫도리를 잡고 요상한 짓을 해댔다.

유사룡은 밤마다 육욕(肉慾)의 향연에 빠진 우중문을 탓하며, 자신의 막사로 돌아가야 했다. 그는 돌아가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두칠성의 일곱별 중 탐랑성(貪狼星), 파군성(破軍星), 칠살(七殺)이 형성한 격국의 형태가 오늘따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살파랑(殺破狼), 살파랑, 우리 수나라 별동대는 살파랑의 살기를 맞고 모조리 죽게 생겼구나. 우문술이 을지문덕의 시문을 보고 놀라는 모습은 그가 을지문덕의 시문을 완벽하게 해석했거나 아니면 하늘의 조화를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내가 이번에는 우문술의 편을 들었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었으니 어쩌랴. 이 길로 고구려군 진영으로 도망을 칠까? 아니야, 그건 안돼. 나는 수나라 황제가 파견한 위무사 아닌가? 내가 수나라를 배신하고 고구려로 망명한다면 낙양에 있는 어머님과 처자식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아, 나는 이제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다음 날에도 평양성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어리보기 우중문은 끈기 있게 아무 불평불만 한마디 하지 않고 낮부터 주지육림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병사들은 눈만 뜨면 먹을 것을 찾느라 군영을 빠져나가 들로 산으로 헤매고 다녔다.

인근의 모든 야산과 들판에는 곡식 한 알 찾을 수 없었고, 속살을 강탈당한 나무들은 하얗게 말라가고 있었다. 병사들이 뱀과 개구리 등 미물들을 잡느라 산야를 모두 헤집어 놓는 바람에 강산은 폐허가 되고 말았다. 마치 들판 위로 메뚜기떼가 휩쓸고 지나간 모양새였다.

식적일종, 당오이십종(食敵一鍾, 當吾二十鍾). 적의 땅에서 빼앗은 군량은 아군 군량의 스무 배 값어치가 있다. 손자는 병자병법 작전편에서 적과 싸울 때 적지에서 군량을 얻는 방법에 대하여 언급했다.

그는 전쟁하는 데 식량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지 않고 생존할 수가 없다. 수나라 별동대 9군을 이끄는 좌익위대장군 우문술과 우익위대장군 우중문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군량미 수급에 대한 허술한 대책이었다.

당초에 *회원진(懷遠鎭)과 *노하진(瀘河鎭)에서 9군 30만 5천 명의 별동대가 고구려 평양성을 향해 출발할 때 병사 대원 1인당 백 일 분의 식량과 각종 병장기가 지급되었다. 양견과 현재의 황제 양광을 주군으로 모시며 수많은 전투에 참여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두 장수는 식량 문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했다.

고구려군이 전쟁에서 청야전술을 처음 사용한 때는 고구려 제8대 태왕인 *신대왕(新大王) 8년에 한나라의 현도태수 경림(耿臨)이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했을 때였다. 당시 국상이었던 명림답부(明臨答夫)는 이 전술을 처음 사용하면서 부터 고구려의 주요 방책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명림답부는 그때 식량 대용이 가능한 모든 작물을 불태우도록 했다. 한나라군은 고구려를 침범하면서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할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고구려군의 기습과 청야전술로 굶주림에 지쳐 퇴각하였다. 이때 명림답부는 좌원(坐原)에서 기병을 직접 이끌고 퇴각하는 한나라군을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을지문덕은 대륙에서 명멸한 여러 나라의 군사(軍史)를 깊이 연구한 인물이었다.

만약에 내호아가 적절한 시기에 패강에 도착하여 우문술과 우중문이 이끄는 별동대에게 군량을 공급했더라면 전세는 고구려군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전개되었을 것이었다. 전공에 눈이 먼 내호아의 돌출행동은 고구려군에게는 사기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별동대에게는 죽음을 선물했다.

우중문은 내호아에게서 희소식이 오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고구려군의 기만술에 말려든 우중문의 별동대는 살아남을 방안을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고구려의 지형에 익숙지 못한 별동대의 9군의 장수들은 휘하 부대원들을 이끌기보다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데 급급했다.

* 회원진 – 요서 지역의 탁군(현, 북경) 부근
* 노하진 – 대릉하 지역의 한 지역
* 신대왕 - 고구려 제8대(재위는 서기 165~179) 왕으로, 이름은 백고(伯固)로 태조왕의 아들

고구려 태왕은 세작들로부터 수나라 별동대가 대혼란에 빠져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작전 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미 여러 차례 크고 작은 규모의 수뇌부 회의를 개최했지만, 이번만은 분위가 사뭇 달랐다. 그 자리에는 웅록도 참여하였다.

먼저 을지문덕이 수나라 별동대에 관한 개략적인 현황을 설명하고, 지휘관들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태왕이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고구려군의 최종 전술을 확정 짓는 중요한 회의였다. 태왕은 이미 별동대에 웅록의 세 아들이 주요 지휘관으로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을지문덕의 현황 설명이 끝나고 지휘관들의 의견을 청취할 차례였다.

“폐하, 좌군 돌격대장 해무성(解武成)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 해무성 대장, 어서 말해보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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