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고구려의 어머니

해무성의 조상들은 고구려 건국 시조인 추모왕(鄒牟王)때부터 6백 년 가까이 고구려의 주요 직책을 맡으며,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구국에 힘을 쏟았다.

“수나라 별동대를 살수와 압록수에서 대파한다는 기존 계획에는 변동이 없는 것인지요? 또한, 아군의 공격 방법은 기존처럼 철갑 중기병대(重騎兵隊)가 주축이 되고 궁병(弓兵)과 보병(步兵)이 지원해야 하는지요?”

“폐하, 소장도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해무성의 질의가 끝나자마자 왕실 인사로 대모달(大模達) 벼슬을 하는 고등(高鄧)이 태왕에게 발언권을 신청했다. 그는 왕실 인사 중 군부에서 가장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인물로 태왕과 뜻이 잘 맞았다.

“대모달, 말해보라.”

“현재 요동에 양광이 칠십만 대군을 이끌고 요동 주변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 산성을 공략하고 있습니다. 만약 별동대들이 압록수를 넘어 그들과 합류한다면 어찌하실 것인지요? 태왕께서는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놓으셨습니까? 지금까지 아군은 수나라 군대를 맞아 치고 빠지는 전술로 일관해 왔습니다. 이제는 전술을 변화시킬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연달아 태왕에게 질문하자 다른 사람들은 일단 두 질문에 대한 태왕의 답변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태왕의 답변을 듣고 궁금한 사항을 물으려는 의도 같았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짐이 해무성의 질문부터 답하겠다. 여러 장수도 잘 알다시피 고구려군은 총사령관인 을지문덕 장군의 통솔하에 다섯 개의 군단(軍團)으로 편성되어 있다. 제1군은 요동 지역 주요 산성에 배치하여 양광이 거느린 수나라 본대(本隊)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제2군은 *식성군(息城郡) 회현(回峴)에 배치되어 살수를 지키고 있고, 제3군은 개천(价川)의 *태백산 자락인 건지산(乾芝山)에 배치하였다. 제4군은 평양 외곽에 있는 *숙주성(肅州城)에 배치했고, 본대인 제5군은 평양성을 지키고 있다.

이미 우리의 2군과 3군은 살수와 압록수 양안(兩岸)에 대군을 주둔시켜 놓았다. 철갑중기병대(鐵甲重騎兵隊)는 주로 두 강의 남쪽에 배치했다. 수나라 별동대가 강 근처에 나타나면 뒤에서 기병대가 오랑캐들을 강으로 몰아넣을 것이며, 오랑캐들이 강을 건너려고 할 때 남서 양쪽에 매복해 있는 10만의 아군이 화살을 날릴 것이다. 군사 한 사람이 최소 오십 발을 쏘면 대략 5백만 발의 화살이 오랑캐들의 심장을 꿰뚫게 된다. 다행히 강을 건너간 오랑캐들은 건너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고구려 전사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짐의 계산대로라면 오랑캐 대부분이 살수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수나라 오랑캐들이 우리의 영토를 들어올 때는 쉬웠겠지만, 돌아갈 때는 지옥으로 직행하는 저승길이 될 것이다.

다음은 고등 대모달의 질문에 대해 답변하겠다. 우리 군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둔다면, 요동에 있는 허룹숭이 양광은 충격을 받고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짐은 이번 전쟁의 승부를 살수에서 내려고 한다. 용케 살아서 도망치는 잔당들이 있다면 압록수에서 결정타를 날릴 예정이다. 두 지역에서는 치고 빠지는 전술이 아니라 정면 대결로 오랑캐들을 어육으로 만들 것이다. 짐은 오랑캐 단 한 놈도 살아서 돌아가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전쟁의 결과는 천년만년 청사(靑史)에 길이 남아 배달민족의 후손들에게 자부심을 안겨 줄 것이고, 음흉한 오랑캐들에게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될 것이다. 여러 장수는 짐의 뜻을 깊이 이해하고 따라 주길 바란다.”

* 식성군 – 현재 평안도 안주군(安州郡)

* 태백산 - 묘향산의 옛 이름

* 숙주성 – 평안도 평원군 지역에 있던 성(城)

태왕의 확고부동한 응답에 여러 장수는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작전 회의를 마치자 모두 임지로 달려갔고, 태왕의 지령이 담긴 밀지를 발에 매단 전서구(傳書鳩) 수십여 마리가 북쪽을 향해 솟구쳐 날아올랐다.

“태왕 폐하의 지시대로 소관이 세 아들에게 아군의 공격 시점과 지점 등을 자세히 알려주었습니다.”

작전 회의가 끝난 뒤에 을지문덕과 웅록이 별도로 태왕을 알현했다.

“웅록 부관, 그대는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어머니로다. ‘난세(亂世)에 반드시 영웅이 난다.’는 선현들의 말이 과연 맞는구나. 짐은 그대를 보면 연민의 정과 동시에 대견함을 느낀다. 이번에 그대가 큰 공을 세웠다. 참으로 장하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전투 중에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라. 웅부관은 조국을 위해 할 일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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