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맛
명서영

영원히 썩지 않는 맛은 어떤 향기가 날까

공이 선을 넘었는지 선이 공을 넘었는지 상대 선수와 맞선다
섣부른 분위기가 숨죽이고 침묵하는 간석동 하늘 탁구장
뿔 돋은 나 불꽃 튀는 선제공격으로 분위를 제압한다
공은 이편도 저편도 아니라는 듯 소낙비 잰걸음으로 사라지고

수세에 몰린 그녀가 단번에 당당한 기세로 항복, 싱겁다
헛손질이라도 스매싱에는 푸싱으로 손 뻗어야 짭짤하지

분위기는 편파적으로 상대편에게 쏠린다
패로 뿔 잘린 나 찌그러진 공 되어 구석에 흥건히 굳어간다
앵글에 잘못 잡힌 배경처럼 대낮에 뜬 초승달

얼어붙었던 실내가 금세 녹아 환해졌다
여기저기 한꺼번에 시끌시끌 탁구장이 자란다
마지막까지 활짝 뜬 그녀, 빨갛게 녹아드는 입술의 은유
둥글둥글 마음 한 송이 뜨거운 그녀는
순식간 모두 숨을 쉬게 만든 먹구름을 뚫고 나온 해
매운맛을 제대로 보여준 사납고 독한 잘 익은 고추

고추장을 듬뿍 바른 주먹밥을 빙빙 돌며 나눠주는 그녀
따라 한 축으로 일제히 눈들이 함께 공전한다
머리가 알알한 초승달 앞에 씽긋 고추가 빨갛게 지나간다
매운 캡사이신(capsaicin) 향기가 솟아오른다

화끈하게 해는 지고 그림자만 빛바랜 고춧가루로 묻어 있는 하늘
유리창 가득 어린 뭉게구름 떼가 돋아나고 있다

-출처 웹진 문장 —2023년아르코창작발표지원선정작품-

웹진 문장에 발표된 명서영 시 7편 모두 잘 감상하였습니다. 다양한 시어들이 나오며 확장이 된 시가 쫄깃거립니다. 특히 갈비와 탁구공의 연작시들을 재미있게 보았는데, 탐색전과 심리전이 가독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정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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