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고구려의 아들

남쪽에서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며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고구려 기마대가 달려오고 있었다. 낙오된 별동대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었지만, 비호처럼 달려드는 고구려 철갑중기병대의 추격을 따돌릴 수 없었다.

“공격, 오랑캐 놈들을 살려두지 말라.”

기병대를 이끄는 고구려 장수가 소리쳤다. 지축을 흔들며 달려오는 고구려 기병대가 도망치는 별동대의 후미부터 공격을 시작하였다. 제 한 몸도 가누기 어려운 별동대는 추풍낙엽이었다. 고구려 기병대의 칼날 아래 그들은 피를 뿌리며 처참하게 죽어갔다. 순식간에 낙오된 별동대 수만 명이 어육이 되었다.

기병대 뒤로 보병부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또 한 번 별동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고구려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수나라 별동대의 잘린 머리통과 몸통이 이리저리 뒹굴었고, 굶주린 까마귀 떼와 산짐승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그들의 육신을 뜯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기를 쓰고 밤새 달려온 별동대가 살수 근처에 도달했다.

“별동대는 나를 따르라. 이곳 지형은 내가 잘 안다. 저기 저 살수만 건너면 안심할 수 있다. 나를 따르라. 우리가 건너온 곳을 건너면 안 된다. 그곳에는 이미 고구려군이 매복해 있을 것이다. 나를 따라 서쪽으로 가는 자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저 살수에 갇혀 고구려군의 화살이나 창칼에 죽을 것이다.”

일록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를 따르라. 북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강폭이 좁은 곳이 나온다. 나를 따르는 자들은 고향에 갈 수 있을 것이다.”

삼록과 구록도 별동대를 향해 소리쳤다. 녹족 삼 형제는 겁에 질려 갈팡질팡하는 별동대를 세 곳으로 분산하여 유도하였다. 세 형제가 별동대를 인도하는 지역은 웅록이 알려준 살수 남안(南岸)에 있는 고구려군 매복 지점이었다. 군 지휘체계는 벌써 무너지고 장수들도 무거운 투구와 장군 복장을 벗어 던지고 병사들 사이에 숨어들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그 와중에 녹족 삼 형제는 투구를 쓰고 붉은 망토를 걸친 채 이리저리 달리며 별동대를 지휘하였다. 우중문과 우문술은 친위부대에 둘러싸여 도망치기 바빴다. 살수에 도착한 별동대는 20만 명이 조금 넘는 정도였고 나머지는 이미 고구려군의 창칼에 찔려 저승길로 향하고 있었다.

“역시 녹족 형제들은 진정한 전사로다. 나를 대신하여 군사들을 진두지휘하는구나. 잘한다. 아주 잘해. 내가 돌격대장은 정말로 잘 뽑았어. 저 애들은 지금도 공을 세우고 있지만, 나중에는 수나라를 위하여 큰일을 할 인재들이다.”

우중문은 도망가면서도 군대를 지휘하는 녹족 삼 형제를 칭찬하였다. 지휘부가 없어 오합지졸로 변한 별동대는 녹족 삼 형제가 이끄는 대로 따랐다. 일록이 ‘左翊衛大將軍宇文述(좌익위대장군우문술)’이라고 쓰인 대장군 깃발을 들고 앞장서서 서쪽으로 말을 달리니, 우문술 휘하의 별동대들이 모두 그의 뒤를 따랐다. 또한, 삼록과 구록이 ‘右翊衛大將軍于仲文(우익위대장군우중문)’의 깃발을 각각 하나씩 들고 흔들며, 동북쪽으로 달려가니 우중문 휘하의 제장(諸將)과 별동대들이 두 형제 뒤를 따라 달렸다.

“아니, 저놈이 나의 허락도 없이 군사들을 서쪽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리 가면 몰살한다. 그 지역은 강폭이 넓어 건너기 어렵다. 빨리 군사들을 원위치로 돌리라고 하라. 빨리.”

우문술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놈들아, 돌아와라.”

“그리 가면 모두 죽는다. 원위치로 와라.”

“좌군은 돌아오라.”

우문술과 휘하 군관들이 별동대를 향해 소리쳤지만, 대군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도 않았다. 우문술과 우중문도 장군 복장을 버리고 일반 병사들처럼 허름한 옷을 입은 상태라 병사들은 그를 몰라보았다. 명령 체계도 마비되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우문술은 키가 작아 그가 아무리 소리치며 명령을 내려도 누구 한 사람 들으려 하지 않았다. 별동대가 일록을 따라가자 우문술도 할 수 없이 그를 따라가야 했다.

“여봐라. 우리도 어서 삼록 대장이 이끄는 방향으로 쫓아가자. 지금 상태에서는 오로지 녹족 형제 말만 들어야 살 수 있다. 곧 고구려 철기(鐵騎)들이 들이닥칠 것이다. 고구려 철갑중기병은 천하무적이다. 그들에게 걸리면 살아남지 못한다. 빨리 가자.”

별동대는 두 편으로 나뉘어 이동하였다. 우문술이 지휘하는 좌군 10만 별동대가 살수 서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달려갈 때 갑자기 하늘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게 쏟아져 내리는 화살 비에 수나라 별동대는 속수무책이었다. *이각(二刻)도 안 되어 10만의 별동대가 대부분 강기슭 모래사장에 쓰러졌다. 화살 비가 그치자 이번에는 고구려 철갑중기병대가 들이닥쳤다. 그 뒤로 창칼과 도끼를 든 고구려 보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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